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후지타 덴 '앞서가는 죽음'

clint 2015. 10. 28. 16:06

 

 

 

 

<앞서가는 죽음〉은 1992년 극단 <하이유자>에서 니시키 가즈오(西木 一夫) 연출로 초연된 후 지방공연을 올리면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2005년부터는 작가 스스로 다른 극단에서 연출하여 재공연한 바 있다.

이 작품은 중국 잔류부인이라고 불리는 개척단원으로 만주에 건너가 전쟁 후에도 일본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중국에 살게 된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작가와 연출가 등 극단 제작진이 공연 1년 전 직접 현지를 방문하여 취재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연극이다. 중국 동북부 헤이릉장성 하얼빈시에 현지 거주 외국인을 대상으로 유일하게 운영되는 중국정부 국영양로원 '하얼빈 외교양노원'이 있다. 이 시설은 1945년 러시아인 전문 양로원으로 당시 소련정부가 만든 곳이었으나 1954년 중국으로 소유권이 넘겨졌다.

취재 당시 12명의 외국 여성들이 수용되어 있었는데 한국, 러시아, 미국, 그리고 국적 불명의 사람들과 네 명의 일본인이 친인척도 갈 곳도 없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생활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시설 원장을 비롯한 간호사 등 11명 직원의 보살핌으로 경제적으로는 큰 걱정 없이 살고 있지만, 고향 일본이 그립고 그리운 만큼 조국에 대한 원한도 깊었다고 후지타 덴은 초연 프로그램에 남겼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일본 여성은 지금의 처지를 자신의 운명이라 체념하며 이 양로원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각오를 하면서도 늘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깊은 밤, 다키에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듯 방에서 나와 응접실 계단을 내려온다. 늘 말벗을 삼으면서도 자주 다투곤 하는 또 한 명의 자신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조용히 자라고 시비를 거는 사다미도 실은 일본에서 올 예정인 호적서류를 원장에게 빼앗겨 못 받을까봐 걱정되어 잠 못 이루고 있다. 거기에 미쓰코도 밖에서 남편이 기다리고 있다고 또 한 명의 자신이 깨운다면서 방에서 나온다. 밤마다 멈춘 시계살 수리해주는 시계포를 찾아 인근을 배회 하는 요시도 들어온다. 잠 못 이루는 네 사람은 각자 일본으로 돌아갈 길잡이를 찾으면서 만주 개척단의 붕괴와 살아온 삶을 술회한다. 다키에는 40년 지나도록 생사조차 모르는 남편 이야기를, 사다미는 호적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한 관동군 병사 이야기를, 미쓰코는 혼자 일본으로 귀환하여 재혼한 남편 이야기를, 요시는 보복으로 손가락 세 개를 잃고 시계 수리를 못 하게 된 시계포 주인 이야기를 현실과 꿈 사이를 왕래하듯 이야기한다. 거기에 이 네 사람을 돌봐주고 있는 조선인 윤승은(종군위안부 출신)이 일본 병사가 준 유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더해지면 이 작품은 마치 시공을 초월한 동창회와도 같은 이야기가 된다. 작가는 일본인 네 명의 속내를 중심으로 다루기 위하여 젊은 날의 분신 18명을 등장시켰다.

중국 잔류부인이라 불리는 일본 여성들은 "낳아라, 길러라”라는 슬로건 아래 개척민과의 결혼을 장려하는 국책으로 만주에 건너가 일명 대륙의 신부라고도 불리었다. 이러한 대륙의 신부를 포함해서 1945년 패전 당시 중국 동북지역에는 160만 명에 이르는 일본인이 있었으며 개척단원은 약 27만 명이었다. 그 중 살아서 일본에 귀환하지 못했던 사람이 28.7%이다. 개척단 중에는 집단자결로 생존자가 몇 명에 이른 경우와 반 정도가 사망하거나 중국 잔류자로 남은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런 숫자는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 이유에 대해, 패전 몇 달 전 일본은 벌써 이 사람들을 비밀리에 기인(棄人)으로 결정하여 버렸기 때문이라고 소설 <대지의 바람〉에서 만주 개척단의 비정한 세계를 집필한 다마다 스미코 (玉田澄)는 초연 프로그램에 소회를 밝히고 있다.

