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둑이 어느 그믐 밤에 밤일을 나간다.
어느 집 앞에서 한 할머니를 만나는데
혹시 김용팔씨 집을 찾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그렇다고 하자
간밤의 꿈에 파병으로 월남에 간 손자의 친구가 찾아온다는 꿈을
꾸었다고 하며 반갑게 도둑을 맞는다.
이래서 그 할머니의 집에서 손자의 월남 소식을 꾸며대며
할머니의 기분을 맞혀주다가 그런 포근한 가정과 정에 끌려
밤이 늦었고 추우니 밤새 월남 얘기나 들려 달라는 할머니의 청을
거절할 수 없어 묵게 되는데
그 용팔이 누이동생 얘기로 번져 이튿날 선까지 보게 될 상황이다.
결국 새벽녘 할머니가 잠들었을 때 집을 빠져 나오는 도둑은
그 후 용팔이에게 편지를 써서 그날의 상황과 할머니의 소망을 전해준다.
작가가 1969년에 발표한 <소식>은 단막이지만,
황량한 삶을 살아온 도둑이 따뜻한 사랑에 의해
인간성을 회복해 간다는 얘기를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작가 박조열
1930년 함남 함주군 하조양면에서 지주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박조열은 고향에서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지주로서의 신분이 발각되어 산간 오지로 좌천되면서 월남을 결심한다. 그는 월남한 이후 육군에서 12년간 군복무를 하였는데, 특히 6개월 간 최 일선에서 소총 병으로 근무할 당시 전쟁의 성격과 참전의 이유조차 알지 못하는 농민출신 소대원들을 지켜보면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으로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1963년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 연구과정에 들어가 처녀작 「관광지대」를 발표하는데, 바로 이 작품 때문에 박조열은 검찰 공안부의 지시로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다. 남북통일정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미군 대표를 냉소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1964년 박조열은 「토끼와 포수」를 통해 본격적으로 극계에 데뷔한다. 민중극장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관객과 비평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동아연극상 대상, 연기상, 희곡상을 석권하지만, 이 또한 공연예술윤리위원회의 압력으로 일부 대사와 극중 장소가 바뀌게 된다. 이후 분단 현실과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하는데,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1966), 「불임증 부부」(1967), 「소식」(1969), 「흰둥이의 방문」(1970)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극작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게 된 박조열은 1974년 문예진흥원의 창작희곡 지원자로 선정되어 문제작 「오장군의 발톱」을 집필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1975년 여름 자유극장에 의해 공연 준비가 한창 진행되던 도중에 공연예술윤리위원회로부터 공연불가 판정을 받는다. 주인공이 소총병이고 반전과 관련된 대목이 삽입되었다는 이유로 공연이 금지된 것이다. 이것은 1988년에 해금되어 미추에 의해 초연된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박조열은 창작 의욕을 잃게 되어 「가면과 진실」(1976)과 「조만식은 살아있는가」(1976)를 발표한 이후 희곡 창작을 중단하게 된다.
박조열은 전쟁으로 인한 가족이산의 경험 때문에 지속적으로 분단문제에 집착했던 극작가이다. 그는 전쟁과 분단현실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세련되고도 신선한 희극적 감각으로 표현함으로써 비극성과 희극성이 결합된 작가 고유의 희곡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그러나 박조열은 반공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검열의 벽에 부딪치면서 자신이 관심을 두던 분단문제를 깊이 있게 발전시키거나 그 폭을 넓혀갈 기회를 잃게 된다. 이 때문에 박조열은 10여 편의 작품만을 남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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