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에인 랜드 작 '1월 16일 밤에 생긴 일'

clint 2025. 1. 21. 21:24

 

<제1막> 
세계적인 대재벌  비욘 포크너가 뉴욕에  자신의 15층 빌딩에서 투신 사건이 일어난다.

1월16일 밤에 일어난 이 처참한 변사를 놓고 헤스 재판장을 비롯하여,

이 중대한 사건을 맡은 야심적인 검사  스티븐슨이, 각계의 저명인사 12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입회한 가운데, 몰려든 수많은 방청객 속에서 재판은 개정된다.

공판 절차에 따라 인정심문과 사실심리가 속개되고 방청석엔 조용한 파문이 인다.

증인으로 등장한 검시관  커크랜드 박사와 야간 경비원  핫킨스, 사립탐정  벤프리트는

각각 자기의 직업 의식을 발동한 냉정한 견해를 피력한다.

무엇인가를 석연치 않은 점이 남아있는 것 같은 불투명한 말들이 오간다.

가정부  마그다는 포크너와 그의 정부 카렌의 부도덕을 고발한다.

돌연히 나타난 미망인  낸시와 피고인 정부  카렌과의 사이에는 누가 진실로

죽은 그를 사랑했는가를 두고 싸늘하고도 불꽃 튀는 시선이 오간다.

카렌은 졀규한다. "우리 둘 중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고.

 

<제2막>
이튿날, 오전 10시, 재판 속개, 캘리포니아로부터 날아온, 국립은행장 휘트필드는

죽은 포크너와의 관계를, 그의 사위라고 밝힌다. 아울러 재정문제로 고심하고 있는

포크너의 기업을 일으켜 볼 생각으로, 2, 500만 달러의 장기 대부를 해줬다고 한다.

딸의 행복과 다가올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포크너의 전 비서  전퀴스트는 8번째 증인으로 등장하여, 대재벌의 남모르는

재정상의 파산 상태와 히트필드와 포크너와의 대부 문제를 둘러싼 대화 를 증언한다.

피고, 스스로 증언을 요청한 카렌은 놀라울 정도의 침착성을 가지고,

포크너를 처음 알게 된 동기, 부의 성장 과정, 스웨덴으로부터 미국에로의 이주,

그와 미망인과의 결혼, 그 결혼과 더불어 몰고 온 휘트필드의 거액의 재정보증서

위조 등의 대기업의 모순을 폭로한다. 이때 예고없이 들이닥친 깽 두목 뤼건은....

 

<제3막>
뉴욕 고등법원 제11호 법정. 검사 프린트는 뤼건을 증인으로 채택하려 했으나,

그가 도주했다고 말한다. 그 순간 방청석 문이 열리며, 바로 문제의 뤼건이 등장,

카렌과 더불어 1월16일을 전후한 자살 여부 등의 사건의 전모와 진상을 얘기한다.

휘트필드의 증언 중,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비서 전퀴스트의 울부짖는 증언에는

사건의 실마리가 눈 녹듯 풀리는데... 이어서 검사의 준열한 논고와

인간적인 변호가 있은 다음, 배심원들의 판결이 내려지는데....

 

 

 

<1월 16일 밤에 생긴 일>은 재벌 총수의 죽음에 관련된 한 여자 피고를 둘러싸고 검사와 변호사가 벌이는 공방전을 다룬 것이다. 그러니까 이 연극은 재판극인 셈이다. 요즈음 들어서 자주 상연되었던 재판 형식의 작품들은 극의 본질에 맞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극 자체의 갈등이나 대립을 드높이기보다는 줄거리 자체에 매달린 채로 쉽게 넘어가려는 경향이 있었다.<1월 16일 밤에 생긴 일>도 재판극 본연의 짜임새보다는 줄거리의 전개에 역점이 주어져 있다는 점에서 다른 극단들의 공연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는 두 번밖에 공연을 갖지 않은 젊은 극단인 대하의 작품이 십 년쯤 묵은 극단들의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묵은 냄새를 풍겼다는 뜻이다. 극단 대하는 연극협회가 극단 규제를 강화할 무렵에 강계식, 고설봉 같은 원로 연극인들을 앞장세워 꽤 쉽게 정식 극단 체제를 갖추었으며, 어려운 현실 속에서 그래도 의욕에 넘친 첫발을 내디뎠었다. 

