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오청원 '볕 다시 쪼여 보자'

clint 2024. 8. 20. 08:34

 

 

이 작품은 삼성문예상 희곡문학상 수상 작품집에 실린 작품으로 다른 작품은 모두 공연되었지만 이 작품은 공연기록이 없다. 하지만 충청도 특유의 사투리와 일제 때의 여러 일이 얽혀진 좋은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전통과 민속에 대한 작가의 애정

오청원 씨는 그간 적잖은 수의 희곡과 TV 드라마를 써온 작가다. 단지

서울에서 활동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서울에서는 덜 알려진 작가이다.

〈볕 다시 쪼여 보자〉를 읽고 나면 주인공이나 이야기는 잊어먹고

강하게 남는 것은 박수 무당의 매력과 작가의 우리 전통 민속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다.

사할린에 억류됐다가 돌아오는 아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 작품의

인물들은 복잡하다. 일본인의 피와 섞인 가족 구성원,

산주, 부패한 관리, 넋잡이, 대잡이, 일꾼 그리고 박수 등 모두

상식을 벗어난 인물들이다. 어지러운 현실의 상징이다.

일본인들이 한국인의 기를 꺾기 위해 장난쳤다는

쇠말뚝, 부서진 거북 머릿돌도 이 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청원 씨는 극작가이기에 앞서 향토 민속 학자, 그것도 향토의 전통을 사랑하는 골수 민속연구가라는 인상을 준다. 신장공수경을 마친 박수 무당이 부르는 창부타령 가락의 혼놀이 굿창은 우리처럼 도시에서만 살아온 사람에게는 충격을 준다. 그 길고 복잡한 주문이나 노래를 어떻게 수집, 정리했는지 모르겠다. 서구의 뮤지컬보다 더욱 박력이 있을 것 같다.

5장이 시작되자 나타나는 굿상 장면에서는 차례상 위에 올려놓을 음식과 그 배열 순서가 도표로 표시되어 있다. 나는 일찍이 희곡에 이런 도표가 나타나는 것을 본적이 없다. 작가는 그 만큼 이런 일에 환하고 꼼꼼하다. 장례식에 쓰는 만장대의 내용도 그 까다로운 한문으로 표시했다. 이 희곡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문학 위주의 또는 이야기 중심의 작품이 아니라 제사 또는 굿판을 위한 순서 같은 인상을 준다. 이런 종류의 희곡이 오늘날 나약하고 합리적이기만 한 우리 연극계에도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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