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모의국회 '8.15 50주년기념 반민족행위자 조사 특별청문회' 진행 도중
돌발사태로 인해 행사는 중단되고, 참여 학생들은 재기획을 위한
기초자료 조사분석 및 행사 진행 보완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즉 반민족행위자 조사대상 제1호였던, 조선인 출신 일제 경찰 고등계 형사에 대한
추적 정밀 분석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오히려 더 혼돈과 회의에 빠지게 된다.
'조선 독립단' 행동대원으로서 거사자금 마련을 위해 일제 우편차량을 습격했다 체포된
이른바 애국투사, 그리고 그 애국투사를 고문함으로써 자결케 만든 악질 민족 반역자...
하지만 당시 수사기록과 정황 유추에 몰두하던 학생들은 의외의 가능성에 당황한다.
그리고 비록 대외적으로는 가상의 인물이라고 전제했지만 많은 참고했던 바로 그 모델
당사자가 아직 생존해 있음을 발견하고 집요하게 사실 규명 노력을 하지만 여의치 않다.
그러나 의외의 계기에 학생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역설법에 토대를 둔 작가의 역사해부는 이 <키리에>에선 한층 현실반영적인 성격을 얻는다. 독립운동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던 ‘우편차 습격사건’이 형사 김태덕에 의해 날조된 사건으로 그는 단순 절도범인 한범부를 독립투사로 둔갑시켜 자살케 한다. 그리고 이를 조선 독립단에 의한 테러행위로 발표한다. 그렇다면 김태덕이 이 같은 날조를 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애국자에 대한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우고 반민족 행위자에 대한 증오와 감정을 촉발시키려는 민족정신의 발로로 드러난다. 결국 한범부와 김태덕은 공히 역사의 희생양인 것이다. 한범부가 자결을 택한 것도, 김태덕이 친일분자의 길을 자청해서 택한 것도 일종의 역설적 자기희생의 행위이다. 치욕의 역사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하여 역설로서 성립되는 위대한 위증을 한 것이다. 이 위대한 희생양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 바로 이 작품인 것이다. 요컨대 이현화 작가는 우리의 불행한 역사를 섣불리 단죄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미래를 위한 경종으로서 소중히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키리에'는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뜻을 가진 천주교 미사의 한 부분이다.
일제에 불만을 품고 저항하는 조선인을 일컫는 이른바 불령선인의 색출, 박멸에 모범적으로 앞장서 왔다고 지탄받는 고등계 형사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진정한 애국의 의의를 묻고 나아가 이제는 일제로 인한 상처를 용서하자는 메시지가 숨겨진 제목인 것이다.
작가의 글 - 이현화
50주년이 된단다. 그 "8.15"가...
물론 그날의 의미가 오직 몇 돐이라는 숫자의 모양새에 따라 더 깊어지고 더욱 커지는 건 결코 아니겠지만, 솔직히 반세기라는 시간적 계기성이 새삼 "일제 침탈 시대" 의 자료들을 뒤적이게 했음은 사실이다. 헌데, 어찌 이토록이나 들추기에 민망스럽고 부끄러운 민족 반역자들이 우글우글 용케도 그 동안 숨겨져 지내올 수가 있었을까? 바로 그 분노가 혹시 저 당장 종로 네거리에다 효수를 했었어야 마땅할 반민족 행위자들 속에 혹시나 제발,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다른 차원의 애국자가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소망을 부추겼다. 즉, 그 어려웠던 시절 숨어서 공헌했던 또 다른 형태의 애국자상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단,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철저히 꾸며진 가공의 인물임을 전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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