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고연옥 '처의 감각'

clint 2017. 5. 31. 09:08

 

 

 

 

. 이 희곡 ()의 감각은 제5회 벽산희곡상 수상작품이다

. 201671일부터 717일까지 남산예술센터에 곰의 아내라는 제목으로 초연되었다.

 

 

 

 

 

숲에서 길을 잃은 소녀가 곰의 아이를 낳고, 곰의 아내가 되었다. 그러다 사냥꾼에게 발견되어 곰의 아이는 죽임을 당하고, 자신도 인간 세계로 끌려와 곰 남편과 이별을 맞았다그러다 그녀가 우연히 목숨을 구해준 남자는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셈이 되었고, “다시 살아난 게 좋은지도 모르겠으니 딱히 생명의 은인인 줄도 모르겠다.”고 한다. 이 남자와 함께 곰 남편을 찾으러 떠났다가 외려 남자의 아이를 가지게 되고, 같이 살다 보니 둘 사이에 아이가 셋이나 됐다. 하지만 남자는 여전히 여자를 이해할 수 없고, 여자는 여전히 곰의 습성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둘은 함께 살게 되고 사랑보다 책임감에 의해 시작된 가족관계는 행복하지 않다. 남자는 여자와 아이 때문에 긴 세월 사랑했던 애인을 떠나보내야 했고 희망도 행복도 없는 억울한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여자는 남자의 빈 마음을 알지만 떠날 수는 없다. 남자에겐 족쇄지만 여자에게 가족이니까... 그렇게 두 아이를 낳고 또 한 아이를 잉태하는 여자. 그들은 정착하지 못한 현실을 버리고 멀리 떠나기로 한다.

긴 여정.... 결국 남자는 갈망하던 자유와 애인을 찾아 순수 박물관으로 떠나버리고 여자와 아이들은 남겨진다. 이제 여자는 아이들을 위해 힘을 내기로 한다. 그리고 늘 그리워했던 마음속의 둥지, 동굴로 찾아간다. 그녀의 동물적 감각으로 그렇게 곰을 찾아서...

 

 

 

 

 

 

이 작품 속에서 무엇이 인간다운 삶인지, 과연 인간의 삶이 짐승보다 나은 삶인지 끝없이 질문을 던진다. ‘자기 것을 지킬 때는 무섭지만, 아닐 때는 곰살가운곰의 모습과 짐승이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인간의 모습이 교차하고, 냄새와 흔적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떠난 곰의 행동과 상대방이 남긴 담배꽁초 하나까지도 모아두는 인간의 행동이 비교된다.

이것은 일종의 판타지 연극이라고 생각된다. 곰의 아이를 낳고 산다는 것과 여자는 계속해서 짐승의 감각을 지니고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남자의 대사들로... 여자가 순수 인간이 아닌가? 아니면 곰은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짐승이 아닌 영물인가? 그렇게 마지막 장면은 판타지성의 절정으로 비로소 곰을 만나는 여자와 아이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고연옥의 '처의 감각' 희곡을 다 읽고 나서도 분위기는 다르지만 같은 결말 아닌가 했다. 경건하고 섬뜩했던 희곡의 분위기와 달리 연극은 동화적 느낌으로 승화시켰다는 느낌으로 말이다. 끝부분에 등장하는 여관 주인의 복선 같은 충격적 이야기가 크게 한몫을 한다. 인간 남편이 떠나자 남편이 돌아보길 바라며 자신의 자식을 하나씩 하나씩 물에 던져버린 곰 얘기... 거기다 한발 더 나가 비현실적 사랑의 상징성 같은 '순수박물관'을 떠난 남자 또한 죽음을 암시한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된다. 자살을 시도했던 이 연극의 처음 장면의 데자뷔처럼 동굴 같은 세상과의 이별.

 

 

 

 

 

작가와 연출은 작품의 합일점을 찾지 못해 결국 각자의 해석대로 자기 갈 길 간 연극과 희곡집이란다. 그렇다면 고연옥 작가의 '처의 감각'과 고선웅 연출의 '곰의 아내'는 결론이 다르다는 것! 고로 연극은 내 계산과 달리 죽은 이 하나도 없이 여자는 인간 아이들과 남편 곰과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희망을 암시했던 결말이란 소리다.

 

 

 

 

 

이 비극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일까? ‘남편을 버리고 떠나온 가해자이자, ‘남자에게서 버림받는 피해자이기도 한, 곰의 세계에도 인간의 세계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이 슬픈 운명의 여인은 누구인가?

작가는 말한다. “우리 사는 세상에도 수많은 곰 아내들이 있습니다. 한때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며 살았지만 결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동굴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그 속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죽여 가며 서서히 사라지는 사람들입니다.”라고.

인간에 의해 '야만'이란 누명을 써야 했던, 순수한 곰의 세계에 길들여진 여자에게 인간의 세계는 지독히도 폭력적이고 위험한 곳이었다. 이런 세계에 적응해 타인을 속이고 밟고 일어설 수 없는 인물이라면,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밖에 달리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건 이미 현실에서도 적지 않은 이들이 경험하고 목격한 현상일 거다. 작가는 다만 '희생'을 통해 곰의 세계로 회귀할 수 있는 실낱같은 가능성만은 닫아놓지 않았다.

 

 

 

 

 

고연옥의 처의 감각은 정형화된 문법을 따르지 않는 젊은 작가의 언어로 쓰인 작품이다

이 희곡은 웅녀 신화를 바탕으로 현대의 시간 속으로 신화적 세계의 힘을 연장시킨다. 갈수록 초라해지는 삶의 조건 속에서 작가는 기억의 저편에 있는 신화로부터 인간을 비로소 인간답게 지탱해 주는 가치를 길어 오고 있다 그뿐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 신화를 우리 삶 속으로 연장하고 있다 단순한 구성 속에서 인물 관계를 굳이 대립적으로 설정하지 않으면서도 각각의 인물들의 삶의 최대치를 드러냈다 - (5회 벽산희곡상 심사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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