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내용과 형식을 함축하고 있다.
'달빛'으로 상징되는 비극이 '소나타'라는 음악적 형식처럼 반복되는 작품이다.
행복을 꿈꿨던 한 가정이 인간의 본능과 욕망에 의해 파괴되는 이야기다.
주인공 옥선은 연로한 아버지, 몸이 약한 오빠 광재를 돌보며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왠지 모를 불안에 시달린다.
아빠는 옥선의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빠는 그런 아빠와 갈등한다.
옥선은 엄마가 남긴 피아노를 연주하며 불안을 잠재우려 한다.
극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후반부에 극의 비밀이 밝혀지면,
전반부에 등장한 장치들이 숨겨진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극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보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달빛 소나타>는 비극이다. 행복해지고 싶었던 한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이야기한다.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딸이 그녀의 무의식 속 괴물과 사투를 벌이는 과정을 무채색의 심리적 풍경으로 보여주며 강렬한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한다.
우두커니 앉아 있는 2층 그녀의 방이고, 다른 하나는 허위를 아늑한 가족의 공간으로 포장한 1층의 거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간은 무대 후면 2층 중앙으로 징벌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2층 그녀만의 공간은 상상과 환상의 판타지적 세계로 그녀만의 무의식의 심연이다. 이러한 무의식의 심연에서 발아한 징벌에의 욕구는 2층 후면 중앙의 공간에서 그녀의 상상에서 복원된 오빠 광재에 의해 본능적 욕구의 대상들이 제거된다. 그리고 징벌된 본능의 처참한 흔적들은 1층 우측의 수납공간에 방치된다. 그녀는 가끔 우측 수납공간에서 휠체어를 탄 아버지를 불러낸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이 작품 속에서 다중적 의미를 지니는데, 하나는 그녀가 염원하는 안온하고 행복한 가족의 표상적 존재로 등장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는 부자유한 신체 조건으로 옴짝달싹 못하는 초라한 존재로 그녀의 통제 하에서 꼭두각시처럼 움직인다. 그리고 수납공간에 미라로 방치되어 있는 본능적 욕구의 초라한 흔적으로서의 사체이다. 이미 9살 때 죽은 오빠 광재는 그녀의 상상적 공간에서 복원된 지원군으로 그녀와 함께 가족의 훼손을 막아 끝까지 가족의 진정한 가치를 지키려 하는 그녀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오빠는 그녀의 의식 속에서 서슴없이 살인을 저지른다. 몇 가지 아쉬움 역시 숨길 수 없다. 그녀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좇아 방문한 이웃집 여자는 이미 자살한 어머니의 대역을 위해 살해되어 수납공간에 방치된다. 그러다가 그녀는 안온한 가족의 풍경에 대한 그녀의 갈증을 채워주기 위해 아버지의 휠체어를 뒤에서 밀어주는 어머니 역을 대신한다. 이웃집 여자가 살해된 원인은 징벌된 본능의 흔적들을 방치한 수납공간을 훔쳐보았다는 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하게 죽은 어머니의 대역을 위한 무모한 희생타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보지 말아야 할 심연을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가 가족의 안온한 풍경을 구성하는데 동원되어 희생되었다는 것은 뭔가 석연치 않다. 택배기사의 어이없는 죽음도 그 모티프가 명확하지 않다. 그녀에게 본능적인 욕구로서의 수작을 걸어와 순수와 가족의 안온한 가치를 훼손시킨 점에 대한 징벌로 죽음을 당한 것은 그 행위의 설득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서 엔딩 시퀀스의 반전 역시 그 모티프가 석연치 않고 설득력이 약하다. 차라리 지금까지의 모든 징벌과 살해의 처참한 흔적이 그녀의 상상과 판타지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처리했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무리수가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경찰의 수색에 의해 본능적 욕구의 수납공간에서 사체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이 모든 것들이 그녀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녀의 끔찍한 행위가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그 행위에 대한 필연성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이 작품의 주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아버지라는 친화적이고 윤리적인 존재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가족의 진정한 가치가 훼손되어 그에 대한 징벌로 이러한 비극적인 결과가 도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본능적 욕구인 괴물(아버지) 그 자체만을 제거했다는 것은 인정될 수도 있겠지만, 이웃집 여자와 택배기사까지 그 희생물로 등장하는 것은 무리수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녀의 강한 필연적인 심리적 모티프가 설정되어야 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강력한 동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작품의 주제의식이 명확하지 않게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희곡에서의 주제의식은 관객에 대한 최소의 배려이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극장 밖으로 나왔을 때, 관객은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희곡이 주는 그 무엇으로서의 메시지는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현실인식으로서의 주제를 통해 연극은 관객의 의식을 성숙시키고 나아가서는 그들의 행동까지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곧 연극의 사회적 기능이기도 하다. 연출이 한 작품의 연출에서 끝까지 점검해야 할 것은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느냐는 것과, 긴장과 이완의 연결고리로서의 템포와 리듬을 잘 살려내고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정민 '고독한 목욕' (1) | 2021.02.08 |
---|---|
이오진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1) | 2021.02.07 |
최해주 '결혼전야' (1) | 2021.02.01 |
김휘진 '경부특급' (1) | 2021.01.20 |
박초원 '어쩔 수 없어' (1) | 2021.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