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연인 관계였던 ‘메르퉤이유 후작부인’과 ‘발몽자작’은
공동의 적에게 복수한다는 두 사람의 이익이 맞아 떨어져 다시 손잡게 된다.
그들 공동의 적이 ‘쎄실 블랑쥬’와의 결혼을 발표하자 ‘후작부인’은 ‘자작’을 시켜
자신의 조카딸인 ‘쎄실 블랑쥬’의 처녀성을 빼앗을 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천하의 바람둥이이자 냉혹한인 ‘발몽’은 자기 솜씨도 뽐낼 겸
정숙하고 신앙심 깊은 법원장 부인 ‘투루벨’을 유혹하고자 한다.
이로부터 ‘후작부인’의 질투와 ‘발몽’의 대립이 시작되고
두 사람은 비도덕적이고 간교하며 잔인한 게임을 펼치며 겉잡을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사중주>는 프랑스 작가 쇼데를로 드 라클로(Choderlos de Laclos)의 편지소설 《위험한 관계(Les Liaisons dangereuses)》(1782)를 토대로 1981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18세기 프랑스귀족 사교계에서 드러나는 비도덕적이고 불합리한 이성을 철저하게 유혹과 성적 유희로 그린《위험한 관계》를 뮐러는 골격만 남겨 놓는다. <사중주>는 "프랑스 혁명 전의 살롱 / 제3차 세계대전 후의 벙커"를 무대로 두 남녀, 발몽과 메르테유가 성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본래 성 역할과 함께 서로 성을 바꾸어 논쟁을 벌이며 자신들의 대화에 등장하는 다른 두 여성, 투르벨과 세실 역을 맡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중주를 이루어 낸다. 이들의 성 싸움은 시간과 공간을 알려주는 지문이 나타내듯 어느 한 시기와 공간에 국한되지 않는 총체적 역사 상황을 말해준다. 발몽과 메르테유가 벌이는 성 대결은 뮐러가 의도적으로 꾸며놓은 "진지한 놀이"로서 지배욕과 이성의 원칙을 대표하는 남성과 헌신, 겸손, 희생, 그리고 감정의 자연원칙을 대표하는 여성이 서로 대립하는 역사의 모습이다. 이는 뮐러가 항상 역사 속에서 보고 있는 지배와 피지배, 우위와 하위, 그리고 강함과 약함의 끊임없는 대립적 폭력구조다. 하이너 뮐러는 <사중주>를 “테러리즘 문제에 대한 하나의 반응"이라 설명한다. 남성과 여성. 양성 간 대립 구조, 권력욕에서 출발하는 유혹과 성적 지배욕망은 이 작품에서 테러 같은 폭력상황으로 극단화해 있다.
극이 시작되면 늙고 고독한 메르테유가 옛 애인 발동과 가졌던 사랑의 순간들을 얘기한다. 자위하는 격한 감정으로 이어지는 이 환상 속에서 메르테유는 여성으로서 가지고 있는 감성을 그대로 노출한다. 그녀에게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중요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녀는 남성 소유물로서 존재하던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이 독립적인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며 저항의 힘을 나타내기도 한다. 발몽이 등장하자 메르테유는 남성들이 가진 이성을 공격한다. 발몽은 지배의 남성 원칙을 대표하며 성에서도 이성을 내세워 모든 감정을 절제한다. 그러나 발몽의 이성은 여성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지배자로서의 이성일 뿐이다. 말하자면 발동이 가진 남성의 이성은 정치적 권력도구내지 지배도구다. 이는 발몽이 여성적으로는 매력 없는 미덕을 갖춘 대통령 부인 투르벨을 정복하고자 하는 데서 분명히 드러난다. 메르테유는 그러한 발몽의 태도를 비난하며 자연스러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자기 조카딸 세실을 추천한다. 그러나 전혀 성 경험이 없고 신앙이 두터운 처녀 세실은 발상에게 정복하는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여성을 "사냥감”으로 보는 발몽은 여자란 추격하는 즐거움으로 정복하고 지배해야 할 짐승이라고 간주한다.
이렇듯 권력과 지배욕 때문에 정복하기 쉽지 않은 투르벨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 발몽의 사랑 관을 메르테유는 반박한다. 그녀는 정복자로서 남성이 말하는 사랑을 "천한 것들의 영역” 또는 "저급한 충동”으로 간주한다. 그녀는 이성이라는 미명하에 권력욕, 지배욕으로 가득 찬 남성의식에 동물이 가진 순수한 자연의 힘. 자연의 원칙을 대립시킨다. 여기에는 이성의 우월성이 지배도구로서 역사를 억압의 폭력 관계로 이끌지 않았는가라는 의문과 이러한 역사 상황에서는 이에 대응하는 자연의 원칙이 역사 발전에 필요하다는 뮐러의 주장이 담겨 있다. 결국 발몽은 조카딸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메르테유의 제안을 마지못해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서로 성을 바꾸는 놀이에 들어간다. 메르테유는 투르벨에 대한 발몽의 노련한 구애를 정확하게 상상해 낸다. 발몽은 남성의 쾌락의 도구가 되지 않으려 하지만 실제로는 창녀와 다름없는 투르벨 부인 역을 훌륭하게 해낸다. 메르테유는 이 놀이를 통해서 자신이 비난한 남성의 허위적이 성 원칙을 다시 확인하고 발동은 이에 저항하고 자기 존재를 지켜 나가지만 창녀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여성으로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발동은 자신이 행하는 가상현실 속에서 여성의 본모습을 확인한다. 메르테유는 발몽의 거울이 되며 발동은 메르테유의 거울이 된다. 남성 안에 존재하는 여성의 속성, 여성 안에 존재하는 남성의 속성은 이 첫 번째 역할 놀이에서 드러나고 남성과 여성은 가면을 벗은 자신들의 본모습을 서로 보게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은 두 번째 역할놀이로 들어간다. 메르테유는 순결한 조카딸 세실을 연기한다. 여기에서 발동은 능숙한 성적 유혹 뒤에 세실을 죽인다. 여성은 희생자로 존재한다.
메르테유는 이에 대한 복수로 마지막 놀이에서 투르벨의 죽음을 요구한다. 메르테유는 다시 발몽 역을 연기하고 발몽은 투르벨이 된다. 메르테유는 이 놀이에서 유혹자 발몽을 연기하며 실제로 독이 든 포도주를 투르벨 역을 하는 발몽에게 권한다. 결과적으로 메르테유는 가상의 투르벨과 실제 발몽 모두를 죽인다. 가상의 남자가 실제의 남자를 죽이며 실제의 여자가 가상의 여자를 죽인다. 현실에서 승리자는 여성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의 여성에게도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메르테유는 발몽의 죽음을 보면서 말한다.
"어느 창녀의 죽음. 이제 너와 나 둘 뿐이로구나. 나의 애인, 암아."
결국 서로 가면을 쓰고 존재하는 남성과 여성의 성 싸움은 파멸로 끝나고, 이 성대결에서 남는 것은 이성 원칙과 자연원칙의 대립이 극복될 수 없는 것으로서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모습이다. 메르테유는 성 바꾸기 놀이를 이끌면서 서로의 본질을 숨긴 채 가면을 쓰고 대결하는 남성과 여성 의 싸움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 준다. 메르테유의 이 놀이는 "죽음과의 위험한 정사"일 수 있으나 그녀는 죽음을 통해 남성과 여성이 다 같이 극복해야 할 역사의 상황을 알려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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