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장이의 축일'이 축제적인 분위기로 런던의 어두운 면을 덮고 런던을 옹호하고자 했던 대표적인 도시희극이라면, '동쪽으로'는 런던의 속물주의와 부도덕한 무질서를 통렬하게 조롱하고 풍자한다. 제임스1세 즉위 직후인 1605년 여름, 사설극장인 블랙-프라이어스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그 풍자적 특성으로 인해 공연 직후 두 작가가 투옥되기까지 했다. 이는 극 중 스코틀랜드인에 대한 조롱이 고향인 스코틀랜드인들을 중용하고 기사 작위를 매직했던 제임스 1세에 대한 모독으로 비춰졌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세 작가 중 두 명이 구속되어 귀와 코가 잘릴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 작품 속 현실 풍자가 통렬했던 것이다. '동쪽으로'는 토머스 데커, 존 웹스터(John Webster)가 몇 달 먼저 발표 한 '서쪽으로'에 대한 응답이었는데, '서쪽으로'의 인기에 편승하기 위해 세 명이나 되는 작가들이 합작해 불과 몇 달 만에 급하게 집필한 작품이다. 협업이 일상화된 당시에도 세 명의 협업, 그것도 조지 채프먼(Geroge Chapman), 벤 존슨(Ben Jonson), 존 마스턴(John Marston)이라는 명망 있는 세 작가들의 협업은 이례적이었는데. 아마도 '서쪽으로'의 인기가 식기 전에 '동쪽으로'를 내놓아야 하는 상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지 채프먼, 벤 존슨, 존 마스턴은 성향과 스타일이 아주 대조적인 작가들이었기에 어느 작가가 어느 부분을 썼는지에 대한 논란이 분분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들은 작품 속에서 세 작가가 분업한 부분을 가려내는 것이 어렵고 세 작가가 각자의 장점을 살려 공동으로 집필했다고 본다.
세 작가 중 가장 연장자인 조지 채프먼(1559?〜1634)은 고전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현학적인 드라마를 주로 쓴 작가인데,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귀족 후원자를 갈망하면서도 풍자적인 작품 활동으로 인해 권력과 잦은 마찰을 빚은 작가이기도 하다. 반면에 벤 존슨(1572 추정〜1637)은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이 시기를 대표하는 극작가로서 "볼포네'(1605), '이피신느'(1609), '연금술사'(1610)와 같은 대표적인 도시희극을 집필했다. 그는 도시희극 외에도 왕실을 위해 많은 궁정 가면극을 집필했고 이로 인해 사실상 최초의 '계관시인'이란 평가를 받을 만큼 왕실후원을 받기도 했다. 반면에 존 마스턴 (1576-1634)은 이 들 중 유일하게 옥스퍼드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작가로 신랄한 풍자가 주특기여서 '동쪽으로'에서 문제가 됐던 스코틀랜드인 풍자 부분도 마스턴이 썼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신랄한 풍자로 인해 여러 번 고초를 겪고 제임스 1세의 분노를 산 후 마스턴은 극작을 포기하고 돌연히 성직자가 되었다. 특히 벤 존슨과 존 마스턴은 1599년에서 1602년 사이 세 극작가들{벤 존슨, 존 마스턴. 토머스 데커) 사이에 벌어진 '극장 전쟁'의 당사자들로서 드라마를 통해 서로를 비꼬고 조롱했으나, '동쪽으로'에서는 나란히 집필한 동업자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세 작가는 각기 다른 스타일과 특성을 갖고 있으나 '동쪽으로'는 어느 부분이 누구의 저작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유기적인 합작에 성공한 작품이다. '동쪽으로'에서 채프먼의 현 학과 벤 존슨의 자기주장, 마스턴의 신랄함이 서로 조율되고 견제되어 협업을 통해 오히려 각 작가의 개별 작품을 능가하는 수작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쪽으로'는 크게 세 개의 플롯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터치스톤의 두 딸이 각각 결혼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그린 결혼 플롯, 시큐러티를 중심으로 하는 오쟁이 지기(외도하는 아내를 둔 남편) 플롯, 퀵실버를 중심으로 하는 '돌아온 탕아' 플롯이다. 이들 세 플롯은 서로 얽히고 연결되어 있는데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금세공사 터치스톤이다. 터치스톤은 '구두장이의 축일'의 사이먼 에어처럼 중산층의 윤리와 자부심으로 무장한 인물인데, 에어보다 훨씬 엄격한 도덕률로 작품 속 도덕적 중심을 잡는다. 그러나 에어가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품 속의 세계를 축제적으로 만드는 데 비해, 터치스톤이 극 속에서 하는 역할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터치스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이 극이 중산층을 찬양하는지 비판하는지. 또한 런던을 옹호하는지 풍자하는지가 달라지는 것이다.
