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안정민 '고독한 목욕'

clint 2021. 2. 8. 09:05

 

 

이 작품은 1960~1970년대 인민혁명당 사건이 소재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북한의 지령을 받는 지하조직을 결성했다'고 발표, 다수의 인사·언론인·교수·학생 등이 검거됐다. 연극은 인혁당 사건으로 희생된, 과거 지식인이었으나 양봉을 한 아버지를 돌아보는 '송씨 아들'의 이야기다. 표면적으로는 세상이 주목하지 않은, 한 가족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보편성은 개인으로부터 획득된다. 송씨 아들의 친구, 송씨의 지인들로 고통과 아픔은 확산되고 그것은 결국 사회의 슬픔이 된다. 아버지(송씨)가 간첩 혐의로 급작스럽게 잡혀간 후, 모든 것이 무서워진 아들은 욕조 속에 본인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그는 욕조 안에서 꿈인지 환상인지 모르게 아버지를 만나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는데 .... 꿈과 기억,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는 이야기는 익숙하지만 아픈 역사를 감각적으로 그려내어 당신 가슴 한편에 자리 잡은 상처를 계속해서 자극한다. 이제 작가는 객석의 우리에게 묻는다. 이 상처를 희망의 씨앗으로 기억할지 아니면 결코 씻어지지 않는 흉터로 남길 것인지.

 

 

 

 

*인혁당 사건

1964년 당시 중앙정보부가 41명의 혁신계 인사와 언론인·교수·학생 등이 인민혁명당을 결성하여 국가전복을 도모했다고 발표한 사건. 1975년 대법원은 인혁당 재건 관련 자 8명에 대한 사형을 확정했고 국방부는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197549일 기습적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2007년 재심에서 33년 만에 무죄가 선고되었다.

 

 

 

 

"연극을 배우면서 고생을 해서 그런지, 주변부에 관심을 가졌어요. 중심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요." '고독한 목욕''구본장 벼룩아씨' 작업의 '정신적인' 연장선상이다. 안 작가는 도시재생 관련 연구소에 근무할 당시 서대문 형문소 옆 옥바라지 골목을 방문, 부서진 공간들을 목격했다. 이 골목을 위해 연대하던 예술가들을 만나 '구본장 벼룩아씨'를 작업했다. 그 때부터 안 작가의 '기억에 대한 화두' 찾기는 시작됐다.

"그저 알고만 있었던 '기억이라는 것은 개념적인 것만이 아니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됐죠. 그 말 자체를 체험하게 됐다고 할까. 기억을 하지 않으면 물리적으로도 사라지게 되더라고요. 국가와 도시에서도 재편이 되는 거죠.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어요. 역사관의 차이로 어른들하고도 많이 싸우고요..."

창작집단 '푸른 수염'의 대표이자 연출가, 배우로도 활약 중인 안 작가는 미답의 영역을 맨손으로 헤쳐 왔다. 기성 연극인의 상당수는 역사를 다룰 때 개인을 배제한 사회적인 아픔에만 천착하거나, 비장함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안 작가는 다른 문법을 만들어가고 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찾아내는 작업'이 재미있다는 그녀는 담백하게 역사를 풀어간다. 평범한 서사 전개 방식을 택하지 않고 기억과 현재, 사실과 가상을 뒤섞는다. 국립극단이 차세대 극작가를 소개하기 위한 '젊은 극작가전'에 공연한 '고독한 목욕'은 신파나 가혹을 피하면서도 확연하게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위로까지 안기는 묘를 발휘한다고문에 시달리는 장면들이 불시착한 것처럼 잠깐씩 삽입되는 가운데 집으로 돌아가는 벌꿀의 날개 소리, 오래된 책의 접힌 모서리 등 송씨와 송씨 아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시를 낭송하듯 나열된다. 이번 작품에 목욕이라는 모티브를 가져온 것도 치유를 위해서다"기존에 피해자나 희생자들을 대할 때 스테레오 타입이 있잖아요. 스스로를 치유할 생각은 하지 않고 고통에만 가득 차 있죠. 피해자가 정말 피해자로 굳어지는 거예요. 근데 행복을 위한 치유적인 노력과 행위는 누구나 늘 습관적으로 하잖아요." 이성과 감성을 결합한 '고독한 목욕'은 영적이면서도 신선해 반갑고 놀라고 벅찬 순간을 선사한다.

 

      안정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