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작가 미상 '꼬메디아'

clint 2015. 11. 9. 18:10

 

 

 

 

 

에피소드 1. 피크닉 바구니
등장인물 : 아를레끼노, 옥타비오
주인 옥타비오가 맡긴 피크닉용 음식과 술을 모두 먹어버린 아를레끼노. 하지만 아를레끼노가 반성보다는 뻔뻔스럽게 대꾸하기 시작하며 벌어지는 둘의 에피소드.
에피소드 2. 콜롬비나
등장인물 : 콜롬비나, 카피타노, 아를레끼노
하녀 콜롬비나와 허풍쟁이 군인 카피타노의 설전 가운데 아를레끼노가 끼어든다. 허풍쟁이 군인을 골탕먹이는 콜롬비나와 아를레끼노의 재치만점 에피소드.
에피소드 3. 도토레
1. 등장인물 : 판탈로네, 도토레
2. 우스꽝스러운 수다쟁이 박사들과 판탈로네가 펼치는 동문서답 대화 에피소드
에피소드 4. 사랑의 편지
등장인물 : 판탈로네, 아를레끼노
이웃집 어린 처녀에게 반한 늙은이 판탈로네. 하인 아를레끼노를 통해 편지를 전하려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해학과 풍자의 에피소드.
에피소드 5. 신병모집
등장인물 : 브리겔라, 아를레끼노
드라군스의 하사관이 된 브리겔라가 신병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아를레끼노와 맞닥뜨리게 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
에피소드 6. 안톤 체홉의<곰>패러디
등장인물 : 이사벨라, 브리겔라, 아를레끼노
미모의 미망인과 죽은 남편의 빚을 받으러 온 장교출신의 지주간에 벌어지는 설전과 마침내 사랑에 빠져버리는 이야기를 꼬메디아만의 색깔로 패러디한 에피소드.

 

 

 

최초의 직업연극의 형태를 띈 연극양식이자 르네상스의 산물인 꼬메디아 델 아르떼. 수세기를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한 이 양식은 현대연극에서도 그 내음을 느낄 수 있다. 15세기 이탈리아, 사회를 구성하는 각 부류의 대표 캐릭터를 통해 세상의 모순과 비리를 풍자와 해학으로 꼬집어내는 서민들의 웃음마당이 꼬메디아의 시작이다. 서민의 입장에서 권력층과 어설픈 인텔리의 삐딱한 모습을 꼬집는 것은 우리네 마당극과 닮았다. 또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이자 위트와 유머스런 몸짓으로 해학과 풍자를 자아내는 아를레끼노는 마당극의 말뚝이만큼이나 친근한 캐릭터라 하겠다. 꼬메디아는 에피소드 별로 구성된 연극이다. 따라서 에피소드 간의 인과성이나 연관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연극일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나는 우리의 봉산탈춤을 떠올렸다. 아까 위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에피소드 간 인과성 연관성이 턱 없이 부족하고 등장인물들의 자연스러운 재등장, 결국 하나의 시대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다. 나는 꼬메디아에서 희망도 보았다. 그 희망은 우리 한국 마당극이 일본의 전통 연극들처럼 나아갈 수 있는 작은 구멍이었다. 일제 시대 일본이 억압했던 우리의 문화 활동, 그 중에서도 전통 마당극은 이미 중간 고리가 잘려 난지 오래였다. 그리고 언제나 탁상공론으로 우리의 전통 마당극을 살려야한다는 말뿐이었다. 그러나 꼬메디아는 보여주었다. 말하지 않고서도 가만히 보여주었다.

 

 

 

