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윤주호 ‘메리 고 라운드’

clint 2025. 1. 21. 12:27

2025 부산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희곡 심사평]

읽으면 읽을수록 더 다양한 사고 불러와 - 심사위원 김문홍 극작가·김남석 연극 평론가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넘기는 시점에서, 111편에 달하는 희곡과 시나리오가 투고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극 장르의 특성상 희곡·시나리오에는 우리의 현실과 세상을 닮은 공간이 등장하기 마련인데, 그 안의 세상 역시 조용한 태풍을 간직한 곳이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최종 심사에 오른 작품은 ‘메리 고 라운드’, ‘수족관’, 그리고 ‘핑크색 옷은 절대로 입지 않아요, 돼지의 스킨색이니까’였다. ‘핑크색…’은 시멘트 교반기를 통해 인간의 개조와 박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이질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경우였다. 다만 작품이 겨냥해야 할 궁극적인 의미라는 측면에서 아직은 성숙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었다. 
‘메리 고 라운드’와 ‘수족관’은 깔끔한 대사와 대담한 터치가 신인답지 않은 유연함을 보인 경우였다. 특히 ‘수족관’은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대사의 기능이 확연하게 발휘된 경우였다. 하지만 ‘메리 고 라운드’의 구조적 안정감과 언어의 윤환성이 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두 작품 모두 당선작으로서는 손색이 없었으나, 현장 대본으로서의 특성이 강조된 ‘수족관’에 비해 정통적 극작술과 희곡적 짜임새가 앞세운 ‘메리 고 라운드’가 더 안정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하겠다. 비록 ‘수족관’이 이번 심사의 최종 영예를 안지 못했으나, 공연 대본으로서의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 주었다고 하겠다. 
‘메리 고 라운드’는 여러 차례 읽으면 더 다양한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폭을 동반한 희곡이었다. 앞으로 극작가로서 활동할 때, 희곡의 구성과 사유의 폭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아쉽게 물러나야 했던 경쟁자에게는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다. 시국이 인정되고 우리가 믿는 민주주의가 다시 이 땅에서 피어나기를 바란다는 말도 함께 전하고 싶다. 

 


희곡 당선자 윤주호(32) 씨의 고향도 알고 보니 부산이었다. IMF 이후 동남은행에 다녔던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했다는 것이다. 윤 씨는 서울대를 졸업한 후에 SBS에서 예능 PD로 3년간 일하다가, 지금은 아버지 일을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대학 때 연극반을 했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어떤 식으로든 연극을 계속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올해 한예종 극작과에 입학했다. 올해 신춘문예에 7편을 응모해서 부산일보 포함 2편이 당선되는 성과를 거뒀단다. 희곡을 한 번 써 보라는 이야기는 부인의 제안이라고 했다. 부인 역시 한예종의 서사창작과를 다닌다니 머지않아 부부 작가의 탄생을 목격할 수도 있어 보인다. 윤씨는 "어릴 때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두 사람이 앉아서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이 발생하고 클라이맥스에 이를 수 있는, 그런 희곡을 쓰고 싶다"라고 말했다. 또 “제가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글을 썼다면 그건 모두 제 인생에 의미를 더해준 사람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저는 제 인생에 의미를 더해준 친구, 동료, 스승을 한아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당신들 덕분입니다.”고 소감을 말했다.

 

 

당선소감 - 윤주호

저는 희곡 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자신 있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좋아하는 일이 몇 가지 안 되지만, 사실 이것 말고 하나라도 있나 싶지만, 희곡 쓰기만큼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서웠습니다. 희곡은 공연을 위한 글인 만큼 공연이 되지 못한 글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희곡을 쓸 동력을 잃을까 무서웠습니다. 부끄럽지만 제 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없습니다. 아니, 더 자신이 없어진 것도 같습니다. ‘같습니다’라는 말을 이렇게 많이 쓴 걸 보니 정말 자신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번 신춘문예를 계기로 좋아하는 희곡 쓰기를 마음껏 좋아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말을 썼다면, 모두 제 삶에 의미를 보태준 고마운 사람들 덕분입니다. 지수, 주한, 동명, 리, 다솔, 현준, 윤아야, 덕분에 연극을 좋아하게 됐어. 유진 님, 민아 님, 상호 님, 같이 읽고 같이 고민해 줘서 감사합니다. 박상현 선생님, 고연옥 선생님,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장인어른, 장모님,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 아빠, 예지야, 기다려 줘서 고마워. 가족이자 연인이자 친구인 슬기야 고마워. 멍멍아 건강하자! 부족한 이야기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심사위원분들과 부산일보 관계자분들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약력: 1992년 부산 출생.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전문사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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