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배달을 하는 소녀가 잠긴 문을 열고 우유를 놓고 가려다 여인이 죽은 것을 알고 경찰에 전화를 건다. 형사는 소녀가 그 여인의 집 열쇠를 갖고 있다는 점과, 아무 꺼리낌없이 열고 들어갔다는 것을 이유로 소녀에게 혐의를 둔다. 소녀는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고 부정한다. 그 집에는 아침마다 "신문과 우유는 문 앞에 놓아 두십시요."라는 팻말이 걸려있으며, 우유 대금도 보급소로 우송되기에 소녀는 호기심에 집주인을 만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팻말이 걸려있지 않아서 소녀는 벨을 눌렀고, 안에서 들어오라는 말이 들렸으나 문은 잠겨 있다. 여인은 소녀에게 열쇠가 도어 위 창문 구석에 있다고 말한다. 소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그녀는 소녀에게 기다렸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은 죽을지 모르니까 항상 지나가다가 벨에 응답이 없거든 곧 열고 들어오라고 한다. 형사는 소녀의 이야기를 믿지 않으며, "그 여인의 신탁예금 수혜자 명의가 네 이름으로 변경되었다."며 자백하라고 한다. 소녀는 서로 사랑했다고 한다. 여인은 늘 문을 잠그고 조용히 누어,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사내1의 집요한 설득과 위협에 저항한다. 계속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견디다 못해 여인이 수화기를 들면 탁하고 낮은 사내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끊으면 계속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고문처럼 여인를 괴롭힌다. 여인이 전화를 받자, 사내1은 "왜 어리석게 혼자서 손을 씻으려하냐?"고, "왜 파멸을 택하냐?"고, "우리가 찾아가기 전에 선택을 하라."고 한다.
그후 벨소리가 나고 소녀가 우유를 배달하러 온다. 여인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내가 있는데, 자신이 그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소녀에게 말한다. 여인은 언젠가 이 방에서 자신의 시체가 발견되면 장미나무 한 그루를 구해서 무덤 위에 심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때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소녀가 수화기를 들자 킬킬대는 사내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소녀는 형사에게 전화벨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고 한다. 형사는 들리지도 않는 전화벨 소리를 소녀가 들린다고 하자, 소녀가 미친척한다고 생각한다. 소녀는 이 소리가 언젠가 불현 듯 들려오기 시작할 때가 있다면서 누구에게나 들려온다고 한다. 소녀는 여인이 늘 그 소리에 쫓기고 있었다며, 여인의 죽음은 아마 그 소리가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형사는 믿지 않으며, 여전히 소녀가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형사가 유도심문을 하자, 소녀는 그 여인이 어떤 사내와 침대에 함께 누어있는 것을 보고 배신감 때문에 그녀를 죽이려 했었다고 한다. 여인은 소녀를 기다리기 위해 사내를 유혹하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한다. 여인과 침대에 같이 누워있던 사내는, 사내1의 명령을 받고 여인를 죽이러 온 사내2였다. 형사는 소녀에게 왜 살해 대상이 사내가 아닌 여인이었냐고 묻는다. 소녀는 자신을 배신한 것은 여인이라고 대답한다. 형사가 어떻게 죽였냐고 묻자, 소녀는 살의를 품었지만 죽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형사는 소녀의 빰을 때리며, 존재하지도 않는 두 사내를 꾸며내 혐의를 벗어나려 한다고 한다. 그러자 소녀는 여인을 죽이려고 그녀의 집에 갔었다고 한다. 여인은 등을 돌린 채 보조의자에 앉아, 소녀를 기다렸다고 하며 자신을 죽여달라고 한다. 그 사내가 미웠다고 소녀가 여인에게 말하자, 여인은 그 남자(사내2)는 명령을 수행하지 않고 갔지만, 자기를 죽이기 위해 찾아올 사내는 얼마든지 있다고 한다. 여인은 자신이 오늘밤 안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한다. "사인 불명"이라는 검시 결과가 통보된다. 형사는 두 여인의 아리숭한 이야기를 자신의 통속적인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두 여인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때 전화벨 소리가 들리고 저음의 사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작가의 말//이현화(李鉉和)
벨은 울리고 있어요.