사실 주인공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구두장이의 축일'과 '동쪽으로'는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 '구두장이의 축일'이 생필품인 구두를 생산하는 일터와 그곳에서의 건전한 노동윤리를 고취했다면, '동쪽으로'는 사치품을 다루는 금세공업자와 부도덕한 고리대금업자를 다룬다. 두 작품이 초기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에 각각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이다. 또한 '구두장이의 축일' 속의 로맨스가 낭만적인 것으로 포장된다면, '동쪽으로'의 로맨스는 철저하게 신분 상승과 경제적 이윤 추구로 점철 된다. 이미 결혼한 부부의 경우에도 '구두장이의 축일' 속 에어 부부가 희극적이지만 동반자적인 부부애를 보이는 것에 비해, '동쪽으로'의 시큐러티 부부와 페트러늘 부부는 서로 속고 속이며 각자의 욕망을 추구한다. 또한 '구두장이의 축일'이 주인과 도제 간의 상호 신뢰와 존중을 지향한다면 '동쪽으로' 속 주인과 도제는 적나라한 계급 갈등을 노출한다. 즉 '구두장이의 축일'이 런던을 긍정적으로 그리며 옹호했다면, '동쪽으로'는 런던을 풍자하고 조롱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동쪽으로'에서 풍자와 조롱을 읽어낸 것은 1930년대에 들어와 서이고, 그 이전 수 세기 동안 '동쪽으로'는 보수적이고 도덕적인 극으로 해석되었다. 터치스톤은 중산층의 도덕률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극의 도덕 적중심이 되고, 그의 큰딸 거트루드는 신분상승의 욕망에 사로잡혀 중산층의 윤리를 저버려 불행해지며, 작은 딸 밀드레드는 근면 성실과 분수를 지키는 중산충의 미덕을 실천하여 사회적 성공까지 이룬다. 이와 같은 대조는 두 도제 골딩과 퀵실버에서도 일어나는데 퀵실버가 도제의 신분에 맞지 않는 방탕과 사치를 일삼다가 일자리를 잃고 사기 치다 감옥까지 간다면, 다른 도제 골딩은 분수에 맞게 처신하고 근면 성실하게 의무를 수행한 덕에 주인집 딸 밀드레드와 혼인하고 런던 관리로 출세까지 하게 된다. 즉 '동쪽으로'는 중산층의 미덕을 미화하는 극으로서 중산층의 가치와 윤리가 인물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고 그의 사회적 성공마저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마지막 부분에서 퀵실버와 거트루드의 참회는 터치스톤으로 대표되는 중산충의 도덕률을 인준해주는 장치로서, '돌아온 탕아'인 두 사람은 터치스톤의 중산층 가치를 받아들이면서 터치스톤의 용서를 받고 극 끝의 화합에 합류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보수적인 해석은 20세기 들어와서 흔들리고, 오히려 '동쪽으로'를 중산층의 가치에 대한 패러디와 풍자로 읽는 것이 대세를 이루었다. 우선 중산충의 미덕을 대표하는 터치스톤과 골딩의 도덕적 훈화와 설교가 극 중에서 지루하게 제시되면서 오히려 풍자의 대상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골딩에서 두드러지는데. 이름부터가 골드(Gold)나 골든(Golden)이 아니라 골딩(Golding, 영어에서 ~ing는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어미이다)인 그는 청혼이건 공무이건 시종일관 지루하고 형식적이며 거창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그 과장됨으로 인해 풍자의 대상이 된다. 골딩 못지않게 이 극에서 조롱당하는 사람이 터치스톤인데, 터치스톤에 대한 조롱은 마지막 퀵실버의 참회에서 절정에 이룬다. 퀵실버와 페트러늘 경의 참회는 매우 길게 묘사되어서 이 극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기도 한데, 여기서 퀵실버의 참회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풍자의 장치가 너무나 많다. 일단 이름부터가 퀵실버(Quicksilver. 변화무쌍한 성질을 가진 수은) 이어서 극중 그의 언행은 늘 변화무쌍한 변신을 거듭하는 바, 마지막 장의 참회 역시 또 다른 변화를 위한 연기로 보인다. 게다가 당대의 인기 있는 장르였던 사형수의 고백 발라드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석방되고 나서도 죄수복을 고집하는 퀵실버의 언행은 그 과장과 과잉으로 인해 오히려 조롱과 풍자를 의심케 한다. 그렇다면 시금석이라는 의미의 터치스톤 (시금석은 보석과 합금의 진위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을 뜻한다)이 여기 속아 넘어가는 것은 그가 이름과 달리 진위를 판별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터치스톤을 통렬하게 속여 다시 총애 받는 도제로 돌아가는 퀵실버의 행보는 터치스톤이 그토록 강조했던 중산층 윤리에 대한 조롱과 비판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자면 마지막 장면의 주인공은 가부장적 중산층 터치스톤이 아니라 그를 멋지게 속여 넘기는 퀵실버이고, '동쪽으로'는 중산층의 미덕을 찬양하는 극이 아니라 중산층의 한계를 조롱하고 풍자하는 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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