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여성 조시는 자신의 영아를 살해했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갇혀있다. 그녀 친구인 릴리는 아이를 임신한 10대 미혼모로 조시를 방문한다. 약하고 두려운 두 소녀 앞에 소원을 들어준다며 복수심에 찬 고대의 요정 스크라이커가 나타난다. 스크라이커는 조시와 릴리의 사이를 오가며 사물이나 다양한 나이, 성별의 사람으로 변하여 이둘을 쫒고, 유혹하고, 함정에 빠뜨린다. 죽은 아이를 살려줄 수도 있고, 병원을 나와 릴리와 함께 살게 해주겠다고 한다. 조시는 스크라이커를 경계하지만 착한 릴리는 친절을 베풀어 스크라이커를 불러들인다. 스크라이커는 끊임없이 릴리의 아이를 탐내고 조시와 릴리 사이를 갈라놓지만, 조시는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스크라이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조시와 스크라이커는 지하세계에 떨어지고 다양한 요정과 괴물들이 만찬을 즐기는 것을 보게 된다. 조시도 그들의 음식을 먹고 취하지만, 샘에 다가가지 말라는 스크라이커의 금기를 어기고 손을 담근 후에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현실세계의 시간은 5분도 지나지 않았다. 릴리도 조시처럼 금방 돌아올 수 있을 줄 알고 스크라이커를 따라 지하세계에 다녀오지만, 그녀가 돌아오자 그녀의 증손녀가 손상된 채로 그녀에게 화를 낼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스크라이커'는 카릴 처칠의 작품 중에서도 기존의 작품과는 크게 다르다고 여겨지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번역되거나 공연된 적 없는 미지의 작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하세계의 요정 스크라이커는 50대 노숙자에서 꼬마아이로, 소파에서 중년 남성으로 끊임없이 변화며, 현실세계와 환상세계가 뒤섞여 있고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선형적 시간조차 왜곡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스크라이커의 언어는 해체되어있고 등장인물의 대사는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수많은 사이들의 행간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숨어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이 작품이 기존의 서구 철학의 전통 안에서 이해되기보다 통합된 주체를 부정하고 의미를 지연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과 만나게 한다. 특히 '변화하는 몸'인 스크라이커는 그 어느 것도 스크라이커가 아닌 적이 없으면서 또 그 어느 것도 통합성을 지닌 총체적 자아는 유랑하는 주체와 맞닿아 있다. 10대 미혼모인 조시와 릴리, 그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는 유순한 몸과 감금 되어야 할 몸이라는 여성의 몸에 가해진 이데올로기를 드러내 보여준다. 이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과 두려움, 절박함, 그리고 수많은 유혹들은 물질사회에서 여성의 욕망과 좌절을, 그리고 '죽은 아이'와 '해그' 등의 지하세계 인물들은 그 속에서 파편화된 몸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스크라이커>는 너무나 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은 듯하다. 그것은 마치 빈 도화지 같다. 많은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대화 사이에서 작가는 어떠한 중재자 역할도 하지 않는다. 작품은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관객의 의식과 맞닿을 때에만 의미는 생겨날 것이다. 10대 미혼모인 조시와 릴리, 그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는 유순한 몸과 감금되어야 할 몸이라는 여성의 몸에 가해진 이데올로기를 드러내 보여준다. 이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과 두려움, 절박함, 그리고 수많은 유혹들은 물질사회에서 여성의 욕망과 좌절을, 그리고 ‘죽은 아이’와 ‘해그’ 등의 지하세계 인물들은 그 속에서 파편화된 몸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네 페이지 반에 걸쳐 해체된 언어로 ‘지껄이는’ 스크라이커의 독백을 어떻게 무대화할 것인지, 동화와 설화에 바탕을 둔 수많은 요정들의 등장과 존재이유를 이야기의 흐름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 또한 매우 느슨하게 연결된 각 장면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엮어놓을 것인지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너무나 많았다. 연출은 연습 초기 단계부터 음악과 춤 연습을 도입하여 자유연상에 의한 비논리적 언어를 다양한 극적 요소와 ‘말 주고받기’로 형상화했다. 조시와 릴리에게 가해진 유순한/불순한 몸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아기를 탐내는, 혹은 그림자처럼 그들을 따라다니는 요정(및 인간)들의 존재를 통해 강화했으며, 요정들 사이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서사를 부여하여 릴리-조시-스크라이커의 메인 스토리와 병치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스크라이커>는 그 자체로 여전히 미지수이다. 실체를 잡으려고 할 때마다 그것은 한 걸음씩 물러난다. 인간과 자연, 자본과 문명, 욕망과 파괴 등<스크라이커>를 관통하는 키워드들은 어쩌면 관객과 만나기를 고대하며 극장을 유유히 떠다니고 있을지 모른다. “이게 나야. 많은 것 중의 하나, 중요한 정령은 아니지만 정령이긴 한.” 이라고 고백하는 스크라이커의 대사처럼 ‘많은 것 중에 하나, 중요한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이긴 한’ 우리 자신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카릴처칠 (Caryl Churchill, 1938- )
현대 영미권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극작가로 손꼽히는 카릴 처칠은 1938년 런던에서 중산층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후 1960년대에 라디오극으로 데뷔하였고 1972년<소유자(Owners)>로 로얄 코트 극장에 등장하면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계급과 권력, 젠더와 섹슈얼리티, 소유와 욕망의 관계를 끈질기게 재창조하는 작품활동을 통해 처칠은 오늘날 연극과 사회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작가로 평가 받는다.
