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고연옥 '인간이든 신이든'

clint 2021. 3. 21. 07:44

 

 

인간이든 신이든’은 IS(이슬람 국가) 전사가 되기 위해 집을 떠난 청년과 그를 구하기 위해 아들의 꿈 속으로 찾아온 한 여자의 긴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청년의 순진한 증오심과 기성세대의 평범한 이기심이 절대악으로 탄생하는 순간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예정된 파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고연옥 작가는 “증오심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청년들에게 기성세대는 스스로 올바르게 살아왔다고 믿는 자기사랑의 결정체일 뿐”이라며 “절대 화해할 수 없는 증오와 이기심의 끝을 상상하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지만, 어쩌면 바로 그 순간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생길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전사가 되기 위해 집을 떠난 청년, 떠난 아들을 집으로 데려와 자신의 삶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여자. 이들의 각기 다른 여정은 영원불멸의 신이 되고자 떠났지만 결국 신이 되는 것에 실패하고 인간으로 돌아와 현재의 소중함을 말했던 인류 최초의 신화, 길가메시의 여정과 닮아있다. <인간이든 신이든>은 작품 속 인물의 이야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지극히 사적인 것처럼 보이는, 결코 당사자가 될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극단적인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 속 곪아 있는 갈등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이를 통해 평소 외면해왔던 것들이 결코 자신과 관계없지 않음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작가의 글

인간이든 신이든IS전사가 되기 위해 떠난 청년의 실화(2015년 1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세대갈등과 젠더갈등 문제가 가장 강력하게 표출된 사건으로 보였습니다. ‘죽음 직전의 꿈이라는 신화적 도구를 사용해서, 아들의 꿈속으로 아들을 찾아 떠난 엄마의 이야기를 구상했습니다. 작품의 배경이 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인류 최초의 신화 길가메시가 탄생한 곳입니다. 영원불멸의 신이 되고자 떠났던 길가메시의 여정이 어쩌면 IS전사가 되고 싶었던 청년과 그 아들을 집으로 데려와 자신의 삶을 회복시키고자 했던 엄마의 각기 다른 여정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가메시가 신이 되는 것에 실패하고 인간으로 돌아와 현재의 소중함을 말했던 그곳이 왜 지금은 수많은 이들의 현재를 파괴하는 곳이 되었는지 알고 싶었고, 바로 지금 우리의 이야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직 공연되지 않은 인간이든 신이든을 비롯해서 모든 작품은 아무리 애를 써도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미울 때도 있지만, 가끔은 해결하려고 애쓴 흔적들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엄마가 된 후에야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된 것에 감사하기도 하지만, 임신한 여자, 아기를 키우는 여자 등 엄마에 관한 이야기 빼고는 참신한 여성서사를 떠올릴 수 없는 것이 부끄럽기도 합니다편협하고 흠 많은 제가 희곡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매순간 좋은 동료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함께 해주실 소중한 동료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고연옥

1971년 서울 출생. 극작가. 「인류 최초의 키스」로 데뷔하여, 초기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회성 강한 작품들을 발표하였고, 근래 신화를 통해 현실을 해석하는 작품들을 잇달아 쓰고 있다. 주로 강력사건을 통해 인간의 본성, 인간의 원형, 구원의 문제를 다루며, 인간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희곡집으로 『인류 최초의 키스』, 『고연옥 희곡집 2』 등이 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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