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정범철 '로봇 걸'

clint 2021. 3. 25. 06:16

 

 

정범철 작가의 시각으로 연극의 임무이자 미덕 중 하나는 사회의 부조리와 폭력을 무대에 올려 이에 대한 해결가능성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하여 연극의 토대인 희곡은 창작 시점부터 극장 밖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 <로봇 걸>(2016)은 제목만 보면 정범철 작가의 전작인 <병신3단 로봇>(2011)에서 극대화된 만화적 상상력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소재 측면에서 봤을 때는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허나, 이 작품은 만화적 상상력을 경유하여 사회의 폐부를 정확히 드러내는데 작품으로서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 연극배우 유미리의 자살로 시작하는 로봇 걸은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진 거대한 폭력과 그 가해의 주체에 주목한다. 유미리의 꿈은 명료하다. 배우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작품에서 날개로 상징되는 유미리의 꿈은 그러나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추락하고 만다. 이 추락의 원인은 인간을 약자와 강자로 구분하고 이 차이를 차별로 작동시키는 괴물들에 의해서이다. 작품에서 이 괴물들은 유미리를 배우가 아닌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기획사 사장, 유미리에게 성폭력을 가하는 정치인, 그리고 이들에게 기생하듯 살아가는 과학자로 그려진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임무와 역할에 충실하지 않고 오로지 강자라는 착각에 빠지거나, 혹은 그들에게 기생하여 약자를 착취할 뿐이다.

 

 

 

날개가 꺾여 추락한 유미리는 로봇으로 부활한다. 비록 로봇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꿈이 다시 실현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해본다. 보기 좋게 작품에서 해피엔딩의 동화적 세계는 거부당한다. 사회적 지위가 곧 권력이라 믿는 자들의 추악함은 여전히 유효하다. 작품은 로봇 조종이라는 장치를 걸어 가해자들의 변태적 광기를 이어나간다. 괴물들의 폭력과 그들 사이의 연대는 이처럼 지독하고 끔찍하다. 유미리의 연인이자 그녀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괴물들과 수없이 부딪혔던 태준의 추락은 소위 가진 자들이라 착각하고 있는 이들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그리고 이들 사이의 연대가 얼마나 공고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로봇 걸은 괴물들이 만들어 놓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 희망을 제시한다. 극장 밖 사람들이 모두 괴물은 아니다. 유미리, 장태준을 비롯하여 이 둘을 로봇으로 만든 강현석이라는 과학자는 괴물의 민낯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특히 강현석은 과학자로서의 윤리와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인물이기에 작품 속 암흑의 상황을 빛의 상황으로 이동시키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범철의 작품은 사유를 끄집어내는 힘이 있다. 작품의 엔딩에 이르러 강현석은 관객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의 리모컨은 누가 갖고 있나요?” 그의 질문에 독자관객은 현실에 존재하는 괴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누가 나를, 누가 우리를 조종하는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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