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극작가협회 2017년 신춘문예 당선작
시체에서 금 은 이빨을 뽑는 치과의사와 아버지 대신 치과의사를 의지하고 전쟁터를 헤매는 소년이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동행을 한 듯 친숙해 보이기도 한다. 전시라, 대낮에는 작업을 할 수 없고, 야간에만 하니, 불을 밝히면 아군이나 적군에게 사격을 당하기에, 달도 뜨지 않은 밤에만 작업을 한다. 두 사람은 시체를 물건 다루듯 익숙한 행태를 보이고, 시체를 베거나 시체 옆에 들어누워 잠을 청하기도 한다. 치과의사나 소년이나 이를 뽑는 데에는 이력이 난 듯싶다. 그러다가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불을 밝히게 되고, 총격을 당해 소년이 사망을 하니, 치과의사는 소년의 이까지 뽑아들고 퇴장하는 장면에서 공연은 끝이 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비교되는 독특한 발상의 연극이다.
당선소감
어린 나와 동생은 아버지를 졸라 이야기를 들어야 잠이 오곤 했습니다. 피곤하신 아버지께선 마지못해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아마 아버지께서 어렸을 때 보셨던 만화영화였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선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바꾸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만드신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 똥꼬를 움찔움찔 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내용이 무르익었을 때쯤 아버지께선 주무시기 일쑤였는데 나와 동생은 결말을 알지 못해 칭얼대며 눈을 감았습니다. 아쉬운 미음에 스스로 이야기를 상상하던 게 최초의 계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시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떠오릅니다. 당선을 발판 섬아 그 이야기들을 쓰고 고치는 데 당당히 매진하겠습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단원들과 꾸역꾸역 함께 탄 택시 안에서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와 눈을 마주치며 직감했던 홍찬이(아무리 생각해도 넌 천재야) ) ‘뭔데?’라고 하시며 씩 웃으시던 김유신 선생님, 연습실로 달려가 단원들에게 알린 하온이, 따뜻하게 축하해준 보예,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준 진유 누나 그 와중에 장난치던 정인 누나, 어안이 벙벙한 희랑 누나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베스… 이 풍경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아들은 지금 행복합니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일수록 연극은 더 막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극작을 하게 만드는 본질을 잊지 않으려 겸허히 노력하겠습니다. 연극만세!
심사평
올해도 109편이나 되는, 많은 희곡이 응모됐다. 신춘문예의 열기는 작년보다 더 뜨거웠다. 경험에 의하면, 열기가 뜨거울수록 우수한 작품이 나오기 마련이다. 작년의 등단작도 좋은 평가를 받았기에 올해도 기대가 높았다. 예심에서는 다사다난했던 2016년 한국 사회의 음울하고 아픈 모습이 많이 반영되어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본심을 통과하여 최종심에 오른 다섯 작품을 심사했다. 대상작은 〈멀리서 가까이〉, <명장〉, <비자발적 섹스〉, <산란기〉, <횃불〉이다.
〈멀리서 가까이〉는 이들의 성적 정체성을 이해하는 엄마를 극화했다. 안경을 소재로 삼은 점은 독특하나 중 · 장막 구성을 단막 길이에 담으려는 인상이 짙었고, 갈등이 약하고 결말이 예견되는 결함이 있다. <명장〉 역시 한복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신선하나 명장과 견습생의 관계와 갈등이 도식적이었고, 작품이 던지는 문제에 대한 해답 역시 상식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비자발적 섹스〉는 정확하고 세련된 대사와 묘시는 주목할 만하나 내밀한 동성애 관계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지가 선명히 드러나지 않았다. 동성애의 행위만 있고, 그 행위와 방어, 주저함, 이기심의 주체인 주인공A를 통해 무엇을 드러내려는지 궁금했다.
〈산란기〉는 소재를 다루며 극을 이끌어가는 극작술이 뛰어났다. 인물들의 적확한 대사와 심리묘사도 탁월했다. 다만 소녀가 알을 낳는 비현실적 상황은 그 이전의 사실적 전개를 뒤엎는 것인데, 낯선 충격보다 극의 마무리를 위한 과도한 설정이란 인상이 짙어 아쉬웠다. <횃불〉은 전시 상황에서의 생존을 알레고리 화하여 단막극의 미학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다. 구성이 완결되어 있고 주제와 상징이 잘 녹아 있다. 시체들, 이빨, 성냥, 횃불 등이 주요 오브제이자 상징으로써 작품의 주제와 의미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다만 어른(치과의사)이
소년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대사에 다소 설명적인 부분이 있어 아쉬웠다. 두 심사위원은 〈산란기〉와 〈횃불〉을 두고 논의 끝에 〈횃불〉이 상대적으로 큰 결함 없이 단막극의 미학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심사를 해보니, 아직도 단막극을 길이가 짧다고 하여 안이하게 보고 기본기를 소홀히 하는 작품들이 많은 편이다. 희곡 작가 지망생들은 단믹극이 장막극으로 가는 과정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단막극은 자체가 완결된 결정체다. 견고하고 힘 있는 단막극이야말로 훌륭한 극작가가 되는 바탕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선되지 못한 응모자들에게는 재도전의 기회를 갖길 바란다. 당선자에게는 당선작이 공연되어 관객과 세상과 만나는 기쁨을 누리길 바라고, 이 당선의 기쁨이 미래의 극작가의 인생에 좋은 도약점이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홍원기(극작가· 배우). 홍창수(극작가-한국극작가협회 이사장·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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