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게오르그 뷔히너 원작 재구성 김승철 '아름다운 살인자! 보이첵'

clint 2024. 9. 4. 12:24

 

 

"모두가 돈, 돈 때문입니다! 돈 없는 놈은 도덕이고 뭐고 

자식새끼도 그런 식으로 밖에 가질 수가 없는 거죠!"
보이첵은 가난하고 천한 신분의 말단 군인이다. 
그에게는 사랑하지만 결혼식조차 올릴 수 없었던 마리와 
세례를 받지 못해 사생아라 손가락질 받는 자식이 있다. 
그럴수록 보이첵은 가족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돈이라고 믿으며 마리와 아이를 부양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진다. 
그러나 군대 월급을 받고, 중대장의 발마사지를 해주며 일당을 받고, 
의사의 실험도구가 되어 완두콩으로 끼니를 연명하며 돈을 모아도, 
그의 삶은 늘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게다가 이런 상황들은 시간이 갈수록 그의 몸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사랑하던 가족과도 멀어지게 하며 그의 목을 조여 오는데...
그러던 어느 날, 자신에게 단하나 남은 희망, 마리마저 주체할 수 없는 
욕망으로 외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끝내 보이첵은 사랑하는 마리를 죽이고 만다.

 



'아름다운 살인자! 보이첵'은 독일 극작가 게오르그 뷔히너 원작 '보이첵'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가난하고 천한 신분의 말단 군인 보이첵에 대한 얘기다. 장소 배경은 군대 주둔지 주변 마을. 보이첵은 가난해 결혼식조차 올릴 수 없던 아내 마리와 세례를 받지 못해 사생아라는 말까지 들어야 하는 아들 크리스천을 위해 온갖 수모스러운 일을 마다하며 생활비를 벌려고 애쓴다. 중대장의 발마사지를 해주기도 하고, 의사의 실험도구가 되어 완두콩만 먹으면서 대가를 받는다. 그렇게까지 해서 돈을 모아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어느 날 사랑하는 마리가 주체할 수 없는 욕망으로 악대장과 외도했다는 사실을 안 보이첵은 아내를 죽이고 만다.

 

 

 

원작에서의 많은 등장인물들(30명이상임)을 대폭 줄여 6명만 나와도 원작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며 공연시간도 1시간이면 족하다. 그럼에도 원작이 가진 품격을 보여주는데 그 6명이 시종일관 무대에 등장해 있고 조명으로, 대사로 쫓아가기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극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보이첵은 마리를 죽이고 거의 미친 상태가 된다. 그는 무대 중앙에서 악을 쓴다. "내가 살인자야? 뭘 봐! 너희 자신들이나 똑똑히 쳐다 봐!"라고. 절규와 거친 움직임은 보이첵에게서 나오고 자연히 관객의 시선은 그에게로 향한다. 그렇지만 보이첵의 그 모습을 2층 높이의 철구조물이나 단 위에서 조롱하는 듯한 미소와 함께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중대장이나 악대장 또는 의사의 모습이 보이첵의 이미지와 겹쳐지지 않는다면 대단원의 이 비극적 느낌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독일에서 일어났던 실제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원작은 '보이첵'이 사랑하는 여인 '마리'를 죽이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혼돈스럽고 치유불능의 지경에 이른 인간사회의 비극적 현실을 대변하는 중대장, 악대장, 의사, 백치 칼이 등장해 이들에 의해 인간이 지닌 동물적 욕망과 위선적 도덕의식이 한층 까발려진다. ‘보이첵’에 담긴 실존적 문제를 동시대 연극으로 살려낸 이유이기도 하다.



재구성 연출의 글 - 김승철
'보이첵’은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밑바닥 민중의 현실, 소통이 단절된 인간관계의 부조리, 인간이 지닌 동물적 욕망과 도덕적 관습의 갈등, 문명의 진보에 따른 인간 소외현상, 꿈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절망, 더 나아가서는 인간 존재가치에 대한 비판적 담론 등, 인간사회에서 야기되는 다양하고도 근본적인 문제들에 진지한 시선을 던지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이 실존하는 한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늘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문제의식들일 것이다. 어제보다는 내일의 모든 것이 더 빠르고 가볍게 변모해가고, 감각적이고 순간적인 즐거움들이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시간의 가증스런 무게감을 잊게 만드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망각하고 외면한다고 해서 ‘보이첵’에 담긴 실존적 문제들이 해소되거나 치유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앙금처럼 농도 짙게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활화산처럼 폭발해 분노의 용암으로 인간사회를 싹 쓸어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힘들더라도, 귀찮더라도, 지겹더라도, 누군가는 뒤돌아봐야 할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이번 ‘보이첵’ 공연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위에 언급한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사유와 담론의 장이 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