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장수 우투리’는 한반도 전역에 내려오는 구전 설화다. 폭정이 심하던 시대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우투리는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영웅이지만 결국 뜻을 펴지 못하고 죽는다. ‘우투리: 가공할 만한’도 이 설화에서 출발한다.
혹한의 시대, 비극적 영웅이란 소재를 제외한 모든 것이 새롭다. 여성이 스스로의 결단으로 영웅이 돼 사회구조적 착취에 맞선다. 극 중 우투리를 암시하는 주인공 ‘3’은 3등 시민이 모여 사는 도시의 세탁소집 딸로 태어난다.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 내일이 궁금한 삶을 살기 위해 떠난 곳에서 새 희망을 발견하지만, 이내 모순을 발견하고 고뇌에 빠진다.
100분간 진행되는 공연에는 배우 5명이 등장한다. ‘3’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은 여러 배역과 내레이션을 함께 맡는다. 배우이자 극 중 캐릭터, 두 역할이 무대 안팎에서 혼재돼 등장하는 모습은 홍단비 작가의 의도를 반영했다.
홍 작가는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인물이 관찰자가 되는데 ‘애정과 진심이 담긴 관찰’은 진실하고 소중한 것을 물위로 끌어올린다”고 말했다.
회색 시멘트 집, 고철 공장, 무기 제작소 등 차갑고 날카로운 장면의 배경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무대 디자인과 조명도 인상적이다. 극의 처음과 끝에 앙상블로 흐르는 노랫말은 가사와 음정 모두 동요처럼 귀에 익다.
"어디 있니, 어디에 있니. 등허리에 구름 같은 날개 달린 아이야.
우투리, 우투리, 너는 언제 올 거니."
재해석한 우투리는 색이 확실하다. 고전 설화를 시민들을 압박하는 정부에 대항하는 저항군의 이야기로 탈바꿈했다. 마치 레지스탕스 같은 세계관으로 색다르게 다가와 흥미진진했다. SF 같은 디스토피아적 배경을 살렸다. 하지만 아쉬운 점으로 나는 사이버 펑크 같은 장르는 이미 온갖 미국 드라마로 웬만한 배경에는 감탄도 하지 않을 만큼 기대감이 높아져 있다. 그만큼까지 연극으로 구현을 할 수 없으니 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배우들이 관객과 소통하는 해설자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기름과 물처럼 분리될 법한 구성을 연출로 잘 버무렸다. 색과 이야기를 더 매력 있게 살린 춤을 이용한 5명의 배우의 연기는 독특했다.
또 감정에 따라 바뀌는 조명(찾아보니 'LED 미디어아트'라 부른다)을 이용한 무대미술은 세계관과 조화롭게 어울렸고 분위기를 더 살릴 수 있었다. 단순히 색채만 바뀌는 게 아니라 패턴도 사용했고, 같이 깔리는 사운드가 굉장히 웅장했는데, 알고 보니 음악 그룹인 While asleep과 협업을 했다고 한다. 아마 첫 시작부터 부르는 주제곡이 제일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덕분에 어땠냐고 물어보면 우투리~ 하고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확실한 재해석이지만, 시작 전까지도 와닿지 않았던 시놉시스였는데, 연극은 관객들에게 새롭게 해석한 우투리의 세계관을 이해시키기 위해 배우들은 이야기꾼이 되었다. 등장인물은 저항군 대장 1, 빵집 아들인 2, 세탁소 딸이자 주인공인 3, 공장 기숙사 메이트인 4, 저항군 대장의 부하인 5, 총 다섯으로 이름은 따로 없다.
그래서 일인다역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데도 혼란스러움 없이 충분한 속도로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재해석이 만든 세계관은 90분이라는 시간에 모든 서사를 닮기는 어려웠을 분량이다. 이토록 짜임새 있게, 과함이 없이 연출한 무대였다.
연극 <우투리 : 가공할만한>은 이런 점을 비꼬았다. 변주를 주었고 세계관도 틀어버렸다. '고전의 재해석'을 테마로 라스낭독극장에서 첫선을 보인 후 연이어 정식 공연까지 이른 것이라 한다. 이야기의 핵심은 "우리 모두 내일이 궁금한 삶을 살 권리가 있잖니"라는 대사로 귀결된다.
사실 클리셰적인 이야기로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흐름이다. 귀빈의 삶을 이어가는 기득권층인 0 도시 사람들, 즉 중앙정부에 맞서 중앙과 제일 가까운 1도시부터 변방의 5 도시까지 시민들이 저항군에 힘을 보태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쉽게 말하자면 게임을 하지 않고 전쟁하는 헝거 게임 정도? 그럼 예상한 결말대로 끝나겠다고 했는데, 예상외로 열린 결말을 암시하며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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