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블랙이라는 개와 함께 사는 발명가 공동식 박사는
자신의 새 발명품을 선보이기 위해 이웃 사람들을 초대한다.
하지만 정작 찾아온 이웃은 새로 이사 온 로즈밀러라는 여성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선보인 발명품은 ‘어둠’이다.
한낮에도 주변의 빛을 모두 흡수하여 칠흑 같은 어둠을 만들어주는
어둠 제조기를 발명한 것이다. 어둠을 발명하다니!
정말 기발한 상상력이라고 찬탄을 금하지 않는 순간,
박사 역시 로즈밀러로부터 찬사를 받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즈밀러의 반응은 전혀 뜻밖이다.
“왜 이런 걸 발명하세요?"
왜 이런 걸 발명하느냐고?
이 한 줄의 질문이 바로 연극 <이웃집 발명가>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독특하고 재밌는 발명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박사의 가치관과,
도덕적이고 실용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로즈밀러의 가치관이 부딪혀 불꽃을 튀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불꽃이 격렬한 대립의 불꽃이 아니라
폭소의 불꽂이라는 것이다.
최우근 작가는 소통 불가능한 두 사람의 대화를 포복절도할 언어의 핑퐁게임으로 펼쳐 보인다. 무엇보다 두 주인공에게 공동식이라는 한국 이름과 로즈밀러라는 영어 이름을 붙인 것은 소통 불가능한 가치관의 대립을 상징하는 놀라운 장치다. 그것은 카프카가 ‘변신’에서 갑충이라는 메타포를 사용함으로써 소통 불가능한 두 세계의 이질감을 보여준 것만큼이나 효과적이다. 공동식 박사는 현실적인 가치관을 지닌 로즈밀러에게 자신을 이해시키려고 필사의 노력을 펼친다. 한편, 로즈밀러는 박사의 천재성은 인정하면서도 박사의 삶을 자기식대로 바로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따라서 이들의 대회는 진지해질수록 코믹해진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두 사람이 서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대화는 대화가 아니라 바로 코미디라는 것을 최우근 작기는 아주 정확하고 신랄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내가 옳고 상대방이 틀렸다는 식의 우격다짐이 삶의 일상적인 대화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관객들은 그야말로 웃다가 울게 된다.
최우근 작가가 만들어낸 희극의 세계는 개그가 아니라 불합리한 현실을 포착하고 성찰하는 상황의 코미디다. 배우들이 필사적으로 자신의 캐릭터에 몰입할수록 객석에서는 자연스럽게 폭소가 터져 나온다. 그리고 그 기발하고 코믹한 상황이 지닌 지독한 현실성이 관객들로 하여금 진한 비애를 느끼게 한다. 이것이 바로 최우근 작가의 작품이 담고 있는 탁월한 문학성이다.
최우근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철학과 재학 중 문과대 연극반 '문우극회' 활동을 하며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졸업 후 MBC에서 <경찰청 사람들>로 방송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다큐멘터리 <성공시대> <록 달리다> <복서> <파랑새는 있다> <형사수첩> 드라마 <강력반> 등을 집필하며 20여 년 동안 방송작가 생활을 했다. 그러다 몇 해 전, 친분 있는 연극배우들의 술자리에서 까맣게 잊고 지냈던 꿈 하나를 떠올렸다 연극, 아무도 말리지 않았지만 혼자 겁을 먹고 지레 포기했던 꿈이다.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꿈 하나를 더 얹었다 완전히 농담으로만 이루어진 비극 얼마 후 첫 희곡 <이웃집 발명가>를 탈고했다. <이웃집 발명가>는 2008년 5월, 문삼화 연출로 초연되었다. 지금도 꿈을 향해 느리지만, 뚜벅뚜벅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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