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윌리엄 사로얀 '동굴 가족'

clint 2024. 12. 26. 08:35

 

 

도심재개발사업으로 철거가 임박한 뉴욕의 한 낡은 극장 무대. 겨울.
그곳에 대왕이라 자처하는 광대, 여왕이라 불리는 배고픔에 병든 여자
그리고 프로복싱 챔피언이었던 전직 권투선수인 "공작"이 살고 있다.
장난감 공장에서 쫓겨나 집 없고 겁에 질린 소녀가 극장으로 뛰어 들어왔다가 
공작의 호의로 극장에 같이 머물게 된다.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지만 그들은 과거의 성공을 재현하고
즉흥극을 즐기며 살아가고, 소녀는 점차 공작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러던 중 거리의 흥행사인 남자가 아내의 해산으로 도움을 청하며 
극장으로 오게 된다. 하루 벌거나 동냥해 하루를 사는 이들.
대왕은 해산한 애엄마가 허기진 것을 알고 공작에게 동전을 주고는
우유를 사오라고 시키고, 새벽에 나간 공작은 가게를 찾아 헤매다가
우유배달차에서 우유 6병을 훔처 도망오고...
그렇게 하나 둘씩 이 동굴 같은 극장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따스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 극장도 재개발로 곧 헐리게 된다.

 



"당신 생애의 시간(The Time Of Your Life)"으로 유명한 작가 윌리엄 사로얀의 장편 희곡이다. 1957년 브로드웨이 비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모두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로 사랑을 나누는 얘기로서 우화극이라 할 수 있다. 갈등 구조의 심화나 감정의 상승, 극적인 모멘텀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등장인물들 각각의 캐릭터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런 곳에 어울리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우린 지금 이곳에 있지. 곰 같은 짐승에게나 어울릴 여기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 말이다."
 <동굴 가족>(The Cave Dwellers)은 철거가 임박한 뉴욕의 한 낡은 극장에 임시거처로 살게 되어 노숙자들이 동굴 속 같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품위와 유머를 잃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며 한 가족처럼 살아가는 아름답고 따뜻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동굴 가족의 원제는 윌리엄 사로얀(William Saroyan)의 The Cave Dwellers이다. The Cave Dwellers는 ‘동굴 거주자’를 뜻하는데, 원제 그대로 ‘동굴 거주자’가 아닌 ‘동굴 가족’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단순히 동굴 속에 거주하는 ‘거주자’가 아닌 ‘가족’이 되었다. 피가 섞여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단순히 거주지를 공유하는 룸메이트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의 동굴 속에서 나름의 룰과 호칭을 만들었고, 그 호칭에 걸맞은 품위를 보이고 대우해 주었다. 어떤 의미에서 동굴 속 사람들은 한때 무대 위에서 잘나가던 이들이었다. 잘나가던 사람들은 잘난 맛에, 자기만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었지만 어려울수록, 궁지에 몰릴수록 옆 사람을, 더 나아가서 생명을 존중하고 배려를 통해 사랑을 표현한다. 그리고 대사로 인간의 따듯함을 전달하기보다 배우들의 행동으로 인간의 따뜻함, 사랑을 표현한다. 작고 초라한 동굴 같은 무대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그리고 말없이 베풀어지는 행동들을 유심히 보면 마음속 깊이 뜨거워지는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리뷰: 윤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