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간 사라졌던 어머니가 돌아왔다. 17살의 재원은 우울증에 학교도 못 나가고 있다. 그런 재원을 한심하게 여기는 아버지. 밤에는 환상이 보이기도 했다. 재원에게 어딘가로 가자 제안하는 어머니. 재원을 살려주겠다고 말하지만, 그곳은 어디며 구원받을 수 있을까?
관념적이지만, 상징적인 작품이었다. 볼 때의 당시에는 살짝 어렵다고 느껴졌다. 문학적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아들, 종교적 유토피아를 그리는 엄마의 대비, 그 안의 유일한 현실주의자인 아버지의 구도가 재미있다. 작가는 사람들이 종교적 믿음과 관계없이 삶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 구원을 외치고자 하는 모습에 집중했다. 사람들이 꿈꾸는 구원의 다양한 형태를 통해서 우리 삶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자 했던 것 같다.
줄거리 : 재원은 신을 믿지 않지만, 문학을 믿는다. 재원은 다자이 오사무와 자기 파괴적인 문학을 좋아한다. 재원은 1년 전 갑자기 집을 나간 엄마의 부재로 상처를 받았다. 우울증이 있어 정신과에서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 어느 날 엄마가 돌아온다. 재원은 부모의 이혼 사실을 알게 된다. 구원을 바라는 소년과 구원을 받았다는 엄마. 엄마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자신을 따라가야 한다고 재원에게 강요한다. 엄마가 말하는 낙원은 어떤 모습인가? 재원의 아빠는 유토피아를 말하는 엄마의 말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한편, 재원에게는 밤마다 나타나 말을 거는 소녀가 있다. 소녀의 이름은 ‘앨리스’. 재원은 자신은 ‘존’이 되어 그녀와 새로운 세계를 상상한다. 나는 주인공 재원보다 엄마라는 인물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결혼 후 육아 스트레스와 경력단절로 자신의 삶을 잃어버려 우울증에 걸린 엄마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다. 사이비의 나쁨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사람이 그렇게 됐을까? 를 얘기하고, 아들과의 관계에서 그들 집단이 주입하는 구원에 세뇌된 엄마의 모습이 섬뜩했다. 실제 공연으로 올라갔을 때 조명이나 음향을 통해 엄마라는 인물의 변화과정을 추가하거나, 자신의 낙원으로 가자고 아들에게 강요하는 장면을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하면 좋을 것 같다.누구에게나 ‘죽음충동’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에 대처하는 자세이다. 각자마다 정도가 달라 참을 수 있는지, 없는지도 다르다. 소년은 영 도움이 안 되는 상담을 받고 있다. 그래서 문학 읽기, 글쓰기를 통해 참아보고자 한다. 상상으로 소녀를 불러내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처절한 몸짓 같기도 해서 안쓰럽기도 했다. 무작정 참으라고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문제를 다루고 있어 관념적이라고 느껴지긴 했지만.. 그들이 왜 이렇게 됐는가가 제일 궁금하다. “눈이 오네” 하고 극이 마무리되는데, 뭔가 이대로 겨울에 무대 공간에 오르면 공연 보고 극장 밖에서 차가운 겨울 공기를 맞을 때 되게 씁쓸하고 괜히 더 우울해질 것 같은 작품이었다.
작가의 글 - 김미령
한때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에 대한 회의로 물든 날을 보냈습니다. 그 시기에 작성한 작품 <에덴>입니다. 에덴은 성경에 나오는 낙원의 공간입니다. 구원의 공간.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고 싶어 하는 곳이겠죠. 종교가 있는 사람들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삶을 감당할 수 없을 때 구원을 외치려고 합니다. 모두 지금보다 나은 삶을 원하겠죠. 그러나 천국이라 생각했던 곳이 지옥이면 어떨까요? 주인공은 문학을 믿고 있고 우울증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를 더해 세 명의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주인공의 엄마는 일 년간 집을 나갔다가 돌아왔습니다. 밤에는 환상이 보이기도 합니다. 엄마는 따스한 공간으로 가자고 재촉합니다. 그곳은 어디일까요. 정말로 구원 받을 수 있을까요. <에덴>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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