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한 SNS에서 특정 게시물을 본 학생들이 집단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후, 정부에서는 조사팀을 꾸려 해당 SNS를 운영하는 회사를
조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해당 SNS의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한
개발자인 민수는 조사팀의 집중적인 조사를 받게 된다.
한편, 해당 사건의 전말을 조사하기 위해 회사의 대표를 찾아간
기자가 회사의 책임을 추궁하지만, 대표는 알고리즘은 블랙박스이며,
이미 유기체처럼 자율성을 획득했기 때문에 책임을 특정하기 힘들다며,
자신들의 책임을 부인한다.
민수는 조사팀의 조사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의심하게
되고, 기자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한다.
기자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민수를 도와주기로 하고,
두 사람은 힘을 합쳐 반드시 경영진에게도 책임을 묻자고 다짐한다.
그러던 와중에 음모론자가 등장해 이 사건이 정부가 자신의 스캔들을
덮기 위해 꾸며낸 가짜 뉴스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궁지에 몰린 민수는 대표를 찾아가, 자신이 음모론자의 방송에 출연하기로
약속했으며 방송에서 편파적인 조사 실태를 폭로할 것이라며 협박한다.
뜻밖에도 대표는 민수의 방송 출연을 반기는데, 민수가 음모론자의 방송에
출연하면, 음모론이 힘을 얻으면서 회사에 대한 대중의 비판이 초점을 잃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이런 논리로 대표는 오히려 민수에게 방송에 나가
“조사팀이 표적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하라고 부추긴다.
음모론자의 음모론이 사태의 진실을 흐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출연하게 된 음모론자의 방송에서, 민수는 대표와 약속했던 것처럼
회사와 조사팀이 표적 수사를 하고 있다며 비난한다.
음모론자는 민수의 그런 폭로가 자신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방송이 끝나기 전, 음모론자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며
민수에게 “정말로 아이들이 죽었다고 믿는지, 아니면 (자신들처럼) 정부의
가짜 뉴스일 뿐이라고 믿는지” 묻는다.
이 질문을 계기로 민수와 음모론자는 논쟁을 벌이게 되는데,
논쟁이 격양되면서 민수는 자신도 결백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대표의 계산대로 이 방송을 통해 음모론자의 음모론이 힘을
얻으면서 조사팀은 혐의 없음 의견으로 조사를 종결한다.
조사가 종결되는 날, 조사실에서 민수는 조사관에게 묻는다.
누군가는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냐고.
조사관은 “그것은 우리에게 허락된 진실이 아니”라며 자조한다.
심사평
최진아 작가(극단 놀땅 대표), 장우재 연출가(대진대 연기예술학과 교수)
시대의 ‘불확실’을 확실히 드러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올해 응모작에는 ‘불안함’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 있었다. 우선 사회 문제가 전면에 드러나는 작품이 거의 없었다. 몇몇 혼란스러운 사회 통념을 관념적으로 다루는 작품이 있었으나 소수였다. 이에 비해 ‘알 수 없는 이유’가 태연히 제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시골을 배경으로 하거나 노인을 등장인물로 삼는 경우도 양적으로 많았다. 무엇보다 문학적 메타포를 다시 살려내려는 경향들이 뚜렷했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상상을 공유하려는 공상과학(SF)은 특히 인공지능(AI)에 집중되어 좀 더 ‘현재’로 내려온 것이 고무적이었다. 물론 각박한 생활 분쟁을 다루는 작품도 여전했지만, 인간과 인간이 강렬하게 부딪히는 경우는 드물었고, 희극을 시도하는 작품들이 오히려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인간이 테이블이 되거나, 물고기가 되는 상상 및 소수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작품들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중간 수준의 작품들은 줄고, 준수한 작품과 아직 글쓰기가 덜된 작품은 많았다. 이 중 아쉬운 것은 많은 작품들이 옴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드라마의 영향을 받아 쓰인 것 같다는 인상이었다. 연극의 표현 방식이 과거보다 풍성해져 서사를 전개할 때 다양한 방식들이 가능해졌지만,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오히려 관객을 깊이 깨우는 ‘알맹이’를 탄생시킨다는 것은 희곡만의 장점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불확실’한 시대에 ‘알맹이’를 짓기란 참 어렵다. 그럼에도 이 ‘불안함’을 살아내기 위해 매일 이야기를 지어보려는 많은 작가가 있는 한 그것은 언젠가 이루어지리라 본다.
‘이명’, ‘고도 스돕도 아닌’, ‘괜찮으세요?’, ‘2025년 신춘 문예 당선자 귀하’, ‘하여가’가 언급되었지만, 심사위원들은 단번에 ‘없는 잘못’을 선택했다. ‘없는 잘못’은 시대의 불확실을 토로하거나, 비명을 지르는 수준을 넘어 ‘불확실’ 자체를 밀도 높은 극적 완성도로 짚고 있었다. 마치 거기서부터 출발이라는 듯 ‘불확실’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 또한 선명하여 단연 돋보였다.
당선소감 - 윤주호
1992년 부산 출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재학
저는 말을 잘 못합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묻지도 않은 신상 내력을 하염없이 읊는가 하면, 정작 중요한 자리에서는 상대방과 눈도 못 마주치고 발치만 쳐다보며 속삭이곤 합니다. 그중 최악은 피하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싸워야 할 때인데, 그럴 때면 머릿속은 하얘지고, 채 한마디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며, 어떨 때는 눈물까지 고이곤 합니다. 그렇게 밖에서 한참을 버벅대고 온 날이면 집에서는 이런 말을 해야 했는데, 저렇게 따져 물어야 했는데, 하고 밤새 잠도 못 이루며 머릿속으로 당당히 상대에게 맞서는 제 모습을 시뮬레이션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희곡은 저에게 판타지입니다. 물론 희곡 속에서 인물들이 자기가 할 말을 똑 부러지게 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희곡 속에서도 인물들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지 못하고, 서로를 오해하고, 싸워야 할 때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 후회하곤 합니다. 그래도 그들은 전달되지 않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오해에서 이해로 넘어가기 위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그러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결말에 이르기 위해 말하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포기하고 도망친 대화의 역사와 같은 저와 비교했을 때 희곡의 인물들은 훨씬 더 용감하고, 끈기 있고,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저는 희곡의 편에서 살아보고 싶습니다. 이번 당선이 저에게 적어도 그 정도의 용기는 내 보라는 응원같이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겁쟁이가 가질 수 있는 용기로 계속 써 나가겠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부족한 저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가족들, 친구들,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부족한 글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심사위원분들과 동아일보 관계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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