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낭만과 달리, 실제 동물의 손에 의해 길러진 사람은 결코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다고 한다. 1920년 인도에서 발견된 두 소녀와 2001년 칠레에서 발견된 소년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각각 늑대와 개의 보살핌을 받고 자란 그들은 끝내 야성을 버리지 못했고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연극 ‘사람을 찾습니다’는 동물로 살아온 자의 비정상적 행보를 통해 ‘길들여지고 학습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다.
작품은 2008년 개봉한 동명 영화를 바탕으로 한다. 독특한 설정으로 주목받았던 원작을 처음으로 무대화한 것은 7년 전이다. 다시 돌아온 이번 시즌은 영화에서 주인공 ‘원영’을 열연했던 최무성이 연출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무대의 중심에는 두 인물이 존재한다.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부동산 중개인 ‘원영’과 폭력을 당하는 대상인 ‘규남’이다.
충격적 분위기는 극의 시작부터 뚜렷하다. 정사를 즐기던 원영이 연신 거친 말을 쏟아내자 정부 인애는 그의 몸에 상처를 낸다. 규남은 무대 한편에서 그런 둘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다. 장면이 바뀌고, 원영은 인근 부동산 업자에게 손님을 빼앗긴 화를 규남에게 쏟아낸다. 목줄을 당기고, 세게 물어보라며 강요하는 원영의 폭력은 마치 사람이 아닌 투견을 길들이는 행위로 보인다. 그는 이처럼 규남을 사람이 아닌 한 마리의 야생 개로 대우한다. 비인간적 처우에 적응한 규남은 이내 자신 스스로도 인간임을 잊어버리고, 개처럼 영역 표시를 일삼는다. 그러던 와중, 마을에는 개가 하나 둘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일부 개들은 주인과 함께 사라졌으며, 특히 원영과 말다툼을 벌였던 손님들이 실종되는 일이 생긴다. 미스터리한 사건의 베일은 규남이 숨겨온 이를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벗겨진다. 겉으로 보기엔 순종적이었던 규남은 사실 주인으로 인식한 원영의 앞을 벗어나는 순간 더없이 잔인한 사람으로 돌변했다. 원영은 자신이 길들여 놓은 이의 실체를 가장 비극적인 방법으로 확인하게 된다. 줄곧 개로 대우받았던 규남이 미약하게나마 사람으로 대접받는 순간, 그는 원영의 목을 물어뜯는다. “주인이 변하면 안 되지”라며 이를 갈던 규남이 다시 정착한 곳은 결국 자신을 사람 이하로 대우하는 자의 곁이다.
아내에게 사랑을 속삭이지만 바람을 일삼는 원영, 그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인애와 다예, 속물적인 부동산 손님들, 무기력한 삶을 유지하는 백수 3인방 종만, 일권, 선우 그리고 스스로 개가 되어버린 규남. ‘인간적’이라 평하기엔 부족한 이들 중 과연 사람이라 부를 수 있는 자는 누구일까. 비극적이고 잔인했던 한바탕 소란 뒤에도 부동산에는 백수 3인방의 한가한 고스톱 소리가 울려 퍼진다.
공연의 막이 내린 후, 규남은 객석의 중앙에 자리한다. 스스로 목줄을 채워버린, 목줄을 풀려는 이들에게 이빨을 보이는 또 다른 규남이 우리 사회에 자연스레 섞여 있다는 뜻은 아닐까. 그리고 인간답게 사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공연처럼 ‘사람다운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도 정해진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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