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도 사회신분도 알지 못하는 남여가 천진난만하면서도
섬뜻한 대화가 이어지고... 그들 주변에는 관이 있다.
릴베와 휘디오는 자신들이 죽인 아이의 관을 옆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착한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성경을 읽으며 착하게 사는 ‘놀이’를 시작하려 하지만 결국 시들해진다.
두 인물은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사람 같지 않은 천진난만함을 보여주는데,
그들이 열심히 노력한 끝에 찾게된 착한사람의 유형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등이다.
그들은 그것에 한가닥 희망을 건다.
그러나 고리타분하기에 싫증이 난다.
<기도>는 그의 초기작품의 하나이다. <기도>는 '미스틱 드라마' 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짧막한 작품으로서 나이도 사회신분도 전혀 알 수 없는 두 남녀가
그들이 죽인 어린아이의 관 앞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 대화가 순진한가
하면 잔인하고,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감미로운 맛을 지닌다.
죽이는 행위는 아라발의 작품의 여러군데 나타나는, 말하자면
라이트 모티브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 두 남녀는 갑자기 '선량한 인간'이 될 것을 결의한다.
‘죄의식’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러나 이 방법을 모색하여 얻은
그들의 결론은 복음서에 확립된 선인의 유형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선의에의 추구는 아라발의 작품에서 보는 또 하나의 테마이다.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퇴색한 희망의 잔해를 찾아낼 뿐이다.
이는 아이처럼 순진무구한 눈을 통해 ‘선’과 ‘도덕’ 등 사회적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두 남녀가 제시하는 <기도>는 사회적. 도덕적 기준점 성립 이전의
세계를 유아적 행동 양식과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특정 관념에서 자유로운 상태의 두 남녀는 인간 행복을 위해
인간들이 만든 기준들이 얼마나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규격화되고 틀에 짜여진 현실의 차가움을 표현한다.
페르난도 아라발(Fernando Arabal, 1932~)은 1930년대 출생의 작가이다. 스페인 출신의 그는 어릴때부터 스페인 내전, 그 뒤에는 프랑코의 독재정치 아래서 자랐기 때문에 체재에 대한 반항, 인간 해방에 대한 집념이 그의 정신을 형성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으리라고 쉽사리 짐작이 된다. 그리고 그가 성년이 되면서 자유의 땅 파리로 옮아온 것도 예상될 수 있다. 그가 극작가로서 데뷔한 것은 스페 이 아니라 프랑스였으며, 그에게 영향을 끼친 작가들도 카프카, 알 레드 자리, 베케트같은 이른바 전위적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역시 부조리계열의 연극에 선다. 그러나 그의 조국에서의 공포의 유년 경험은 그의 생리의 일부가 되어 아라발의 작품세계는 언제나 그 그림자가 따른다. 악몽의 정착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그의 작품 세계를 두고 '떼아트르 파니크(Theatre Panique)' '공포연극'이란 말이 따른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현실사회의 부조리, 사악함, 종교, 도덕, 위선 등의 병폐를 그는 단순히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더럽고 무서운 현실 가운데 사는 인간의 악몽 - 꿈속에 투영된 영상을 그리는데 집착한다. 그의 말을 빌면 공포연극이란, 인생자체가 그러하듯이 '비극과 어릿광대 연극, 시화 속된 것, 사랑과 에로티시즘, 세련된 감정 악취미, 신성과 모독, 숭고한 것과 더러운 것이 동거하는 연극'이라는 것이다. 처녀작 <전쟁터의 피크닉>(1959)부터 시작하여 대표작 <건축가와 앗시리 황제> (1967) 등 명작을 많이 남겼다.
종교 재판과 스페인 내란, 그리고 병약한 신체의 틈바구니에서 어려운 청년기를 보내며 <기도>를 집필하게 된다. 아라발의 희곡들은 종종 부조리극으로 분류되며, 동시에 제의성, 환상성,잔혹성을 지닌다. 아라발의 불우한 유년시절은 작품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 그는 어릴 때 스페인내전을 경험했고 장교였던 그의 아버지는 사상 문제로 체포되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를 고발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그것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아라발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게 된다. 또한 가톨릭 수도원과 학교의 엄격한 교육 속에 형성된 그의 뿌리 깊은 죄의식과 억압은 사도 - 마조히즘적 행위, 살인과 폭력을 자행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해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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