 

 

 

초연 1년 후인 1993년 9월, 12명의 중국잔류부인들이 일본으로의 영주 귀국을 요구해서 귀국을 강행하고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농성을 벌였다. 만주 개척단에 시집간 이 여성들은 소련군의 침공 속에서 남편이나 가족을 잃고 그 후 중국 사람과 결혼해서 살아왔었다. 국책으로 대륙을 건너가게 되었고 패전으로 인하여 중국에 남겨진 중국 잔류부인들은 중. 일 국교정상화 20년이 지나도 신원보증인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그녀들은 공항에서 농성하면서 호소했다. 작가는 당시 일본이 안고 있던 전후 문제에 주목하였고, 시대 상황에 농락당한 그녀들의 삶과 일본 근현대사를 특유의 해학으로 접근한 작품이 <앞서가는 죽음〉이다.

<앞서가는 죽음〉에서 작가의 작품 특성을 극명하게 시사하고 있지만, 1980년 <극단1980> 창단 이후에 발표한 작품에서도 후지타 덴은 사회의 버림에도 굴복하지 않는 노인들의 미래 없는 저항을 그린 "노인 3부작” (<추상노폐1>, <노적귀적>, <닛뽄절연당>), 고도성장의 혜택을 못 받고 무시당한 마을들 측면에서 본 전후 일본 모습을 그린 “운이 없는 일본 사람 3부작)”( <단토 마을 마을회의사록>, (신판 상속법 개요>, <고금 쓰쿠바 환영>)을 통하여 일본이 오늘날 번영의 대가로 버린 것들을 주제로 거기에 가려진 사회적 모순을 들추어냄 과 동시에 모순을 알면서도 안이하게 번영을 쫓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사회 밑바닥과 벽지에서 본 일본 사회를 그린 희극적인 작품으로 주목받아 왔다. 미국의 극작가 닐 사이먼의 희극에 담긴 메시지가 "울지 않기 위해 웃자!”라면 후지타 덴의 희극은 "화내봤자 소용없으니 웃어넘기자!”라는 특유의 해학성이 큰 매력이라 하겠다.

 

 

 

 

후지타 덴(藤田傳)

1932년 오이타 현(大分県)출생.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후지타 덴은 1951년 니혼대학교 예술학부 연극학과를 2년 반 다니다가, 당시 유행처럼 학교를 중퇴하고, 본격적인 연극 활동을 시작하였다. <후지와라 가극단>, <신쿄극단(新協劇団)> 등을 거쳐, 1963년 신극 전문 극단인 <하이유자(俳侵座)소극장>에 입단하여 1965년 <류큐처분(琉球処分>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하였다. 1971년〈하이유자 소극장>의 해체로 방송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1980년에 요코 하마 방송영화 전문학교에서 만난 젊은 배우들과 〈극단1980>을 창단하였다. 1997년부터 영화 시나리오와 감독 활동을 시작으로 창작활동의 폭을 넓히면서 독자적인 일본론을 작품으로 전개하면서 의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작품

1958년 (귀무귀도(鬼無舰)>

1961년 <일본서푼짜리 오페라〉

1965년 <쓰투기가사키〉

19T기년 (흑염불 살인사건〉

1985년 (노적귀적>

1997년 영화 <대왕생>각본, 감독

2011년 <만담연극,버스정류장>

수상경력

1966년 <쓰투기가사키> 예술제 장려상 수상.

192년 (흑염불 살인사건〉(극단1980) 예술제 우수상 수상. 1902년 (앞서가는 죽음> 마이니치신문 베스트 5 1995년 <행로사방인고>> 제29회 기노쿠니이 연극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