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조정일 '달의 뒤쪽'

clint 2025. 3. 3. 15:01

 

 

이곳은 어디일까? 버려진 땅. 모래바람이 지독하다.

헐벗은 산들이 멀리 있고 포탄들이 휘파람을 불며 날아다닌다.

왼편에 나무 하나라도 보이지 않으면 이곳이 달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곳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더는 어떠한 소문도 못 들었다.

사방이 지뢰밭, 날개를 달지 않는 한 누구도 이곳에 들어올 수도  떠날 수도 없기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지하에 산다. 그것은 포탄이 떨어져 만든 구덩이다.

이곳에 고여있는 사람들, 지뢰를 모두 캐내고, 종자 뿌릴 날을 고대하며

연장을 손질하는 사내와 전쟁이 끝나면 다시 살림 불릴 생각에 틈만 나면

곳간 열쇠를 만지작대는 아낙, 그리고 기억을 놓지 않으려 죽어간 자들의 이름을

중얼대는 할머니, 전설에 푹 빠져 달을 따겠다고 밤낮 없이 궁리하는 아이 고하,

그리고 전장에 있는 애인을 그리워하는 수하.

그들은 지뢰밭에서 감자 알을 주우며 근근이 하루 하루를 넘겨간다.

그런 어느 날, 이 곳에 한 이방인 비행사가 추락한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기이한 풍경을 처음 마주한 그는 자신이 사후세계에 와 있다고 믿는다.

그는 사람들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며 점점 충격에서 벗어나지만,

자신이 구조될 수 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희망을 잃은 그가

이곳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된다. 사람들은 비행사가 구조되면 자신들의 처지도

예전 같이 회복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들은 결혼식 날 쓰기 위해 기르던 돼지를

잡아 먹이고 낙하산을 꿰매고, 비행사가 지뢰를 밟지 않도록 잘 묶어두고 일 나간다.

불안. 꽤 많은 시간이 흐르지만, 비행사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히 식지 않는다.

그런 한편, 아낙의 마음속에는 불안의 씨앗이 커간다.

수하가 비행사를 간호하면서 그에게 마음을 빼앗길까봐 걱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방이 지뢰에 막혀버린 곳에서 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쫓아낼 수 없다.

그런 어느 날 정말 헬기가 이곳으로 날아드는데...

 

 

 

<달의 뒤쪽>은 가상의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인간 본연의 모습과 희망을 향한

끊임없는 몸부림을 밝고 희화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달의 뒤쪽>에서, 전쟁 속에 우연히 불시착한 비행사는 부상을 당한채, 말이 통하지 않는

어느 마을에서 자신을 극진히 보살펴 주는 수하란 여인을 만난다.

그들은 마치 사랑을 꿈꾸는 연인들 같지만,

실은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바깥 세상으로의 탈출을 꿈꾸고 있을 뿐이다.

마을은 달랑 3개의 구멍만이 모든 것이며 더 이상의 폭격은 없다. 

주민은 떨어진 그(비행사)를 향해 새로운 희망을 기대하지만

그는 오로지 구조의 희망만 바랄 뿐이다. 밥만을 바라는 식충이처럼..

쌓여가는 그리움으로 그는 점점 이성을 잃어가지만 주민들은 그를 끝까지 보살펴준다.

수하..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안식처이지만 그는 수하를 남기고 떠난다.

희망도 없어진다. 오로지 남은 자는 또 다른 희망을 찾아갈 뿐이다.

 

 

 

 

 

