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대사>는 1919년 3월 《신청년》제6권 3호에 발표되었던 작품으로 작품의 앞부분과 뒷부분에는 작가의 서(序)와 발(践)이 붙어 있다. 이 작품은 원래 친구들과의 약속에 따라 영문으로 썼던 것인데 뒤에 다시 중국어로 옮긴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작품은 현대 희곡이 중국에 정착되던 초창기에 나온 작품이다. 극본에서는 중산층 가정의 한 외동딸 전아매가 혼인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집을 떠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유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매는 결혼을 앞둔 상태에서 오랫동안 함께 지내던 친구 진선생을 결혼상대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인 전씨부인은 점괘에서 나온 나쁜 결과만 믿고 두 사람의 결합을 반대한다. 결국 그는 부모들이 밥을 먹는 틈을 타서 메모 한 장을 남겨놓고 집을 나간다.
이 작품의 시대배경은 오사운동이 전개되던 시기의 전후이다. 내용은 짤막하지만 봉건주의를 반대하는 주제는 아주 선명하며 또한 입센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작품은 이 이후로 나온 사회문제극 창작과 공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작가서문)
며칠 전 미국에서 유학하던 몇 몇 친구들이 와서 말하기를 북경의 미국 대학 동창회에서 얼마 있다가 하나의 연회를 열게 되었다고 하였다. 중국의 회원들이 그날 저녁에 하나의 짤막한 연극을 공연하고자 하는데, 나더러 하루 만에 영문으로 짧은 극본을 하나 써서 그들이 연습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내가 무리하게 대답하고 다음날 이 단막극을 써서 그들에게 주었다. 뒤에 그들은 여자 배역을 찾지 못해 이 연극을 공연할 수가 없었다. 생각지도 않게 내 친구 봅스 선생이 이 극본을 보고 가져가서는 (북경도보(北京導報)〉의 주간인 조덕인(신德仁) 선생에게 보라고 주었다. 조 선생은 이 극본을 꼭 싣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뒤에 한 여학당에서 이 연극을 연습하겠다고 해서 나는 다시 그것을 중문으로 번역을 하였다. 이런 연극을 서양말로는 Farce라고 하는데, 이를 번역하면 유희적인 희극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내가 처음으로 이런 놀이를 쓴 것이니, 여러 친구들께서는 비웃지 말았으면 한다.
작가의 글
이 극은 몇 명의 여학생들이 공연을 하려고 하기에 내가 이것을 중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뒤에 이 극에 나오는 전아매가 남자를 따라 도망을 쳤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감히 그 누구도 이 역을 맡고자 하는 사람이 없었다. 더구나 여 학당에서 이런 부도덕한 연극을 올리기에는 불편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원고가 다시 돌아왔다. 이런 점이 나의 이 연극의 큰 결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늘 사실주의를 제창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오늘 날 나의 이 연극을 감히 공연할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분명 사실 적인 작품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사실주의에 맞지도 않는 연극은 원래부터 아무런 가치도 없었던 것이니, 그저 나의 친구 고일함에게 보내 '신청년'(문학잡지이름)의 공백이나 메울 수밖에 없다.
작가소개
호적(1891~1962)의 원명은 호홍성(胡洪幹)으로 자는 적지(適之)이다. 필명으로 천풍(天風), 장휘(蔬陣), 철아(鐵兒) 등을 썼다. 어려서 서당에서 공부하다가, 14살 때 상해로 가서 공부를 하였다. 1910년에 미국유학을 갔다. 처음에는 농학을 공부하다가 뒤에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였다. 1917년에 콜롬비아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같은 해에 귀국하였다. 북경대학 교수와 교장을 역임하였고 또 국민당 정부에 의해 미국으로 가서 대사를 역임하였다. 1962년 대만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호적은 일찍이 백화문을 제창하고 신문화 운동과 신문학 혁명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는 1917년 1월에<문학개량추이>를 발표하여 문학에 있어서 피해야 할 여덟 가지를 언급한 “팔불주의(八不主義)”를 제기하였다. 뒤에 그는 또<역사의 문학 관념론>과<건설적인 문학 혁명론>등을 발표하였는데, 이런 글들은 당시 상당히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또 신시(新詩)를 개척하고 실천한 사람이었다. 1920년 에는 최초의 신 시집(新詩集) 《상시집(誉試集)》을 출판하였다. 1922년에는《노력주간》과《독서잡지》를 창간하여 ''문제는 좀 많이 연구하고 주의(主義)는 좀 적게 이야기 하자”고 주장하고,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중국에 전파되는 것을 반대하였다. 뒤에는 또 《국학계간》과《현대평론》을 출판하였다. 1926년에는 구미 각국을 돌면서 강연을 하였다. 1928년에는 서지마와 함께 월간 《신월(新月)》을 출 판하였다. 만년에는《수경주<水經注)》판본을 고증하는데 주력하였다. 주요 저작으로 《호적문존{胡適文存)》, 《중국철학대강》, 《백화문학史》, 《대동원의 철학》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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