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프롤로그
무대는 서울 현재다. 배낭여행 중 사귄 일본 여대생 노리꼬를 서울로 초청한 대학생 혁재는 서울 번화가 압구정동의 풍경을 소개하며 즐긴다. 거리에서 일본말 잘하는 젊은이도 많고 일식집, 일본책이 보편화 되있는 데다 젊은이들의 옷차람 등이 너무나 일본과 똑같은데 놀란다. 한편 일본문화원 앞에서 망언 규탄 데모를 하며 일본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시위 군중을 본다. 노리꼬는 이런 이중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더구나 노리꼬는 동양을 서구 문명화 시킨점 만을 강조할 뿐이다. 노리꼬의 의문에 대해 혁재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다. 자신의 역사 인식에 문제가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이 둘은 한일 문제를 공동관심사로 연구할 스터디그룹을 만들기로 한다. 그 첫 과제로 독립기념관을 방문하기로 한다.
2장/ 독립기념관 역사 전시실
이 두 나라의 젊은이들은 밀랍인형으로 만들어진 순국선열들 그리고 구한말 고종황제를 중심으로 나열해있는 중신들의 인형을 본다. 거기에는 충신도 있고 배신, 변절자도 있다. 전시장이 갑자기 정전된다. 젊은이들은 암흑속 밀랍인형들이 웃는 얼굴... 신음소리가 들린다.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리며 인형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상한 조명속에서....
3장/ 이제 그들은 역사속의 어느 날로 들어간다.
과거 역사의 재현. 이 부분은 무대를 삼분화 한다. 좌측(관객쪽에서 봐서)은 개인의 사저, 여기서 민영환, 이준, 그리고 자결하는 선비들, 안중근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지키려 애쓰는 이들의 거룩한 공간이다. 무대 우측은 이등박문, 일본공사 임권조 이완용 등이 음모하는 계략의 공간 그리고 가장 넓은 무대의 중간 부분은 고종이 신하들과 회의하는 홀, 당시 중신들의 부인들이 일본공사의 부인 등과 사교하는 공간(손탁호텔)등으로 사용한다. 이 세 부분이 때로는 동시에 어떤 장면에서는 부분부분 끊임없이 서로 연관이 되면서 당시의 긴박했던 나라 안팍의 정세가 전개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선비들, 그리고 민영환의 자결...일본의 세력과 손잡고 자기일신을 도모하려는 이완용의 술책... 이등과 임공사의 음모 그 사이에서 처신하는데 불편한 신념없는 대신들의 변심.... 손탁호텔을 중심으로 급박한 정세속에서 남편의 출세와 가문의 유지를 위해 사교장에 나서는 중신들 부인들의 행태... 고종이 마지막으로 믿었던 해외밀사 파견, 이준의 자결소식. 너희 나라의 중신들은 자결할 줄 밖에 모르는가? 비웃는 이등박문... 우리가 역사책을 보거나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인 만큼 그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보다 상징과 간결하게 요점만 들어내는 대사, 사건을 즉시 알 수 있는 제스처 등을 사용해서 전체 진행을 바르고 긴박하게 끌고 나가게 된다.
4장/ 하얼삔 역
동양평화의 사절로 큰소리를 치며 중국땅에 발을 들여놓은 이등박문... 화려한 환영행사... 기차의 기적소리.... 그 압권의 무대속에서 홀연히 나타난 사나이 손에 든 권총이 발사된다. 이등박문이 안중근의 총에 맞아 암살된다. 그러나.. 그러나 그 죽은 이등박문이 벌떡 일어난다. "나는 죽지 않는다. 일본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보라 저 태양..." 영상 슬라드가 펼쳐지며 1963년 구보다 망언으로 시작해서 1995년 무라야마 총리의 한일합방 합법화 망언까지 사진과 함께 나타난다.