지뢰가 뿌려지던 날, 오직 한 뼘의 땅만이 재앙을 피했다. 포탄이 만들어낸 구덩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희망은 지뢰 대신 감자를 심을 수 있는 땅을 갖는 것이며, 로켓이 아니라 새들이 나는 하늘을 위에 두고 싶을 뿐이다. 이 연극의 배경은 2004년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굉장히 낯설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지구의 어느 곳 이라도 믿기에는 너무나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비현실적 공간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위한 은유적 공간이다. 불행히도 연극이 끝나면 우리는 이 상상 속 무대가 지금도 실재하는 세계라는 사실을 눈치 챌 것이다. 극중 인물의 갈등과 선악의 대립구도는 단순명쾌하다. 전쟁이 끝나고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다소곳이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에게 호의를 입고도 끝내 절망을 안겨주는 배반자,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이야기를 담담히 보여줄 뿐 파국에 이른 순간에서 조차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파렴치한은 징벌 당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호의를 베푼 사람들이 보상받는 일도 없다. 남은 자들은 그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기회를 박탈당하고, 더 이상 새로운 생활을 개척할 힘마저 없어 보인다. 이러한 비극적 결말은, 그러나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기에 가능했다. 너무나 작아서 잘 들리지도 않는 호소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것. 과연 무엇에 분노할 것인가를 알게되는 것. 그러한 마음이 움직여 가는 한 순간, 서로에게 무한한 신뢰의 눈빛을 나눌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아무도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서 자신 있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소중하게 지켜져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난 후 지뢰만이 남은 버려진 땅, 세 개의 구덩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구덩이 하나에는 전쟁에 참전한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가, 또 다른 하나에는 전쟁에 참전한 애인을 기다리는 연인 수하와, 달을 따고 싶어 하는 소년 고하, 그리고 죽은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고는 하는 노파가 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구덩이에는 '언젠가 돌아올 남자와 수하가 결혼할 때 잡을' 돼지가 살고 있다. 이들은 곡식을 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느 곳에 지뢰가 묻혀 있을지 몰라 심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배가 고파도 씨앗을 먹지 않고 소중하게 씨앗을 갈무리하고 있다. 종자는 언젠가 전쟁이 모두 끝나고 나면 지뢰를 다 파내고 농사를 짓겠다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정말 모든 것이 다 사라져도 희망은 남는 걸까? 끔찍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들의 대화 속에서 포기나 절망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가 없다. 사방이 지뢰밭이라 날개를 달지 않는 한 누구도 들어올 수 없고, 떠날 수 없는 이곳에 어느 날 낙하산이 찢어져서 추락한 군인이 나타난다. 이방인의 정체는 작품 전반에 걸쳐 내가 가장 고심한 부분이다. 구덩이에 사는 사람들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수하가 예전에 배웠던 짧은 언어로 소통을 시도하는 것을 보면 '그냥 외국인' 같고, 연극 내내 이방인이 '포로에 대한 예우를 제대로 해달라'는 발악을 하는 것을 보면 '적국의 포로' 같기도 하다가, 기이한 자연환경과 그들이 입은 옷에 대한 묘사, 중력을 잃은 듯한 행동 등으로 미루어 '외계인'인가 싶기도 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방인을 데리러 오는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그는 '평화유지군'이라고 했다. 도대체 누구냐, . 이방인의 정체성이 모호한 것은 의도한 것이 아닐까? 작가는 이방인의 존재를 순수하게 이방인 그 자체로 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그는 외국인도 되고, 적 혹은 아군, 심지어는 평화유지군도 되고, 외계인도 되는 그냥 낯선 존재다. 이방인에게는 마을 사람들 역시 그런 존재. 마치 달에나 살고 있을 법한 종족처럼 기이하다. 이방인과 마을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서로에게는 통하지 않고 오직 관객들에게만 전달된다. 극 속의 인물들에게는 통하지 않지만 관객에게는 통한다는 점에서 연극은 그 자체로 '통하지 않는 언어'가 된다. 재미있구나...서로 다른 이야기만 하는 부조리한 상황이 대사로 맞아떨어지는 모습은 웃음을 유발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해소해 준다. 전체적인 작품 성향으로 보면 결코 만만치 않게 진지한 내용이지만, 자유로운 분위기가 같은 대사라도 희극성이 돋보이게 만들었다. 역시 쉽지 않은 희곡.하필 낙하산이 찢어져서 이 마을의 구덩이에 떨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이방인을 구조하러 다른 이들이 올 것이라 믿는다. 희망이 없어진 존재가 다른 이들에게는 희망 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면서도 그 자체가 희망의 의미를 말해주는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간호하고, 하나뿐인 돼지를 잡아 먹이고, 낙하산도 꿰매주고.... 그러니 결말이 비극적이라고 해도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이방인은 다른 길을 걷는다. 마을 사람들의 신뢰와 호의를 배신하는 이방인. 감자를 까달라는 노파의 부탁에 이방인은 탐욕스럽게 혼자 감자를 먹어버리고, 고하가 신뢰의 표시로 내민 날개가 부러진 새도 먹어버린다. 심지어는 소중히 갈무리해온 씨앗들까지 오독오독... 이것이 보이지 않았던 혹은 보지 않으려고 애썼던 달의 뒤쪽이다. 지구상에는 항상 쌍으로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빛과 어둠, 안과 밖, 선과 악, 진실과 거짓, 그리고 희망과 절망 같은 것들.... 극의 결말은 이방인이 호의를 베풀어준 사람들을 버리고 헬기를 타고 떠나지만 고하의 총에 맞아 헬기가 추락하는 것으로 끝난다. 수하와 고하는 여전히 지뢰밭 한가운데 남아있다. 상황은 더 악화되었지만 아마도 그들이 현재 서있는 곳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을 달의 뒤편, 즉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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