카릴 처칠은 비교적 부르주아적인 성장환경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사회주의 극작가들과 함께 사회의 모순을 폭로하고 혁명을 이루려는 시대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은 개인의 욕망, 특히 사회적, 정치적인 구조 속에서 억압받는 여성의 욕망이다.<버킹엄셔에 비치는 빛>(1976)과<비니거 탐>(1976)에서 그녀는 혁명적이고 자유로운 시기로 묘사되는 영국의 17세기, 여성의 성적, 정치적 억압에 주의를 돌린다. 이후에 처칠은 성과 계급의 범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으로 나아간다. 그녀의 작품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적이었으며 가장 도전적인 작업이기도 했던<클라우드 나인>(1978)은 극단 ‘조인트스톡’과의 집단 대본작업을 통해 탄생했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게이, 레즈비언, 이성애자, 기혼자, 미혼자 등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배우들을 선정했고, 그들과 함께 성적 가능성의 다양성에 대해 토론하고 ‘권력’을 주제로 한 게임들을 수행했다. 이를 통해 처칠은 계급과 성적 억압간의 불가분의 관계를 역설하며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보는 우리 인식의 경직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대본을 창조했다. 1982년 로얄 코트에서 공연된<탑 걸즈>는 여성들의 삶이 가진 특수한 복잡성을 전보다 더 두드러지게 다루면서 시간과 역사에 대한 관객의 기대를 계속해서 무너뜨린다.
당대의 신진작가들은 대개 계급과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도모했는데, 카릴 처칠은 이런 사회주의계열 작가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기존의 남성 작가들에 의해 구축되어온 전통 속에서 극작을 하고 있다는 인식에 도달하면서 그와 다른 양식을 취한다. 그녀의 작품이 직선적인 논리구조를 해체하고 ‘비선형적이고 비논리적이며 파편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처칠의 작품들은 기존의 인과적 내러티브가 아닌 에피소드 식 장면구성, 즉 각 장면을 ‘느슨하게’ 연결하여 관객과 극중 인물 사이에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도록 했으며, 병치구조와 ‘대위법’ 구조를 통해 특정 상황의 권력관계 및 계층 간의 충돌양상을 폭로하고 비판한다. 또한 배우의 현실적 조건과 반대되는 캐스팅과 ‘역할교환’ 기법을 자주 사용하는데, 예를 들어<클라우드 나인>에서 여자 배우는 남성의 역할을, 백인 배우가 흑인 하인의 역할을 하도록 하며, 같은 배우가 1막과 2막에서 다른 역할을 맡게 된다. 이러한 기법들은 계급과 성, 사회에 대한 처칠의 비판적 시각에서 비롯한 것으로 우리가 사회적으로 부과하는 ‘범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효과를 낸다.
최근까지 많은 음악가와 안무가, 극단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해오고 있는 카릴 처칠. 그녀가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동력은 냉철하고 비판적인 현실인식과 역사의식, 그리고 삶에 대한 끈질긴 탐구일 것이다. 심오하고도 진실한 처칠의 작품세계는 독자/관객을 역사에 대한 새로운 눈으로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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