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임선빈 '페스카마- 고기잡이배'

clint 2017. 6. 1. 21:20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마다의 입장 차이일지도 모른다. 38회 서울연극제 대상작인 연극 페스카마-고기잡이 배1996년 남태평양에서 조업하던 페스카마호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연극이다.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또 누군가는 아들을 중국 최고 명문인 북경대에 보내기 위해 집을 팔거나 담보로 빚을 내 배에 올랐다. 2등 항해사 강대천, 김성동, 백남규, 박승만, 김일진, 김귀남, 최천수 등 페스카마호에 오른 7명의 조선족 선원들에겐 현실을 극복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하지만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선체 작업, 배 멀미 등으로 고통스럽다.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조선족 선원들로 인해 조업 자체가 불가능해진 선장, 갑판장 등의 모진 처사가 또 고통스럽다. 조선족 선원들을 향한 짱개새끼들, 만만디, 개돼지, 죽는다 등의 욕설과 쓸모없는 것들이라는 뒷담화 등으로 페스카마호의 분위기는 아슬아슬하다. 갑판장은 조선족 선원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어쩔 수 없는혹은 저것들은 당연히 한패등의 이유를 호소한다. 그나마 기관사나 조리장 등은 조선족 선원들을 인간적으로 대하지만 선상의 지독한 권력과 계급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저항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항해사의 말처럼 한 마리당 가격이 조선족 선원 두세 명의 1년 치 봉급보다 비싼혼마구로(블루핀, 참다랑어) 포획에 실패하면서 선내 분위기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선장으로는 첫 항해에 나선 선장의 분노, 폭력적인 발길질로 발현된 그 분노를 속수무책으로 받아내던 조선족 선원 백남규에게 뺨을 맞은 선장, 갈고리와 작살의 대치, 자연스레 양분돼 칼을 들이미는 선원들. 그렇게 살인은 행해졌다.

 

 

 

 

 

표면적으로 조선족 선원들은 분명 가해자다. 선장, 기관장, 조리장, 1등 항해사, 기관사 등을 잔인하게 살해했고 6명의 인도네시아 선원들도 위험에 처한다. 그들의 살해는 현실을 극복하기는커녕 고향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지속적으로 받아오던 핍박 그리고 무지에서 오는 공포가 얽히면서였다. 마지막까지 살해를 거부하고 스스로 죽어간 조선족 청년 귀남, 그런 귀남을 보며 기관사는 한국 사회 어디를 가나 노동을 제공하는 자와 노동을 관리하는 자의 불평등은 존재한다. 15년 일한 갑판장과 한달 일한 너희들이 평등할 거라 생각했나?”라 반문하며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당연한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일갈한다.

 

 

 

 

 

그나마 조선족 선원들에게 인간적이었던 기관사에게도 불평등은 당연한 일, 평등에 대해 살인을 정당화하기 위한 개수작이라는 기관사의 절규와 자본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개처럼 때리고 모욕하는 일도 당연한 차별이라고 가르치냐2등 항해사의 반문, 전혀 다른 주장처럼 보이지만 또 전혀 다르지도 않다.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닌, 입장의 차이 그리고 각자가 속한 사회 가치관의 차이다페스카마호 사건은 당연한 계급과 불평등의 존재, 무의식적으로 혹은 알고서도 눈 감은 대가는 정의의 범주를 벗어난 비극이었다. 현실은 그렇게 눈 감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당연하게부조리와 불평등을 받아들이는 사회를 만들었다. 눈 감는 대가로 맞이한 그 비극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난 6개월 동안 뼈저리게 경험했고 또 일부는 여전히 눈 감고 있다. 극 역시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에필로그로 막을 내린다. 고요하지만 무겁게, 광활한 바다 위에 떠 있는 페스카마호, 처음으로 돌아가 막을 내리는 극은 어쩌면 전혀 다른 엔딩을 맞았을지도 모를 실제 사건에 대한 잔상을 짙게도 남긴다.

이것이 현실인가, 그저 환상인가, 흙구덩이에 갇혀 현실에서 벗어날 수가 없네(중략)쉽게 오고 쉽게 가고 조금 높고 또 조금 낮고 어쨌든 바람은 불고 나와는 전혀 관계없지.’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수정 '말 잘듣는 사람들'  (1) 2017.06.03
김학선 '사람을 찾습니다'  (1) 2017.06.02
고연옥 '처의 감각'  (1) 2017.05.31
고연옥 '손님들'  (1) 2017.05.30
강재림 '더 뮤즈, 록주'  (1) 2017.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