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와 관습 (1930) 작품해설
이 작품의 집필 초기에 브레히트는 중국 원잡극(元雜劇) 『합한삼(合汗衫)』의 불어 번역본을 번안할 계획이었으나 점차 독자적인 창작으로 전환, 중국 작품의 흔적은 미미한 정도에 머물게 되었다. 작풍의 전반부에서는 주중 관계를 이루는 독일인 상인과 '쿨리의 여행 장면과 상인에 의한 살인이 다루어지고, 후반부는 상인의 유죄 여부를 판결하는 재판 장면이다. 원래 교육극으로 쓰인 이 희곡은 형식면에서 교육극과 공연극의 중간 형태를 보여주며, 실제로는 관객을 전제하는 공연으로 무대에 올려지는 것이 상례이다. 관객을 향한 서언(Prolog) 과 발문(Epilog)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에 의혹을 가지라는 내용으로, 이른바 소격(소외) 기법을 연상시킨다. 연기자들이 보여주는 모든 사건과 인간관계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변화 가능한 영역으로 간주하라는 것이다. 여행 이야기는 연기와 논평을 동시에 내포한 서사적 사건으로 묘사된다.
상인은 사업상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길잡이와 쿨리를 무자비하게 독촉하고 심지어 길잡이에게 쿨리를 구타하도록 강요한다. 두 고용인의 결탁이 두려운 나머지 상인은 길잡이를 해고한 채 강도가 출몰하고 인가가 없는 사막 길로 짐꾼 쿨리를 물고 간다. 석유사업을 놓치지 않으려는 욕심에서 그는 헤엄을 칠 줄 모르는 쿨리에게 홍수가 난 강을 건너도록 권총으로 협박하며, 결국 물속에 들어간 쿨리는 팔에 부상을 입는다. 상인은 증인이 없는 이 지역에서 쿨리가 자기를 제거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의혹의 눈으로 쳐다본다. 식수가 떨어져 갈 무렵, 상인은 몰래 자신의 수통 에서 물을 마시고 쿨리 역시 길잡이가 예비로 건네준 물을 마신다. 쿨리는 자신만 살고 주인이 갈증으로 죽을 경우 오해와 처벌을 받을 게 두려워 예비 수통을 상인에게 주려한다. 그러나 상인은 쿨리가 돌로 자기를 쳐 죽이려 한다고 오인한 나머지 그를 사살한다. 후반부에서 이 살인사건은 쿨리의 미망인의 고소로 재판에 회부된 다. 길잡이의 중언에 의해 상인은 무방비 상태의 선량한 쿨리를 죽였음이 밝혀진다. 그러나 편파적인 재판부는 당시 상황에서 쿨리가 상인을 증오하여 죽이려 했다고 가정하는 것이 상인으로서는 필연적인 귀결이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다. 상인은 쿨리가 예외적인 인간임을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마실 물을 적이 주리라고, 이성이 있는 자는 기대하지 않으니까.” 예외를 기대하는 자는 바보요, 관습(규범)은 “눈에는 눈으로”라는 것이다. 쿨리는 선행과 인간애를 실천한 결과 스스로 해를 입었으니 이것은 그가 ‘늑대의 도덕'이 지배하는 현실을 모른 채 '인간이 인간의 구조 자'라고 오해한 탓이었다.
상인과 쿨리는 주인과 하인의 관계를 상징한다. 그들은 상호 의존관계에 있으나 대립을 화해로 해소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서는 안 된다. 피 착취자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규범이자 관습이며, 톨스토이의 단편 「주인과 하인」이 보여주듯이 주인이 하층계급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예외일 뿐이다. 「예외와 관습」은 독단을 내포한 교육 극만으로 공연하거나 사실적으로 연기할 성질의 작품이 아니라 변증법적 아이러니와 기지를 지닌 토론 자료이며, 후기의 민중극 「푼틸라 나리와 그의 종 마티」를 예고한 작품으로도 볼 수 있다. 상인은 본시 악한 인간이 아니라 항상 상황에 따라, 자신이 속한 계급에 맞게 행동한다. 따라서 관객은 주종의 인간관계를 불변의 것이 아닌 변화 가능한 것으로 보아야 하며, 예외적이고 일시적인 인간애보다는 상황 자체의 변혁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작가가 의도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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