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마임극 '히트 앤드 런'

clint 2025. 1. 17. 17:17

 

 

 

막이 오르면 야구선수들의 훈련. 치킨과 캥거루 팀으로 분한 광대들의 쇼다.
내가 던지는 공을 한번 쳐봐라! 치킨팀의 잘난 투수. 그의 공은 거의 
신화적이다.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물론 실수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역시 타자를 무참히 아웃시킨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캥거루팀 감독은 열이 난다. 
선수들에게 싸인을 열심히 보내면 뭐하는가! 화병에 쓰러지는 감독.
내 판정을 믿어라! 캥거루와 치킨팀의 놀이를 판정하는 주심. 
그 의 판정에 반대하는 감독. 
장면을 되돌리면서 서로의 판정이 맞다고 주장한다. 
시비는 결국 끝나지 않고...
막간show. 치킨팀과 치어걸의 신나는 춤. 
반면 길 잃은 아기 캥거루. 아기 캥거루를 치킨이 데리고 나간다.
나도 홈런 한번 치고 싶다. 자신감 없는 타자. 배부른 아내의 기대에 
어린 눈빛. 그는 한번만이라도 공을 치고 싶다. 
이때, 경기장으로 장소가 바뀌고, 관중은 마치 자신이 해설자인 것처럼 
경기를 진행시킨다. 1번 타자의 등장. 3진 아웃! 흥분한 관중이 뛰쳐나온다. 
경찰이 들어와 그를 끌고 나간다. 다시 등장한 자신감 없는 타자, 
직구, 볼, 스윙으로 포수 뒤통수치기. 변화구... etc. 
공에 대한 강박관념은 점점 커지고, 
롤러스케이트를 탄 코러스들이 공으로 그를 에워싼다.


야구는 전쟁?..캥거루팀의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 헤멘다. 
무대 뒤의 net가 막으로 바뀌면 캥거루팀의 수비. 
이들은 공을 잡으려다 부딪치고, 놓치고, 엉터리 수비는 끝이 나지 않는다. 
치킨팀의 공격. 속사포 같은 그들의 공격에 캥거루팀은 혼비백산한다. 
어느새, 타자들은 권총, 기관총, 바주카포로 캥거루팀을 묵사발로 만든다.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벤치에 앉아 붕대와 목발에 의지 한 캥거루팀. 
반대로 치킨팀은 음악과 술로 파티가 벌어진다. 
치킨팀은 캥거루팀을 놀려대고, 캥거루팀은 어수룩하게 당하기만 한다.
8. 홈런! 홈런! 인생은 역전이다! 홈런! 캥거루팀의 자신없는 타자가 
드디어 홈런을 쳤다. 캥거루팀의 역전승으로 경기는 끝! 
축제의 시작. 치킨, 캥거루를 피해 달아나다 캥거루에게 붙잡힌다. 
아이를 되찾은 캥거루. 배부른 아내가 이때 아이를 낳고, 
경기장은 공으로 뒤덮힌다. 한 바탕 난리가 끝나고....
텅빈 무대 안에서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 
전화를 받는 관중. 
그는 일상 속으로 사라진다.

 

 

 마임이스트 남긍호가 이끄는 마임극단 호모루덴스 컴퍼니가 2000년 첫선을 보여 호평받았던 작품이다.
 <히트 앤드 런>은 물질과 권력이 지배하는 현대사회를 '스포츠'의 포지션과 매개를 통해 풀어나가려는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졌다. '스포츠'는 인간의 육체적 커뮤니케이션이다. 그 커뮤니케이션은 '마임'이라는 매개를 통해 무대에서 하나의 완전한 소리를 갖추어 관객에게 그 메세지를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는 심판이 되고, 승패에 울고 웃는 선수들의 모습으로 물질과 권력에 길들여진 우리가 투영된다. 그렇기에 야구는 마임으로 표현될 수 있는 가장 좋은 스포츠라 할 것이다. 또한 '야구'는 제스츄어와 과장된 언어들로 소통하는 게임이다. 작전 지시도 몸으로 하는 싸인으로, 주심의 판결도 과장된 제스추어로 보여지며 관중들의 응원과 치어리더들의 춤은 거대한 물결의 움직임과도 같다. 이것들은 '게임'이라는 거대한 셋팅 안에 부여된 캐릭터만이 갖는 행동으로써만 가능하기에 매우 연극적이면서도 무용적인 부분도 함께 가지고 있다 할 수 있겠다. 이 공연은 바로 이러한 점들을 빌려와 스토리보다는 캐릭터와 에피소드, 장명위주로 펼쳐진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매우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할 것이다. 관객도 이 공연의 배우가 되는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관객은 캐릭터별 설정에 맞추어 '관중'이라는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관객들은 극 속의 선수들을 응원하며 함께 소리 지르고, 응원단장의 움직임에 땨라 337박수를 치고 몸으로 하는 구호를 함께 따라할 것이며, 치어리더들의 춤에 황홀해 할 것이다. 파울과 심판의 잘못된 판정에 야유도 보내고 상대편의 멋진 플레이에 박수도 쳐야 한다. 게임은 관중의 응원이 없다면 그 재미를 잃기 때문에 이 공연은 관객에게 많은 '연기' 혹은 '놀이'의 세계로 끌어들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관객의 가장 중요한 Acting은 날아가는 공을 보며 시원해하고 떨어지는 파울볼 잡기, 그리고 이 공연이 던지는 메세지도 함께 받아내는 것이다. 

 

 

오유경(드라마투르그)의 글
<히트앤드런>은 가면과 중성가면 그리고 공연자 자신의 얼굴을 그대로 사용하는 삼중의 인물구조를 가지고 있다. 야구를 진행하는 경기자들은 구체적인 인물성격이 드러나는 캐릭터가면을, 야구공과 배트, 그 밖의 경기진행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중성가면을 쓴 코러스에 의해 진행된다. 또한 공연자 자신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 연기가 강조되기도 하는데, 이들은 관객에게 좀 더 밀접한 관중, 선수의 아내, 치어리더, 등 관계는 있으나 직접적으로 경기에 참여하지 않는 관찰자들이다. 이것은 8명의 적은 공연자의 수가 많은 인물을 표현해내야 하는 데에도 그 원인이 있으나, 그 보다는 공연의 시선을 야구경기를 지켜보는 한 관중의 입장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히트앤드런>은 야구 경기장에 들어와 경기를 지켜보며, 때로는 흥분하고 감정을 이입하며, 때로는 철저한 제3자의 입장에서 경기와 경기장 속에 있는 군상들을 관찰하는, 한 관중의 자유로운 머릿속 상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그 시선은 결코 까다롭거나 비판적이지 않다. 오히려 매 우 즐겁고 긍정적이며 재치가 넘친다. <히트앤드런>에서 보여지는 야구는 한 스포츠게임 이전에 모두가 흔쾌히 즐기는 시끌벅적하고 화 려한 축제다. 우린 그저 한 야구장에 들러 흥겨운 상상의 축제를 한판 기분 좋게 즐기고 나오면 그만이다. 그것이 인생이고, 인생은 게임이며, 그 게임은 한바탕 홍겨이 벌어지는 축제라고 <히트 앤드런>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