5장/ 현대
독립기념관의 불이 들어오며 젊은이들이 암흑속에서 보았던 경험을 토로한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안중근 등의 다른 밀랍인형들을 바라본다. 신세대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노리꼬는 일본의 신세대들의 생각, 감각을 말한다. 우리는 전쟁을 모른다. 전쟁을 원하지도 않는다. 과거의 망령들 속에 살고 있는 전쟁 참여세대가 다 죽은 후에 새로운 한일관계가 열리지 않을까? 혁재도 같은 의견이다. 우리도 언제까지나 일본의 사과만을 바랄수만 없다. 전쟁의 직접 피해자인 낡은 기성세대가 다 사라지면 과거는 자연히 청산될 것이다. 역사의 진행은 긍정적이다. 결코 과거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을 수는 없다.
6장/ 에필로그
한일 두 나라의 젊은이들은 함께 손잡고 춤을 춘다. 그러나 그 뒤에서 일본 수상들의 망언이 계속되고 반일 시위대의 함성도 요란하게 전개 되던 중, 과거의 모든 망령들의 혼을 쫓아 버리고, 밀납인형들은 과거로 부터 해방되어 21세기를 향한 굿판이 벌어진다.
작가의 글 - 윤대성
어제와 오늘의 일본은 무엇이 다른가? 태평양전쟁 이전의 일본을 아시아침략으로 끌고간 동력이었던 일본의 軍國主義와 90년대 일본열도에서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민족주의의 깃발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妄言謝過와 辭任이란 70~80년대의 괘변에서 妄言正當化의 강변이란 90년대식으로 바꿔 일본의 지금의 행태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통절한 慘悔를 거치지 않은 일본형 민족주의의 부활이다. 같은 전쟁 당사국인 독일은 민족주의의 죄악으로부터 도덕적으로 해방되기 위해 지난 반세기 동안 국가와 국민전체가 과거를 붙들고 몸부림쳐 왔다. 지금도 그들은 전범을 잡아 재판하고 단죄한다. 그러나 오늘의 일본은 어떤가? 변신하지도 회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때만 되면 자신들의 전쟁, 침략행위를 정당화한다. 일본의 거리에는 "天皇중심 軍총궐기"의 포스터가 곳곳에 나붙고 있다. 이처럼 넘실대는 일본의 시대착오적인 역사인식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우리민족 또한 과거를 분명하게 청산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본에 대한 대응 논리에도 서로 상충되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제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로 향해 갈 때이다, 라는 논리로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덮어두자는 주장과 철저하게 일본과의 청산작업을 계속하자는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 되어 있다. 그 어떤 주장도 그 나름의 타당성과 모순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럼 앞으로 자라나는 새 세대에게 어떤 역사인식을 갖도록 해야 하는가? 이미 과거의 망령들에 발목을 잡히고 있는 기성세대는 어떻게 역사를 극복할 수 있는가? 21세기에 한·일 두나라는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려는게 이 작품의 주제이다.
윤대성 작가
'96 한국 연극배우 협회 공연 제국의 광대들 /작 윤대성. 연출 박원경. 주최 한국연극배우협회로 1996.4.14-4.23. 문예회관 대극장애서 공연됨. 고희를 맞은 강계식 배우가 한규설역으로 출연한 무대이다.
한국의 남자 대학생 혁재와 일본의 여자 대학생 노리코가 독립기념관의 역사전시실에서 을사 5조약을 체결하던 1905년으로부터 안중근의사가 하얼빈에서 이또 히로부미를 저격할 때까지의 과거로 돌아 갔다가 다시 현실로 나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독도 문제 등으로 한일관계가 뒷걸음치고 있는 상황에서 오늘의 젊은이들이 두 나라의 과거사를 어떻게 바라 보고, 또 양국의 미래를 어떻게 펼쳐 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풀어 나간다. 작품은 배낭여행중 만난 한국 남자 대학생 혁재와 일본 여대생노리코를 통해 왜색문화와 반일감정이 공존하는 한국사회의 이중성을 캐들어간다. 전 6장의 옴니버스형식으로 꾸며져 시대착오적인 일본의 현실인식을 지적하고 우리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 확립을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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