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저녁시간, 강남에 위치한 ‘명가 삼계탕’ 식당에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점심에 식당에서 지갑 분실 사건이 일어났다며 형사는 식당 안 직원들에게 수사 협조를 요청한다. 식당 안 직원들은 형사의 명령 하에 범인을 찾기 시작하는데...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누구보다 민감한 나라 미국에서 2004년 이야기만 들어서는 믿기지 않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4년 미국 캔터키 주의 맥도날드에서 벌어진 '보이스 강간'이라는 충격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극이다. '보이스 강간'이란 전화로 경찰을 사칭하며 피해자를 조종해 강간을 저지르게 만드는 신종 범죄이다. 보이스 피싱은 알았어도 '보이스 강간'이 뭔가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분명 심각한 사회문제로서 이야기되던 사건이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그 당시에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뒤에 '강간'이었으니 말이다. 자극적인 이슈 '보이스 강간', 왜 그러한 일이 벌어졌나 보다는 '미성년자'와 3명의 어른이 한 행위들이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얼마 안 가서 잊혔다. 사건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내 일이 아니면 외면하는 바쁜 어른들이자 타인의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공연을 본 사람들의 공연 평에 정확히 나와 있었다. '불편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 사건에 대해 '불편하다'라는 감정이 먼저 표출된다. 이 부분에 대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 극에서 다루고 있는 사실들은 어른들이 보기엔 매우 불편한 사실이니 말이다.
실제 사건에 모티프를 두고 만든 말 잘 듣는 사람들의 배경은 한국의 명가 삼계탕이라는 가상의 체인점이다. 체인점의 특성상 고객과 매출에 대해 매우 민감한 사항들로 인해 매니저와 직원들은 언제나 고객과 사장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입장이다. 특히나 중학생 딸을 두고 있는 매니저 같은 경우 사장에게 밉보여 직장 내에서 위치가 흔들리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하는 사람이다. 나머지 사람들도 각자의 생활과 사정이 있을 테지만 사람이 절실하게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들은 쉽게 꼬투리를 잡히기 마련이다. 미성년자인 예슬이처럼 말이다. 아직 부모의 울타리 속에서 보호받아야 할 어린 친구지만 아픈 엄마와 소송 중인 아버지로 인해 어른들의 세계에 먼저 발을 내디뎠다. 아르바이트로 미리 겪는 사회생활 속 예슬이는 호칭 문제에서 부터 부담스러운 동료직원의 관심까지 많게는 아니더라도 어느 하나 그냥 넘어감 없이 자기 할 말은 다 한다. 이러한 모습이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권위를 무시당하는 것 같아 예슬이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들 역시 언제나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강압적 권위 속에서 살아왔기에.
나이는 지위이고 권위이자 곧 권력으로 인식되어 '예' 이외의 대답은 말대답이고, 버릇없는 것이며 자신을 무시한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압적 권위 속에서 어쩌면 '보이스 강간'이 시작되기 전에 사건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권위' 앞에 반기를 드는 '상식' 그리고 '나이 어린 여자아이'. 목소리로 모두를 농락한 '보이스 강간범'의 이유는 없다. 나오지 않았고 예측하기도 어려웠다. 왜? 왜? 불특정 다수를 그렇게 농락했을까? 이러한 의문이 들기에 어른의 말을 듣는 게 상식이라고 시종일관 외치고 강압적 태도로 복종을 요구하는 모습이 더욱더 불쾌하고 극을 끝까지 보기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보이스 강간범'은 형사라는 공권력을 들이댔고 미성년자인 예슬이에게 은근히 어른으로서의 권위를 들이밀었던 어른들은 그 공권력의 권위 앞에 처참하게 무릎 꿇었다. 보이지도 않고 실제로 위협을 가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어른들은 공권력의 권위 앞에 자발적 협박을 당하고 폭력을 행사했으며 상식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아직은 '어린 여자아이'인 예슬이에게 언어적 폭력과 육체적 학대를 가했다. 자신이 자발적으로 실토한 죄목으로 협박당하며 자신의 위치가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아직 '어린' 여자아이였던 예슬이를 점차 거리낌 없이 협박하고 학대했으며 '보이스 강간'이 원활하게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줬다. 아무도 이 어린것을 끝까지 지켜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공권력이라는 권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람들… 심지어는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데도 자발적으로 무릎을 꿇고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며 배를 뒤집어 까는 '어른들'. 무작정 흔들어 대는 꼬리 앞에서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단지 지켜야 할 것이 많아서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예슬이를 향한 어른들의 폭력적인 행동들은 설명하고 이해받기 어렵다.
김수정의 '말 잘 듣는 사람들'의 구성과 짜임새는 정말 탄탄했다. 실제를 모티프로 하여 자신이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자신의 의도를 작품 속에서 배우가 가져가야 하는 선과 관객이 느껴야 하는 선을 넘지 않고 명확하게 전달한다.
작·연출 김수정은 ‘말 잘 듣는 사람이 되어라’ 순응하든 저항하든 우리에겐 이미 암묵적인 규칙이 있고 행동에 대한 책임이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명령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블랙 코미디라고 밝혔다.
김수정(1983~)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를 이수한 미모의 여류작가이자 무용가 겸 연출가로 극단 신세계 대표다. 혜화동1번지 동인이기도 하다.
연출작은 <귀신의집> <우리동네,미쓰리> <로미오&줄리엣> <어린왕자의지구보고서> <그러므로 포르노> <인간 동물원 초> <두근두근 내 사랑> <멋진 신세계> <세월호 - 사랑하는 대한민국 & 국가에게 묻는다> <보지체크> <망각댄스> < 망각댄스 – 세월호편> 등을 발표 연출했다. 안무로는 <해빙> <프록스> <실연> <핼리혜성> <꿈꾸는 거북이> <페리클레스> <세익스피어IN광주> <싸이코패스> <의붓기억> <멸> <빨간시> <왕의의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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