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수인 '봄날의 재즈딸기'

clint 2024. 10. 8. 05:54

 

 

우리는 왜 딸기를 딸기라고 부를까.

닭을 딸기라고 부르거나 딸기를 닭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 것일까?

<봄날의 재즈딸기>는 이런 언어의 사회성을 뒤집는 실험극이다.

연출자 이수인은 총 8명의 배우를 동원해 “일견 말도 안 되는” 10개의 상황을 이어 붙여

관객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심어주려 한다.

첫 번째 장면에서 전체 출연진은 말없이 관객들을 응시한다.

마치 극중 인물들이 현실세계를 관찰하겠다는 태도다.

다음 장면부터 출연진의 `말'이 이어진다.

이들은 모두 `딸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다음 순간 도착한 `딸기'를 놓고 이들은 논쟁에 빠진다.

관객의 눈에는 닭으로 보이지만, 무대에서는 왜 그것이 딸기인지,

혹은 딸기가 아닌지 열띤 말싸움이 이어진다.

제목의 `재즈'는 이 연극이 일정한 틀보다는 배우들의 감각적 충동에 기초한 즉흥성이

덧붙여진 작품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봄날의 재즈 딸기'는 재즈의 즉흥성을 연극에 끌어들인다.

딸기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해프닝들을 빠른 장면전환 속에 담아내며

'사람들끼리 진정한 소통이란 과연 가능한가' 하는 슬픈 메시지를 담는다.

 

 

 

 

극의 부제는 '즉흥적 환상극'이었다.

'즉흥적 환상극'이라는 의미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통칭 '애들립'이라고 하는 '즉흥적 대사'를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 무엇을 말하려고 '즉흥적 환상곡'이라 하였을까? 

'이건 , 배우들과 연습을 하다가 이런저런 동작 연습하다가 즉흥적 으로 쓴 것이라 한다. 

"어떤 봄날에, 재즈를 들으며 딸기가 먹고 싶다!"라는 것을 말하려는 극이라 한다.

 "때는 바야흐로 모든 것이 소생하는 파릇한 봄날이다. 나는 지금 째즈를 듣고 있다. 

그런데 나는 딸기가 먹고 싶다." 그러한 기조의 느낌이다.

"그러나 그 딸기는 먹을 수 없다." 먹을 수 없는 것이기에 더 간절히 바라는 지도 모른다.

없는 것이기에, 지금 없고 갖고 있지 않은 것이기에 그렇게 갈망하는지 모르겠다.

"선택을 해야만 한다. 둘 중에 하나...."

"그것은, 어른이 될 것인가? 그러려면 어린아이 적 순수를 버려야 한다. 

어린아이의 순수를 지킬 것인가? 그러려면 사회에서 이방인이 되어야 한다.  

왕따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문제이다. 문제이다."

누가 말하고 , 누가 주인공이고 구분도 분별도 필요 없다. 

그것은 그 극중 인물들 모두가 전체적으로 갖는 주된 중심의식이다. 

그는 계속 묻고 있는 것이고 , 그래서 그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누군가에게 듣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아직 어린이인 것이다. 

그는 실상의 사회를 인식하고는 있지만 , 그 와중에서 자신이 갖고 나갈 '동심'과

'사회 속 안주'의 모든 것을 다 갖고 나가려고 하는 욕심쟁이이다. 

그러면서도 갈구하는, 선택을 요구 당하는 현 시점에서, 새롭게 출발하려는

현재의 시점인 '봄날의 시점'에서 , 그는 재즈를 들으며 '딸기'를 먹고 싶다는 것만을

꿈꿀 뿐이다. 꿈을 꾸면 그 꿈을 현실로 내려놓기 위하여 그 무엇인가를 하여야만 한다.

 

 

 

 

봄날, 째즈, 딸기는 하나하나의 단막극으로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다.

과거, 현재 미래로 치환하여 볼 수 있다.

그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제가 현재에서 조우하여 뒤 섞이는 것이다.

꿈을 꾼다. 과거 속 환상이 나오고, 해 왔던 일상의 습관이 나오고,

잃어버리고 살았던 그 무엇이 나온다.

그러나 나는 현재 재즈를 듣고 있는 현실에 몸을 두고 있다.

나는 꿈 꾼다. 딸기라는 내가 욕구하고 갖고 싶은, 되고 싶은 나를 꿈꾸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제가 겹치면서, 오버랩된 시제가 대사로 말하여지는 것이다.

그래서 언뜻 연결이 없고 , 우후죽순, 동문서답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꿈꾸는 그 사람은 그것을 다 알고 있다. 시제를 다 아는 것이다!"

그래서 이수인작 연출의 '봄날의 째즈 딸기'는 우습게도 보편성이 아닌

" 주관적인 , 너무도 주관적인" 그러한 극이 되는 것이다.

 

 

 

작가겸 연출의 글 - 이수인
"매우 주관적이고 즉흥적인 상상에 기초한 작품이기에
관객 여러분 역시 아주 주관적이고 즉흥적으로 받아들이시길..."

작품에 대해 이런 저런 설명을 요구하는 분들이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당혹스럽다. 그냥 보고 느끼시는 게 있다면 그게 다일 거라고, 나는 그냥 그렇게 대답하지만, 돌아서면 약간은 불성실해 보였을 것 같아 찜찜할 때가 많다. 사실 나도 제법 근사한 수사를 동원해서 작품에 대해 모종의 환상을 조성해 드릴 능력이 아 주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러기엔 내가 좀 불필요하게 솔직한 편이다. 사람들은 작곡가나 안무가, 혹은 화가나 조각가에게는 질문을 많이 하지 않는다. 음악이나 무용, 회화나 조각 작품에 대해서는 요모조모 따지고 분석하기 보다는, 나름의 감 각으로 받아들이거나 이해하려 드는 태도를 먼저 취한다. 나는 연극에 대해서도 그래줬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다. 이 공연은 얼핏 난해해 보일지도 모른다. 일관된 주제를 찾고 싶어 하거나, 적극적인 메세지를 발견하고 싶어 하거나, 아무튼 그렇게 지적으로, 해석하려는 분들에게는 아마 그렇게 보일 것이다. 명백히 밝혀드리지만 이 작품에는 그 어떤 명확하고 일관된 주제도 없다. 코드, 혹은 기호도 산만하고 주관적이어서 분석의 틀을 마련하는 것 조차도 짜증스런 시도 가 될 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정신박약이 아닌 바에야 전혀 아무 생각도 기대도 없이 연극을 만들지 않았을 것임도 분명해 보인다. 아, 도대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어쨌든 이 작품에는 요즘의 내가 선명하게, 혹은 모호하지만 뚜렷하게 느끼고 있는 불안과 회한, 좌절과 자기 연민 같은 감정이 줄줄이 깔려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매우 주관적이고 즉흥적인 상상에 기초한 작품이고, 따라서 관객 여러분 역시 아주 주관적이고 즉흥적으로 받아들이시라고 권하고 싶다. 나로서는, 나의 주관적인 상상에 감응해 주시는 분들이 너무 적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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