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신명순 '이순신'

clint 2025. 1. 20. 07:22

 

 

1592년. 선조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때 조선 조정은 당파싸움에 여념이 없었고

물밀듯이 밀어닥치는 왜병 앞에 북으로 북으로 달아나기에 바빴다.

당시 전라좌수영을 지키고 있던 수군절도사 이순신은 병선을 정리하고

군사를 조련하여 적을 맞아 싸울 비장한 각오로 전장으로 나간다.

때는 이미 경상도 전 해성이 적의 수중에 들어간 뒤...

그 고난한 형세를 가지고 이순신은 준비된 수병과 손수 창안한 거북선이라는

공격선 무기를 사용, 싸움마다 적의 수군을 부순다.

패전을 모르는 이순신의 해군 때문에 조선은 위기일발의 파국에서 헤어난다.

그 공으로 이순신은 삼수군통제사가 된다.

그리하여 소강상태가 계속된다.

 

 

 

그러나 언젠가 왜군이 다시 조선을 침범하리란 것을 예감한 이순신은

밤낮으로 군사를 조련하고 임전태세를 굳게한다.

그러나 이러한 순신의 처신때문에 순신은 오히려 그를 미워하는

서인 일파의 모함을 받아 투옥되고 만다.

이런 배경에는 순신의 공을 시기하는 경상수사 원균의 중상모략이 있었다.

 

 

 

이순신 대신 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은 그 포악한 성질로 인심을 잃게 되고

민심은 하루하루 그흫 비닌한다.

왜의 대군이 정유년에 다시 침범해 오자 원균은 단 한번의 싸움에서

삼도 수군을 거의 수장시키며 잃고 만다.

서울이 다시 위태로울 때 순신은 다시 수군절제사가 된다.

그리고 순신의 신기에 가까운 전술과 노력으로

우리 수군은 다시 왜의 수병을 물리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마지막 한사람의 왜병도 살려보내지 않겠다는 순신의 굳은 뜻은

정유년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적의 흉탄에 목숨을 잃는다.

 

 

 

작가의 말 - 신명순 
정사를 작품의 소재로 잡았을 때 작가가 劇的 효과를 위해서 그 역사적 현실에대해 어느만큼 참여할 수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역사란 어느 작가 한사람이 제멋대로 수정할 수도 또 고의적으로 오해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되도록 허구보다는 史的 현실에 충실하려 애썼다. 
년초부터 사극을 하나 쓰고 싶었다. 그러나 어떤 계기 없이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 劇場의 주선으로 뜻하지 않은 날자에 이 작품을 썼다. 내 나름의 안목으로 보면 이순신의 극은 소재로서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이순신은 이미 기정사실화된 영웅, 소위 결점이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물은 무대상에서 자칫 따분해지기 쉽다. 모순된 얘긴지 모르겠으나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순신의 결점을 찾고자 제작과정에서 무던히 애썼으나 종래 뜻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연극을 염두에 두고 이미지보다는 외형적인 것을 사상적인 것보다는 시각적인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치에 아무 제약을 주지 않을 것도 연극이 갖는 공동체적 책임을 나누어 갖자는 것. 작가로서 연출자에게 <덕>을 본다는 式의 말 나는 몹시 싫어해왔다. 직접을 만드실 이진순先生님께 무던히도 생때를 써봤다. 만일에 이 연극의 結果가 좋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李 先生님의 <덕>일 것이다. 덕을 보지 않고 오히려 보탬이 될 수 있는 작품을 서둘러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