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경종)의 이복동생인 왕세제(연잉군. 후의 영조)를 왕으로 세워
정권을 잡으려 했던 김춘택은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지방에 숨어 지내며
때를 살피던 중 사촌이 역모로 체포되면서 생존이 발각되고 만다.
왕은 김춘택에게 능지(陵地)를 알려주며 자신의 묘를 만들기를 명하고
혼자 묻히진 않을 테니 그 묘에 순장을 하겠다고 말한다.
김춘택과 그의 가족들은 누가 묻힐지 모를, 여차하면 역모로 몰린 자신들이
묻힐지 모를 무덤을 공사하며 살아갈 방법을 모색한다.
한편 왕은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왕세제가 진짜 역모의 배후에 있는지
아닌지 의심하며 그를 죽여야 할지 고민한다.
경종과 김춘택의 대립이 볼거리인 연극 <내 무덤에 너를 묻고>은 경종이 “자신의 능지공사 후에 순장하겠다”는 파격적인 명령을 내리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동생인 세제가 김춘택의 아들일지 모른다는 소문 때문에 경종은 동생을 죽여야 할지 말지 고민한다. 연극은 특정 인물이 죽었을 때 살아있는 자는 죽여서 함께 묻는 장례법인 ‘순장’이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른다.
이 작품은 '의심'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를 가지고 과거의 역사 속에서 자행된 '순장(殉葬, 죽은 지도자가 사후에도 그 지위를 누리며 살기를 기원하며 다른 존재를 같이 묻는 장례를)'과 요즘 시대에 아파트 '분양'을 연결 짓는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한다. 윤 작가는 "현대인들이 아파트 계단이나 화장실에서도 살려고 하는 상황에서, 왜 무덤 속은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거주 공간이 점점 지하로 내려가는 현실을 보면서, 효율성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요람과 무덤'을 합쳐보는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경종은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로 태어나 모친의 죽음을 목도한 왕으로
가장 오래 왕세자로 있다가 즉위 4년만에 퇴위한 왕이고
반면 경종의 이복동생은 일찍이 경종의 생식능력에 문제가 있어 왕세제로 잠깐 숨죽이고
있다가 21대 영조로 왕위에 오른 인물로 가장 오래 집권한 왕이기도 하다.
경종은 노론과 소론이 격렬한 정쟁에 실질적인 권력도 약할 수 밖에 없었고
건강도 안 좋아 37세이 생을 마감한 불운한 왕이다.
이강백의 "진땀흘리기"란 작품에서도 경종의 진땀을 흘리는 병력을 격렬한 정쟁의 산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종을 표현한 바 있다.
작가의 말 - 윤성민
2024년 <위대한 무사고>로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 고려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수료.
무덤이 보이는 아파트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파트가 보이는 무덤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은 무덤은 산 아파트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살 수 없게 아파트의 철근을 빼돌리는 사람과 철근 있어도 살 수 없는 아파트를 봤습니다. 조선왕조의 대가 바꿔치기 당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왕이 누군지는 백성에게 중요하지 않지만 소문을 낸 사람들은 지금쯤 모두 죽었을 겁니다. 무덤에서 죽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서, 효율을 중시하는 시대인 만큼 무덤 속에 집을 지어 봤습니다. 무덤까지 가져간다는 말이 생각나서 무덤으로 가져가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하다가 묻어버려야 할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적었습니다. 이 대본은 기존에 썼던 것을 낭독극을 위해 고친 것으로, 작품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많은 분들이 애써주신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 낭독극 대본을 책에 담게 되었습니다. 공연을 위해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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