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휘진 '경부특급'

clint 2021. 1. 20. 12:55

 

 

경부특급은 만고의 매국노 이완용의 생일에 참석고자 기차에 오르는 각양각색의 군상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은 을축년(1925) 홍수직전의 호우를 뚫고 제시간에 경성 역에 도착고자 고군분투한다. 외부에서 본다면 기차는 철도를 유유히 달리고 있겠지만 그 안에선 수많은 이해관계기 얽히고설켜 그야말로 기차의 동력이란 오직 욕망일 따름이다.

권리장전 2020 친일탐구참가작인 이 작품은 결국 욕망에 대한 탐구로 방점이 찍힌다. 마호가니 가구로 장식 된 일제강점기 당시 아카츠키 특급을 위해 희생된 인력과 자원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욕당이 개인의 차원에 머무를 땐 도덕 혹은 양심이 욕망을 자기검열 할 수 있다. 하지만 욕망이 하나의 목적으로 무리를 이루면 도덕과 양심은 설 자리를 잃는다. 열차에 오른 인물을 친일파를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오직 욕망에 충실한 인물이 그 욕망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구실만 제공해주면 그들은 꼼꼼하고 조직적으로 악을 수행해 나간다. 이들을 독립운동가로 만들기 위해선 작가로서 몇 갑절의 노력이 필요함은 물론이다부산에서 출발한 기차가 경성에 이를 즈음. 희곡을 읽는 독자가 소위 친일의 본질을 곱씹는 한편 현시대의 경부특급에 탑승한 이들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길 바라본다.

 

 

 

 

아카츠키’(여명) 익스프레스라는 부제가 눈에 들어와 검색을 해보니, 이 열차는 1936년 개통된 경부특급열차로 당시로서는 서울-부산을 6시간 대로 운행하는 획기적인 기차였고, 이것이 해방 후에 통일호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무대배경으로 설치된 '꽃보다 이완용'이라는 파스텔톤의 네온사인이 시대를 암시하는 가운데 연극은 1925717일 이완용의 생일에 참석하기 위해 경부선 특실에 탑승한 승객들이 모여있는 열차의 식당칸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이들은 각각 이완용에게 생일선물로 토지문서를 선물하려는 일본인의 양자와 무용을 하는 그의 여자친구, 살아남기 위해 변신을 꾀한 일본 철도청의 조선인관리, 장차 개통될 아가츠키특급의 지분을 따내려는 영남의 사업가, 노동조합, 친일어용 단체 등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얼치기 기자 등이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누구나 알고 있는 대표적인 매국노 이완용 밑에서 자신의 이권을 챙기기에 급급했던 일제강점기 B급 친일파들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준다. 우여곡절 끝에 열차는 경성에 도착하는데... 열차 승무원을 비롯한 배우들의 전체적으로 안정된 연기와 그들이 풀어놓는 세세한 이야기의 재미에도 불구하고, 감동으로 이어질 만큼 극 전체를 관통하는 극적 갈등이나 주제가 다소 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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