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문학에서 좋은 희극이 드물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흔히 재미있는 코미디는 문학성이 저열한 것으로 여긴다. 독일에서는 문학적 연극과 재미있는 민중극이 내용적으로나 제도적으로 확연히 구분되어 있는 것도 좋은 희극이 나오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폰 마이엔부르크는<못생긴 남자>를 통해서 독일 문학에서도 좋은 희극이 가능함을 입증하였다. 영국을 비롯한 영어권에서 이 극작품이 신속하게 수용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이 세계적으로 공감을 받는 것은 주제의 일반성 때문이기도 하다. 성형수술을 통한 획일화된 아름다움의 창출이라는 사회적 강박관념은 이제 독일만의 현상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 코미디가 이런 문제성을 지적하는 심오한 철학적 극작품은 아니다. 이 극작품은 우선을 재미있는 코미디로 공연되어야 한다. 철학적 성찰은 재미있는 코미디의 부수적인 결과일 수 있을 뿐이다.
<못생긴 남자>는 2007년 1월 5일 베를린의 샤우뭐네 극장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연출가인 베네텍트 엔드루즈 연출로 초연된 이후 독일 및 독일어권의 주요 극장에서 공연되어 극찬을 받았다. 최초의 영어번역 공연은 런던의 오열코드 극장에서 2007년 9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있었는데 전석 매진되면서 다음 시즌에 재공연 되기도 했다. 2010년 9월에는 멜버른 시어터 컴퍼니에서 공연되어 호평을 받았다.<못생긴 남자>는 23개 국어로 번역 공연되고 있으며, 마이엔부르크를 세계적인 작가의 대열에 올려놓았다.
모든 시각적 요소는 극단적으로 최소한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무대에는 오직 폭이 좁고 길이가 긴 철제 테이블만 놓여있다. 이 철제 테이블은 극의 진행에 따라 성형수술의 수술대가 되고, 욕망을 풀어내는 침대가 되고 마지막 순간에는 레테가 몸을 던지려고 올라간 고층빌딩의 옥상이 된다. 연출은 단순한 무대장치, 아니 이 연극의 유일한 무대장치를 사용하여 작품의 모두를 말하는 수완을 보여주었다.
<못생긴 남자>의 주인공 레테는 회사원으로서 그의 못생긴 외모 때문에 자신의 개발품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없게 된다. 그가 형편없는 추남이라는 사장의 의견에 심지어는 자신의 아내까지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는 결국 성형수술을 받는데, 성형외과 의사는 성공한 그의 얼굴모형을 다른 사람에게도 시술하여서 레테는 결국 정체성의 위기에 빠진다. 현대 사회의 외모 중심적인 사고와 몰개성적인 시대풍조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담긴 코미디이다.
못생긴 남자는 부조리극이다. 부조리극은 실존주의와 초현실주의 사상을 배경으로 카프카 등의 영향을 받아 195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전위극이다. 현대 문명 속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존재와 삶의 문제들이 무질서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소재로 삼는다. 부조리극은 사실주의적인 전통 기법 대신 소위 ‘反 연극(앙티테아트르)’의 기법을 통하여 부조리한 상황을 제시한다. ‘반연극기법’이란 극중에서 등장인물이 자기동일성을 잃고, 시간-공간이 현실성을 잃고, 언어가 그 전달능력을 상실하는 등 연극 그 자체가 행위의 의미를 해체당하는 부조리를 만들어 부조리 성을 강조하는 기법이다. 이 기법을 통해 부조리극은 관객에게 “인간은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목적 없이 세계를 표류하는 존재”라는 사상을 전파한다. 보통 기존의 연극들은 인물 극이 대부분이다. 인물 극은 인물의 캐릭터나 감정이 문제 상황을 심화시키고 사건을 발생시키며 극을 이끌어간다. 기승전결의 구조로 주동인물과 반동인물의 팽팽한 대립 혹은 긴장에 의해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햄릿>작품을 생각해보자. 햄릿의 아버지인 선왕은 숙부에게 독살 당한다. 선왕이 햄릿의 꿈에 나타나 그 사실을 말하고, 햄릿은 복수심에 불타오른다. 숙부인 현왕을 죽이려다가 실수로 예비 장인을 살해하고 이에 약혼녀 오필리아는 실성한다. 점점 극에 달하는 상황을 보고 관객은 햄릿의 문제와 정서에 동화되어간다. 따라서 인물 극은 ‘몰입 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못생긴 남자>는 반 인물 극이다. 반 인물 극은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지 않고 인물의 캐릭터 또한 일관되지 않는다. 장면마다 갈등의 심화나 정서를 고조시키는 ‘점층적 극 구조’가 아닌 각각 다른 상황과 분위기를 보여주는 ‘정류장식 구조’를 가진다. 문제투성이 상황, 몰가치 상황이 만화 컨셉과 만나면서 조롱 쾌감 유발이라는 재미를 자아내고 동시에 저럴 수가 있을까, 저건 아닌데, 라는 비판적 관극 태도를 유발시킨다. 그리고 궁극에 가선 정체성을 잃어버린, 자아를 상실한 성형 복제 세태를 패러디하여 우리네 작금의 문제 세태를 일깨워주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이런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사유를 유도하게 된다. 각기 다른 부조리하고 실수투성이인 상황이 반복, 변조되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은 몰입보다는 거리를 두고 극을 보게 된다. 그렇게 관객은 비판적 시각을 가지게 되며 몰입극, 리얼리티 극, 인물 극 등의 기존의 연극들과는 다른 극의 특성을 가진다. 이 부조리극이 폭발적 관심과 반응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은 외모지상주의라는 지금 바로 이곳의 세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성형수술의 왕국이다. 성형을 하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비정상으로 취급받는 사회다. 그런 요지경의 시대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 극을 통해 스스로에게 ‘나는 진정 나 자신을 알고 있는가’ 라는 의문을 던지게 된다. 부조리 컨셉은 도발적 연극 전략의 하나로써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통용되고 있는 현실을 극으로 가져와 관객에게 비판의 정서와 어이없음, 황당 성을 느끼게 한다. 동의할 수 없는 만화적 컨셉으로 흥미를 고조 시키는 극작법이다. 이러한 설정 속에서 외모지상주의라는 문제를 철학적으로 사유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예를 들어, 성형수술 후 수많은 여자가 레테를 기다리고 있다거나, 동성애자 칼만이 사랑을 얻기 위해 성형수술을 했으나 결국 레테와 같은 얼굴이 되는 장면 등에서 관객은 어이없음을 느끼고, 거기서 조롱과 비판의 정서가 동시에 유발된다. 관객에게 지적 사유만을 강요하지 않고 조롱 컨셉과 황당 컨셉으로 놀이 성을 유도하여 호기심, 극적 추리, 기대감을 이끌어낸다. 그 조롱은 열등의식에 빠져있는 현대인에게 우월적 해방 쾌감을 느끼게 하는 해방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Marius von Mayenburg
독일 현대 극작가
1972년 뮌헨 출생
1992년 베를린예술대학에서 희곡창작전공
1999년 베를린 샤우비네 전속작가로 활동
1988년 프랑크푸르트 작가 재단 상 수상
1997년 클라이스트장려상
<불의 얼굴>(1998)<기식자>(2000)<하르만>(2001)<차가운 아이>(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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