한국희곡

김려령 '뮤지컬 완득이'

clint 2025. 3. 2. 09:00

 

 

가족이라곤 '꼽추'라고 놀림 받으며 정신지체장애 삼촌과 함께 

춤추며 행상을 다니는 장애인 아버지. 

가출, 결석, 지각은 예사에 주먹까지 제법 센 문제아 도완득. 

지긋지긋한 가난함도 모자라 어느 하나 평탄한 구석 없고, 

변변한 출구조차 안 보이는 '세상에서 가장 재수없는 열여덟 인생이다. 

그런 완득이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영원한 그의 숙적, 

사사건건 간섭에 잔소리, 밤낮 가리지 않고 "얌마 도완득!"을 외쳐대는 

원수 같은 담임이자 옆집 옥탑방 이웃 '똥주'다. 

안 그래도 꼬일 대로 꼬일 인생에 뭐 하나 보태주지 못해 안달이 났는지 

이제는 남의 가정사까지 시시콜콜 뒤져가며 태어나서 듣도 보도 못한 

베트남 출신 엄마를 만나보라는 얼척 없는 강요까지 한다.
이에 제자는 매일 교회를 찾아 제발 담임을 죽여달라 기도하고 

그런 제자에게 훈훈하고 상스러운 욕으로 응답하는 스승. 

다른 이들에게 사제 간의 관계라고 말하기도 난감한 모양새로 시종일관 

두 사람은 으르렁거린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만난 이주노동자 핫산의 권유로 킥복싱을 접하게 된 완득이. 

제법 적성에 맞는 킥복싱을 배워가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욕심이 나고 

목표라는 게 생긴다. 여기에 늘 항상 혼자 다니는 게 익숙하던 완득이의 마음에

찾아온 두근두근 설레는 첫사랑 윤하,

예상치도 못하게 눈앞에 등장한 엄마의 존재,

여기에 학수고대하던 킥복싱 데뷔전과 더불어 알게 된 담임 똥주의 숨은 진실까지...
매일매일 똑같이 흘러가던 일상이 순식간에 요동치던, 

18세 도완득 인생에 찾아온 최고의 반전이 찾아온다.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김려령의 <완득이>는 유독 키가 작은 아버지와 베트남 여인에게서 난 고등학생 완득이와 그 주변 사람들이 질곡 속에서도 생명력 넘친 삶을 꾸려가는 이야기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다루면서도 이 이야기가 밝고 경쾌한 톤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완득이란 인물의 태생적인 건강함 때문이다. 고교 1학년(?) 완득이는 '신체조건, 욱하는 성질, 철없는 듯 다혈질만 같다가도 매사 시큰둥. 시니컬하기만 태도가 애어른 같기도 하다. 주변환경, 어디 하나 조폭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는 고1 학생 완득이. 그는 자주 '야자'를 땡치지만 불량학생은 아니다. 이런 완득이가 학교에선 싸움꾼이자 소설가로 통한다. 전자는 동기들이 키 작은 아버지(도정복)가 '난쟁이'라고 조롱하면 그 때마다 피가 역류하기 때문이고 후자는 그가 작문시간 제출하는 작문은 고전들을 퓨전화 시킨 엉뚱한 상상력이 재치 빛나는 기발한 것이었기에 그러하다. 도정복씨는 캬바레에서 춤을 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손님의 등을 처먹고 사는 제비 취급까지 당한다. 이 때문에 지은 죄 없이 괜시리 기가 죽어 산다. 

 

 


완득이 어머니는 베트남 사람이다. 여인은 음식서비스업으로 살아가며 '그짝 사람'이라는 멸시까지 받는다. 싸구려 '꽃분홍색 낡은 단화를 신고 다니는 여인은 자기 아들인 완득이에게도 경어를 쓴다. 배치고사 1등을 도맡아 하는 정윤하는, 그녀를 좋아했지만 사이가 어긋난 남학생 자기를 모델로 구상한 음란만화가 교내에 퍼져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예비 서울대생이었다. 윤하는 그 악의적 만화에 반감을 표한 완득이에 게 서서히 믿음이 가게 된다. 완득이의 삼촌은 몸짱에다 춤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일껏 춤을 배운 손님들은 무시한다. 그런데 이 완벽한 삼촌은 말을 더듬는 정신지체자다. 하지만 완득이는 삼촌이 첫마디만 떼면 나머지는 절로 알 수 있게 되었다. 완득이의 주변인들은 공격적인 사회적 차별 속에 살지만 누르면 누르는 대로 눌려졌다가 힘을 비축해서 다시 일어나 생활을 향해 아등바등 뛰어다니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완득이는 자기 가족과 친구 윤하에게 가해지는 악질적인 오해와 차별이 발생할 때에만 발차기 솜씨를 선보인다. 완득이에서 완득이의 스승은 두 사람이다. 담임선생인 조폭 스승 '똥주'의 매력은 도와주면서 생색을 내지 않는다는 것. 이런 점에서 동주와 동주의 부자 아버지와는 확연히 대비된다. 우연히 발 딛은 킥복싱에서 만난 관장은 <싸움의 기술>에 나오는 백윤식을 연상케 한다. 완득이가 카바레에서 일하는 아버지 때문에 알게 된 조폭들한테서 익힌 막싸움과 다른 규칙 위에서 싸우는 법에 눈을 뜨게 해준 이는 다 망해가는 킥복싱 도장의 관장 때문이었다. 이동주는 완득이의 사회적 의식을 각성케 하는 인물이며, 관장은 완득이에게 킥복싱을 하면서 살아가는 실제적인 법을 가르쳐준 인물이다. 완득이는 이 두 인물에 영향을 받으면서 모종의 변화를 겪게 된다. 

 



작가의 글 - 김려령
2008년 3월, 나는 하얀 종이에 텍스트로 새긴 완득이를 세상에 내보냈습니다. 고약하게 앞뒤 딱딱한 표지에 숨겨 책장을 펼쳐야만 완득이를 만날 수 있게 했습니다. 어쩌면 완득이는 딱딱한 표지를 샌드백 삼아 마구 잽을 날렸을지도 모릅니다. 밖으로 나가겠다고! 누군가 책장을 펼쳐야만 소리 낼 수 있었던, 책장을 덮으면 다시 텍스트로 돌아가야 했던 완득이가 비로소 뜨거운 피와 단단한 육체를 얻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선생님과 관장님,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여기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져버린 환경 속에서 완득이는 자랐습니다. 여느 아이들이 논술을 위해 신문 사회면을 살피고 몇자 끼적거릴 때, 완득이는 사회면을 장식한 그 변방의 세상을 맨몸으로 버텨내야 했습니다. 숨기고 싶어도 벌써 몸이 말해버리는 난쟁이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를 둔 완득이, 완득이는 세상을 버티기 위해 세상을 피해 숨어버립니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완득이 스스로 숨은 것인지, 세상이 숨겨버린 것인지. 완득이가 너무 잘 숨은 것인지, 세상이 부러 찾지 않은 것인지. 그래서 노련한 술래 똥주의 이 외침이 고맙습니다. "거기 너, 나와!" 나는 믿습니다. 

김려령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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