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송희지 '탐조기(探鳥記)

clint 2025. 1. 22. 05:33

2025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당선작

 

 

심사평 - 임선옥·평론가 오경택·연출가
어둠서 빛으로 가는 여정… 다채로운 연극성 돋보여

올해 응모작은 예년에 비해 대다수가 개개인을 중심으로 한 일상과 주변에 대한 이야기라는 경향이 있었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권모술수와 부패와 불신의 크고 작은 양상이 빈부, 나이, 직업, 계층, 성별 불문하고 뒤섞여 나타났다.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거시적 주제보다 개인에게 집중된 것이 아주 보통의 하루를 염려해야 하는 오늘의 현상일 수 있지만, 대화 형식으로 풀어 나열한 독백에 가까워 시야의 협소함에 머문 작품이 많았다는 점은 못내 아쉬웠다. 그럼에도 당선작으로 선정한 ‘탐조기’는 응모작 중에서 발견한 수작이었다. 
‘탐조기’는 시적 분위기의 심리극으로 다채로운 연극성이 돋보였다. 고인이 된 부모 복수를 꿈꿔온 소년과 그 대상이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여정은 오해에서 이해로, 이해에서 화해로 자연스럽게 극적인 역동성을 유지하며 흘러간다. 작가는 첫 장면의 둔하고 무거운 절 두 번을 마지막의 경쾌하고 희망찬 절 한 번으로 연결해 과거와 현실의 시간, 공간과 사연을 섬세하게 교직해 나가며 극을 구성한다. 다만 소년의 대사가 작위적이라는 점과 몇몇 상징적 요소가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은 점은 아쉬웠으나, 무대화 과정에서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기꺼이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심사 과정에서 ‘계약직 후 정규직 전환 검토’와 ‘슬기로운 치매 생활’ 등의 작품이 언급되었으나 기시감 있는 소재, 예측가능한 전개, 감상적 결말 등의 이유로 당선까지 이르진 못하였다. 앞으로 글과 말과 몸 사이를 넘나들며 유희할 수 있는 작가로 더욱 성장하길 기대하고 응원한다. 

 



당선소감 - 송희지
- 2002년 출생
- 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수료

​‘탐조기’는 24년 봄에 쓰고, 여름에 고친 작품입니다. 그때 저는 4년간의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학기를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학기가 주는 여유에 힘입어, 그간 수강한 적 없던 극 창작수업에 발을 들였습니다. 합평 시간, ‘탐조기’를 학우들과 교수님 앞에 내놓을 때, 물컹하고 미동 없는 연란(軟卵)을 바라보는 새의 기분으로 불편하게 앉아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부끄러운 한편, 부족한 글을 꼼꼼히 살펴보고 평해주는 여러 목소리들이 감사했습니다. 그 다정에 힘을 얻어 원고를 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놀라운 가르침을 주신 교수님들,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의 학우들, 제 곁의 근사한 주변인들…. 그 모든 사랑하는 스승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투고를 위해 우체국을 찾은 금요일. 거리에는 흰 눈이 아주 많이 쌓여 있었고, 저는 순백의 낙관에 조금 젖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뒤, 12월 3일의 밤을 통과하고 나서 저는 수렁에 빠졌습니다. 두려워졌고,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탄식했고, 분노했습니다. 무수한 질문이 액성을 갖고 몸 구멍을 드나드는 가운데, ‘계속’ 살아가는 법, ‘계속’ 쓰는 법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 몇 번의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습니다. 참으로 어지러운 시국입니다. 제 시작(詩作)도 길을 잃은 판국에, 어떻게 해야 아직 미숙한 극작 또한 ‘계속’할 수 있을까요. 다만 ‘말하기’가 모든 갈래의 문학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려 합니다. 겨냥하듯 말하겠습니다. 가장 안쪽을 직시하려는 마음으로요. 그 의지가 닳거나 어긋나지 않도록, 날마다 떠올리고 벼리겠습니다. 어떤 타의, 악의에 의해 우리가 믿고 아껴왔던 것, 거대한 성 같던 무엇이 한순간에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어느 밤 똑똑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송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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