 

 

 

 막이 열리면 무대는 법정처럼 재판관석, 배심원석, 증인석, 피고인석으로 구분되어 있고, 관객은 싫든 좋든 방청석에 앉아 있는 꼴이 되어 있다. 법정 서기의 호명에 따라 객석에 있던 연기자들이 배심원이 되어 방청석에서 무대의 배심원 자리로 올라간다. 따라서 별수없이 관객은 파산한 재벌 총수의 죽음과 관련된 1월 16일 밤의 사건을 다룬 재판을 방청하게 된다. 이것은 흔한 연출방법이다.
포크너라는 재벌총수가 15층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져 죽은 사건에는 그의 비서였으며 정부였던 카렌이 살인혐의로 고발되어 있다. 검사의 심문과 증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카렌의 혐의는 짙다. 그러나 극의 묘미는 반전하는 데에 있다. 알고 보면 포크너는 자살을 꾸며서 파산한 기업을 버리고 마지막 재산을 꾸려 카렌과 달아나려다가 그 낌새를 눈치챈 장인의 음모에 걸려 비행기 사고로 죽은 것이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그 뒤에 남은 무리들 가운데는 국립 은행장인 장인이 있고 이제는 미망인이 된 그의 딸이 있고, 피고를 사랑하는 깽 두목 - 카렌과 포크너의 도피행을 방조한 묘한 심리의 사나이 - 이 있다. 이 줄거리는 통속극의 정석이라 함직한 것이다. 여기에는 이미 재판극 본연의 형식은 소멸되어 있다. 본디 모든 극은 판결을 내려야 하는 하나의 사건을 다루기 마련이다. 이미 극은 하나의 사건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재판관이 된 작가의 평가를 드러내 준다.

 

 

 

그런 점에서 보면<1월 16일 밤에 생긴 일>은 재판의 형식을 빌어 추리소설처럼 대립과 갈등을 풀어 나갔고, 연출도 완전히 그 선에 맴돌았다. 그러니까 연출가는 어떻게 이 사건의 복선들을 폭로시키면서 극적으로 반전시킬 것인지에 모든 관심을 쏟은 듯했다. 물론 에인 랜드(Ayn Rand)라는 여류 작가의 희곡정신이 그런 연출 방식을 유도할 만큼 추리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작가나 연출가가 연극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었다면 과연 사건의 진행 그 자체에만 관심을 쏟을 수가 있었겠는가 하는 데에 있다. 극적 격정이 고뇌 속에서 빛날 때는 아주 강렬한 사랑의 충격이 가해질 때이다. 그것은 사랑만이 아니라 금전욕이나 권세욕이나 자유에 대한 욕망이나 정의를 지향하는 자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위장 자살을 꾀하는 계기가 돈에 있는지 사랑에 있는지 분명하지가 않았다. 이 연극에서 격정을 느낄 수 없는 까닭은 줄거리가 추리극 형식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판의 소용돌이에 빠진 여자의 고뇌가 돈에 얽힌 것인지 사랑에 얽힌 것인지 확실치 않은 데에 있다.사랑하는 남자를 지체 높은 은행장 딸에게 뺏기고 그래도 미련이 남아 남몰래 둘만의 은밀한 이중생활을 이어 나온 여자가 자기의 애인이 파산상태에 이르자 많은 돈을 빼돌려 외국으로 빠져나가 둘만 살려 했는데, 그런 통속적인 이야기에 과연 고뇌 어린 격정이 있었다고 인정해 줄 수 있을까? 적어도 우리는 주인공의 마음속에서,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현실의 사건을 넘어선, 그들 자신을 넘어선, 어떤 지향점을 발견할 수 있어야만 그것이 통속극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 연극에는 지향점이 없었으므로 본처와 정부의 갈등과 대립도 공허해졌고 장인의 음흉한 음모도 전혀 극화되지 못했다. 깡패의 잔인한 격정이 간신히 낮은 차원에서 작용했을 뿐이다. 극이 격정의 양식이라는 견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배우의 말이나 손짓이나 동작은 줄거리인 사건의 진행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나 연출가의 판단기준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들은 사건을 보는 관점에 관심을 보인다. 그것이 극의 지향점이다. 그러나<1월 16일 밤에 생긴 일>은 그날 밤에 꾸며진 음모의 해명에만 관심을 두고 사건을 맡은 사람의 서로 다른 관점, 곧 검사와 변호사의 공방전을 양념으로 삼아 우리의 추리심리만 만족시켰다.

 

작가  Ayn 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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