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윤여경 '돌연변이 고래'

clint 2024. 10. 5. 09:53

 

 

돌연변이 고래사체가 발견됐다는 앵커의 목소리로 극은 시작된다.
그 고래 DNA를 분석한 결과 실종자 DNA와 일치한 것으로 밝혀졌고, 
자살한 사람이 돌연변이 고래가 된다는 유언비어가 인터넷상에 퍼진단다.
한 인간이 조깅을 하다가 버려진 냉장고 안에서 한 여자를 찾아낸다.
그 여자는 꿈 꾸고 있단다. 그리고 인간과 꿈과 현실에 대해 얘기한다.
어려서 부터 아빠의 폭력을 못견뎌 냉장고에 숨었고 그곳이 편안한 곳이
된 여자, 자미. 지금은 유치원 교사, 3년 전 언니가 자살한 후, 
자주 꿈을 꾼다. 인간(이름이 인간이다)은 자미의 말을 다 들어준다. 
아버지의 폭력에 이혼한 엄마, 그리고 언니를 폭행하는 아빠.
갈수록 자신의 현실이 암담해지는 심정을 토로한다.
인간은 자미에게 언니는 지금 고래가 되어 바다를 헤엄치고 있단다.
그리고 자미에게 너도 꿈에서 깰지, 계속 꿈속에 남아있을 지 결정할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그때 자미의 아빠가 등장한다.
인간은 그에게 "20년 전에 바다에 몸을 던졌을 때, 한번만 살려달라
해서 기회를 줬는데... 두번은 없소."
자미는 현실로 가기로 하고, 아빠는 인간과 같이 떠난다.
"오늘아침 A씨가 파도에 휩쓸려 사망한 상태로 주민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A씨는 아동폭행 전과가 있던......" 

앵커의 목소리로 끝난다. 

 



심사평 - 윤미현 정범철
올해 응모작은 총 67편이었다. 대체로 소재는 다양한 편이었으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은 많지 않았다. 흥미 위주의 소재에 갇혀 매력적인 주제로 발전되지 못하는 작품이 다수 눈에 띄었다. 또한 자아성찰, 희망, 꿈, 미래사회 등의 몽환적인 내면으로 파고드는 작품이 많아 현세대의 새로운 경향으로 보이기도 했다. 두 심사위원은 작품의 완성도, 문장력, 참신성을 기준으로 심사한 결과, <돌연변이 고래>는 '고래 전문 장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인간의 캐릭터가 흥미로웠다. 냉장고 안에 웅크려 있던 자미란 인물과 인간이 주고 받는 대사가 자연스러웠으며 사건의 전개와 서술이 지나치지 않고 매끄러웠다. 장면 속에 인물과 의미를 녹여내며 아동 폭력이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를 불편하지 않게 상징적으로 담아낸 점을 높게 평가하였다. 결국 최종 당선작으로  <돌연변이 고래>를 선정하기로 하였다. 두 심사위원은 일치된 마음으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데에 동의하였음 을 특별히 밝힌다. 자신의 시선을 유지하며 극작가로 꾸준히 성장해 나아가길 기대한다.

 


당선소감 - 윤여경
아주 어릴 적, 홀로 어두운 방안 구석에 앉아 현실과 꿈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했었습니다. 제가 느끼고 감당해야 했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도 어두컴컴한 바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줄다리기는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홀연히 사라질 줄만 알았던 이 아이는 여전히 제 안에 웅크려 앉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아이를 기어코 외면하였고 그렇게 몸만 어른이 되어버린 '불안을 품은 아이'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늘 '불안'이라는 감정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회피하기만 했습니다. 눈을 가린 채 이 아이를 잊어보려고 했으나, 그러기에 저는 너무나 나약했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꿈속에 잠식되어 빠져나오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저의 정신과 육체를 아득한 바다로 심연 끝으로 빨려 들어가도록 만들었습니다. 꿈은 저를 구원해주지 않았고 오히려 현실을 텅 빈 모래사장으로 만들어 황망함을 남겼습니다. 저는 현실을 되찾기 위해, 어쩌면 살아보기 위해, 꿈속에서 빛을 향해 헤엄을 쳤습니다. 그 시작이 바로. 글이었습니다. 글을 한 글자씩 적어 내려가며 이 아이를 마주할 수 있는 찬란하면서도 단단한 용기가 생겼습니다. 만약 제가 쓴 글이 누군가의 어둠을 걷히게 할 수 있다면, 저는 그 어둠으로부터 항해를 시작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최고보다는 최선에 대한 믿음으로 제 곁을 묵묵히 지켜주신 아버지, 가는 길마다 희망과 환희의 꽃을 심어주신 어머니, 언제 어디서든 저의 손을 꼭 잡아주며 행복과 슬픔 모두 다독여주었던 언니, 저에게 깊은 가르침을 주신 서울예대 교수님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좋게 봐주시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큰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선생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 자신을 믿고 빛을 담을 수 있는 글을 쓰도록 끝까지 이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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