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오진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clint 2021. 2. 7. 11:58

 

조명이 하나둘 꺼지고 완전히 어두워진 무대에서, ‘스쿨미투뉴스가 흘러나왔다. 그 위로 김이박과 김이박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회상하기 시작했다. 두 이야기가 번갈아 들려왔다. 김이박은 하루에 크림빵을 9개씩 먹었고, 흰 양말을 두 번 접어 신고 검은 구두를 신었고, 선생님의 손길을 욕망했다. 다른 김이박은 피자빵 타입이었고, 언니가 둘, 남동생이 하나 있었고,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자위를 하고서 타버릴 듯한 죄책감을 느끼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김이박들의 세상을 정신없이 집중해서 따라갔다. 그들이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연습하는 장면에선 힘차게 춤추는 배우들 너머로 박수를 치는 관객들까지 어우러져 다 함께 시름을 잊고 까르르 웃었다.

두 김이박은 가끔씩 한 마디를 둘이서 나누어 말하거나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말하곤 했다. 김이박들의 세상은 자주 겹쳐져서 조금 전 나왔던 어떤 장면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이를테면 선생님들이 잠 깨라며 뒷목을 주무르고 등과 팔을 쓸어내릴 때 김이박들은 많은 애들이 그것을 사랑이라고 여겼다라고 말했다. , 대걸레라고 불리던 김미진이 있었다. 김이박은 김미진 몸캠을 검색해보았다. 강성태 선생님의 애를 배었다가 낙태했다는 고3 언니가 있었다. 야한 타입인 고3 언니가 김이박은 부럽다고 말했다. 그 장면들은 서로의 장면을 떠오르게 했다. 하지만 김이박도 머지않아 그런 피해를 경험했고, 이렇게 말했다. “처음으로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윤지은도. 3 언니도. 정성태도.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선생님들이 애들 손을 마사지하고 어깨를 주무르는 것이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그리고서 시작된 것은 바로, ‘스쿨미투였다.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김이박과 학생들은 수백 장의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일종의 시위였는데, 학교에 있어왔던 성폭력 문화를 알리기 위함이었다. 천장에 줄로 매달려 있는 조명은 김이박의 손이 스칠 때마다 거칠게 날았고, 누군가는 그것을 하나하나 멈추려 따라다녔다. 결국 조명은 멈추었고, “분명히 어떤 일이 있었는데, 없던 일처럼 흘러갈 때가 있다라는 대사가 이어졌다. 언제나 그렇다. 하지만 기억하면 된다. 과거는 변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그것은 사랑이 아님을 깨달았다는 사실. 그래서 함께 움직였다는 사실.

 

 

 

 

지금까지도 스쿨미투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20202, 충북여중 가해교사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는 판결이 있었다. 마침내, 가해교사는 처벌받고, 피해 학생은 삶의 진실과 정의를 회복하게 되었다. 가해교사는 항소했고,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이기에 두렵지 않을 것이다. 2020년 스쿨미투의 첫 시작을 알린 학교는 충렬여자 중학교였다. 지난달, 충렬여중의 교장이 여학생을 폭행한 사안에 대한 공론화가 이루어졌다. 이미 교육청에 접수되었음에도, ‘방학 중 정직1개월이라는 미미한 처벌만을 받은 사안이었다. 여전히 우리는 가해교사의 안위가 더 중요한 교육 현장에서 하루하루 싸우고 있다. 그럼에도 1992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김이박도, 2008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김이박도, 그 모든 시간 속에서 여전히 김이박이었다. 김이박은 후회하고 사랑하고 고통 받고 질문하고 춤추고 자위하고 저항하며 꾸준히 그의 삶을 살았고, 여전히 살고 있다. 그런 그들의 몸짓이 이제껏 보여 진 적이 없었음에도 너무나도 현실적이라고 느꼈던 것은, 그의 세상이 2020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나의 세상과도 분명히 닿아 있었기 때문이리라. ‘다만 이 순간 우주와 나는 서로가 모르는 채 상호작용하고 있다라는 대사가 주었던 울림도. 두 배우가 자연스레 시대를 넘나들며 모든 등장인물을 연기했던 것도. 그 수많은 삶의 조각들이 하나의 연극으로 꿰어질 수 있었던 것도. 우리는 베개처럼 닿아있고, 현재를 살아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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