무대에 등장하는 아를르깽을 말뚝이로, 판탈로네를 맹진사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연출가 김태용 님의 짤막한 문장이 나의 가슴 속에 와 닿았다. 내가 만약 연출가라면? 나는 아를르깽을 방자로, 옥타비오를 이도령으로, 콜롬비나를 향단이로, 이사벨라를 춘향이로, 판탈로네를 봉산탈춤의 바보 삼형제 중 하나로, 카피타노를 못 되고 어리석은 이방으로, 브리겔라를 신흥 지주였다가 몰락하는 역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된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만약 이 연극이 만들어진다면 나는 제목을 이렇게 붙이고 싶다. 꼬메디전. 붙이고 보니 꽤 이상한 합성어다. 그리고 나는 야외에서 이 공연을 상연하고 싶다. 사람들이 길가다가 매료될 수 있게 하는 그런 공연으로 이것을 만들어보고 싶다. 공연 중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웃다가 보니 김태용 연출가 선생님께서 무대에 올라와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이렇게 관객 반응이 좋았던 적이 없었단다. 결국 즉흥 Q&A가 기획되었고 우리는 꼬메디아가 막이 내린다는 표시도 없이 끝난 후에도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잠시 후 분장을 지우고 배우들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연출가 선생님과 함께 나타났다. 관객들은 질문하라는 연출가 선생님의 말에 잠시 긴장했다. 나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나는 몹시 궁금한 것이 있어서 손을 들고 가장 먼저 질문을 했다. “가면을 쓴 역이 있고 벗고 있는 역이 있는데, 이들의 차이에 대해서 알려주세요.”라고 정중하게 여쭈어보았다.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가면을 벗은 사람은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를르깽 역시 가면을 썼지만 콜롬비나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또 이런 견해도 있습니다. 지배층들은 가면을 써야만 한다. 또 하인들도 종류에 따라 쓰는 역이 있고, 아닌 역이 있다. 하지만 이 견해 역시 일부 학자들의 견해일 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가면의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꼬메디아 델 아르떼가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 공연이 된다면 우리는 이 의미에 대해서 답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배우도 그 목표를 향해 지금 나아가는 도중입니다. 이것으로 답변이 되겠습니까?”
나는 이 자세한 답변에 감사의 뜻으로 약간 건방지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후에 나는 가면의 의미를 나름대로 곱씹어 보았다. 나는 대답을 듣기 전에 가면을 봉산탈춤과 같은 의미의 가면이 아닌가 생각했다. 풍자와 해학과 조롱이 넘치는 가면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가면은 얼굴의 반만을 가리는 가면이다. 봉산탈춤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러면 가면의 의미는 조금이라도 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지금은 가면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중에 10년이고 20년이고 꼬메디아를 본다면 거기에 대해서 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꼬메디아를 보고서 Q&A를 마치고 나가는 길이 나에게는 아쉬움이었다. 앞으로 꼬메디아를 그리워하면서 살아갈 내 앞길을 보니, 참으로 슬펐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서 밀려오는 그 그리움과 아쉬움과 비장함이 내 감정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아, 슬프다! 슬퍼! 앞으로 꼬메디아가 또 공연된다면 가고 싶다. 장소도 시간도 돈도 관계없다. 다시 한 번 꼬메디아를 만나고 싶었다. 꼬메디아는 우리나라 마당극과 아주 유사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마당극은 대사보다는 춤이나 배우의 몸동작에 치중하는 반면 꼬메디아는 배우들의 연기에 더 많은 비중을 둔거 같다. 반가면은 대사를 쉽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효과적인 거 같다. 아예 가면을 쓰지 않았다면 그 캐릭터의 특성을 완전히 드러낼 수 없고 그렇다고 완가면을 썼다면 반으로 보이는 배우들의 리얼한 표정연기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여섯 개의 에피소드의 내용은 간단하고 단순하여 짤막한 단막극을 보는 것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스토리가 정리가 되기도 전에 다른 내용으로 넘어가는 것이 어떻게 보면 약간은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나중에 마지막 에피소드는 아를르깽이 나이가 든 것을 표현한점으로 보면 약간의 시간의 흐름이나 연결성을 고려한 듯싶다. 이 연극은 하녀 콜롬비나의 등장으로 오프닝을 연다. 관객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불평하면서 관객들의 박수 또는 야유 등을 유도한다. 그러면서 관객은 배우와 어울려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연극과 달리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콜롬비나는 등장인물들을 흉내 냄을 통해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어떤 등장인물들이 나오는가, 그리고 그 등장인물들의 특색이 어떠한가를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알 수 있게끔 해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콜롬비나는 가면을 쓰지 않았는데 이것은 가면으로 가려져 약간의 거리감을 느낄 수 있었던 다른 배우들과는 달리 친근감 있고 편한 상태에서 배우와 어울려서 공연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프닝배우로 적절했던 것 같다. 콜롬비나는 관객들의 호응으로 에피소드를 시작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두 번째 에피소드는 하녀 콜롬비나와 허풍쟁이 군인 카피타노간의 설전을 벌이는 내용인데 큰 덩치와 높은 신분과는 대조적으로 연약하고 신분이 낮은, 여자이면서 하녀인 콜롬비나가 카피타노를 골려주는 점에서 관객은 통쾌하고 더 희열감을 느끼는 것 같은데 이는 대중들의 관점에 초점을 맞춘 듯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에피소드인 신병모집은 코메디란 장르에서 다루기에 조금 어려울지 모르는 어두운 전쟁에 관한 내용이지만 전쟁의 참혹성을 과장된 몸동작으로 해학적으로 표현해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는 꼬메디아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인 만큼 대단했다. 처음 등장해서 관객을 사로잡는 하녀 콜롬비나의 표정과 등장인물들을 흉내 낼 때의 연기. 그리고 카피타노를 골려줄때의 당당하고 기센 분위기와 달리 아를르깽이 나타나자 연약한 듯 쓰러지는 대조적인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연기, 그리고 능청스럽고 익살스러운 표정연기의 아를르깽도 훌륭했다. 배우들은 가면을 쓴 상태라 표정전달이 쉽지 않았을 텐데 반가면을 통해서 그렇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아무런 음향효과 없이 물 마시는 소리와 우는 소리를 약간은 과장되게 표현하여 사실 적이게 표현하지 않는 꼬메디아의 특성을 잘 보여준 듯싶다. 연기뿐 만아니라 의상과 가면도 아주 맘에 들었다. 의상 준비가 정말 쉽지 않고 남아있는 기록도 몇 안 돼서 똑같이 재연해 낸다는 게 힘들었을 거라고 본다. 그런데도 이렇게 훌륭한 의상과 가면을 준비한걸 보면 정말 얼마만큼의 노력이 들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 아쉬웠던 점은 민중즉흥극이니만큼 관객과의 어우러짐이 조금 있어야했을 듯싶다. 너무 준비된 대사와 연기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르가 코메디인 만큼 즉흥적이고 에드립적인 재치 있는 대사를 통해 더 흥미와 재미를 주었으면 했던 것이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봐오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었고, 많이 준비한 흔적이 보이는 후회 없는 연극이었던 것 같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한 우리 마당극을 닮은 우리정서에 맞는, 그렇지만 너무 한국적이지만도 않은 독특하고 색다른 연극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