우물안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전화를 받아 보세요.(1978. 10. 17)
유민영의 평
오늘의 연극상황을 사적입장(史的立場)에서 보면 동양극장(東洋劇場) 시대 이후의 제2의 대중극시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전체적인 분위기나 연극의식의 면에서는 동양극장(東洋劇場) 시대보다 크게 앞서지도 못한다. 동양극장인(東洋劇場人)들이 비록 세계 연극사조에 어둡고 리얼리즘 이상의 연극형태는 몰랐어도 민중에 대한 깊은 사고바탕위에서 연극을 했기 때문에 대중의 공감을 크게 사고, 또 연극사에 그런대로 업적을 남길 수가 있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창작극을 통해서였다. 이처럼 창작극은 한 나라 연극의 기본줄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극단 '쎄실극장'이 역사는 일천하지만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연극사에 기여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극단 '쎄실극장'이 기획한 창작극시리즈가 바로 그것이다. 전년도의<날개>(이상(李箱) 작)에 이어 또 다시 신예 이현화(李鉉和)의<안개>를 무대에 올리는 것은 분명히 요즘 연극풍토에 빠져들지 않고 견실한 연극을 해보려는 젊은 극단(劇團)의 모험찬 배전(排戰)이다. 따라서 이런 극단 '쎄실극장'이 창작극시리즈를 시도하는데는 네가지 각도에서 작업을 진행해야 될 것이다. 창작희곡이 풍부하지 못한 우리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다각적 공격과 저인망 작전이 필요하다. 첫째, 소설작품의 각색공연이다. 연극보다는 문학이 발달한 우리 예술사에서 걸작으로 꼽힐 만한 소설들을 하나하나 극화해서 무대에 올리는 일이다. 이것은 극작가들에게 자극을 주어 창작의욕을 돋굴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연극사를 풍부하게도 할 것이다. 아직까지 이런 작업을 끈질기게 진행한 극단이 없다. 두번째로는 미발견희곡(未發見戱曲) 캐내기 작업이다. 이를테면 김우진(金祐鎭)이라든가 김정진(金井鎭), 박승희(朴勝喜), 채만식(蔡萬植) 등이 쓴 희곡을 연극으로 만들어 올리는 일이다. 토월회(土月會)가 견실한 극단으로 성장하지 못한 이유중의 하나는 대표 박승희(朴勝喜)의 작품만 공연하고 다른 작가의 작품을 발굴하지 않은 데에도 있다. 이 작업은 언제 어느 극단이든가 꼭 해야 될 일이다. 세번째로는 이미 무대에 올려진 작품이라 하더라도 다시 이 시대에 맞도록 새롭게 해석을 가하고, 새로운 감각으로 재조명하는 작업이다. 오영진(吳泳鎭)의 작품이라든가 임희재(任熙宰) 등등 수많은 작가들의 희곡이 많다. 그리고 네번째로는 근자 문예지(文藝誌)에 발표되는 새로운 희곡들을 과감하게 취택하여 공연하는 일이다. 최근 서너 사람의 창작가(創作家)들이 좋은 희곡을 발표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닌가. 이상과 같이 네가지 각도에서 창작극(創作劇)시리즈 계획을 진행시켜 간다면 적어도 작품난만은 겪지 않을 것이고, 우리 연극계에도 크게 기여하리라 확신한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현화 '불가불가' (1) | 2016.10.19 |
---|---|
이현화 '쉬-쉬-쉬-잇' (1) | 2016.10.19 |
이현화 '산 씻 김' (1) | 2016.10.19 |
이현화 '요한을 찾습니다' (1) | 2016.10.19 |
이현화 '라마 사박다니' (1) | 2016.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