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현화 '불가불가'

clint 2016. 10. 19. 12:43

 

 

 

‘불가불(不可不), 가(可)’와 ‘불가(不可),불가(不可)’, 즉 허가의 의미와 불허의 의미가 공존한다. 따라서 듣는 이의 해석여하에 따라 찬성의 의사로도, 반대의 의사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나타내다. 모호함이 주는 독특한 매력이 우리의 감각을 자극한다.

 

어떤 연극의 무대 연습장- 총연습에 열중하던 무대위에서 전혀 뜻밖의 돌발사가 발생한다. 사건인즉, 극중 장군역을 맡은 신인 배우가 상식적으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그것도 여하한 적대감정도 일 수 없는 선배 배우를 극중 소품으로 내려 친 것이다. 심한 증오와 지극히 격렬하고도 잔인한 방법으로. 그러나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른다. 단지 총연습과정에서 보여지는 우리 역사의 편린들과 그 흐름의 콤마마다 발돋음해 가는 그 신인배우의 심리추이를 짚어 어떤 긍정을 추출해 볼 따름이다.

 

 

 

 
<불가불가>는 불가불 가(可)라는 뜻인지, 절대적으로 불가(不可)하다는 의사표명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호도의 언술이다. 주제는 중요한 역사적 전환기에 그렇게 자기를 얼버무린 약은 인물들에 대한 단죄에 있지만 그 단죄형식이 과거의 역사에 대한 재현과 현실적인 무대 위의 연극연습이라는 이중적으로 짜여진 진행방식 때문에 고전적 극작술로 봐서는 파격적인 형식이 되는 것이다. 무대는 처음부터 열려 있다. 대체로 역사물의 경우 닫힌 형식이 주조를 이루는 경향 가운데서 열린 상황은 관객들을 당혹하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역사물은 현실을 딛고 있는 연극인들의 역사적 재현이라는 의미에서 현대물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 열린 방식은 타당한 연극적 도입이라고 할 수가 있다.
현실의 연기자들이 극장무대 위에서 시연을 해나가고 관객들은 그 열린 무대를 마주하며 오히려 닫힌 의식으로 무대를 본다. 언제 조명이 꺼지고 어둠 속에서 연극이 진행될 것인가…. 그러나 무대는 현실이기 때문에 조명은 꺼지지 않은 채 과거가 재현된다. 연기자들은 그들대로 현실을 주절대고 머리를 빗고 옷을 입어 보고 소도구들을 챙기며 그들이 재현시켜야 할 역사의 어느 고비를 연습한다. 장면은 백제의 멸망, 계백 장군의 출진 장면이며, 그 아내는 자결이라는 긴박한 순간인데 그에 대비되는 역사의 현장은 조선조의 말기, 역사의 주역들은 가, 불가(可, 不可)의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역사의 의인이 되느냐, 반역자가 되느냐 하는 그 갈림길에서 역사를 얼버무리는 자는 어쩌면 반역자보다 더 불의스럽다.
 
 

 

우리는 그런 역사의 현장에 있다. 어쩌면 우리 관객들 자신이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며 가능하면 그 선택의 순간을 우물쭈물 발뺌하려 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자기 자신을 위시해서 관객들에게 똑같이 벌어지는 상황의 되풀이를 통해 자기를 확대하고 관객을 학대한다. 이런 되풀이되는 장면의 설정은 이른바 점층법의 수법으로 우리를, 내지는 역사를 의식화시키는 수법이다. 이현화의 세계가 탁월한 것은 그 치밀한 계산법 때문이고 그것은 억제되고 세련된 과학적 방법이라서 그런 공부가 모자란 다른 극작가의 우연의 연속 수법에 비해 특히 두드러지는 명암으로 우리의 연극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반복의 계산법으로 우리의 의식에 못을 박는 새디스틱한 연출력은 채윤일의 특기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작가와 연출가의 뛰어난 콤비플레이가 만들어내는 창조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불가불가」에서 작가와 관객은 모두 '동일시'라는 하나의 테두리 안에 묶여 있다.
작가는 「불가불가」에서 자신의 동일화인 '배우1'을 극중 극 인물인 '역사의 충신'에 다시 동일화시킴으로서 작가 자신이 '역사의 충신'이 되는 이중의 '동일시'를 보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가불가」를 보는 관객은 먼저 극중 극의 관객, 즉 '구경꾼'으로 동일시되고 다시 '배우5', 즉 '역사의 기회주의자'로 동일시되는 삼중의 '동일시'가 이루어진다. 즉, '배우1'은 '작가'의 동일화이고 '배우5'는 '관객'의 동일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불가불가」속에서 '배우1'은 '배우5'를 칼로 잔인하게 찔러 단죄한다.
글의 서두에서 필자는 「불가불가」를 '동일시'라는 '구성과 기법의 한 방법'을 주제화하고 그 주제로서 더 커다란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희곡」으로 이해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고 했다. 여기서의 '더 커다란 주제'가 바로 이 장면에 있다.
국민의 뜻에 따라서, 또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택해야 할 정당을 자신의 이익에 따라 이리 저리 바꾸는 정치인들, 바뀌어 가는 권력의 이동에 여기에 뇌물 주고 저기에 뇌물 주며 이익을 기대하는 기업인들, 권력의 그림자에 숨어 인권을 유린하는 숨은 범죄자들... 이렇듯 '자신을 얼버무려 잇속만을 챙기는 기회주의자' 들은 역사 속에만 존재하지 않고 현실세계 에도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불가불가」에서 일반적으로 현실세계의 '기회주의자'라고 인식되어지는 위와 같은 이들을 단죄하지 않았다. 그가 단죄한 것은 바로 우리들, 즉 '관객'이었다. '연출'의 마지막 대사 "당신들 뭐요? 빨리 나가요!!"에서 볼 수 있듯 연극「불가불가」라는 가상 속에서만이 아닌 현실 속으로 튕겨져 나온 이야기에서의 '단죄'로써 현실의 관객, 즉 '우리'를 단죄한 것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언제나 변함 없이 [불가(不可)]도 [불가불(不可不), 가(可)]도 [불가(不可), 불가(不可)]도 아닌 애매한 태도로 [불가불가(不可不可)]를 되뇌며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소외시켜 방관자적 입장에 머무르고 마는 우리들... 자칭 "역사의 주역들"이라 칭하지만 '역사의 구경꾼들'에 불과한 우리들…, 상황에 따라서 자기들의 임의대로 규정하여 "관객, 백성, 민중, 인민, 국민"으로 부르는 우리 보통사람들…, 작가는 우리 모두를 단죄하고 있다.
 
 

 

작가의 말
역사에 있어서 가정은 금물이란다. 허나 우리 역사의 흐름에는 한번 쯤 가정을 해 봄직한 수많은 꺽임목들이 있다. 그리고 그 꺽임목엔 의외로 단 한 사람의 성품내지는 치세관이 중차대한 신호수가 되어 왔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많은 민초들의 흐름이 단 한 사람의 자세에 의해서- 과연 그 신호수들의 당시 의식은 어떠했을까? 한 번 그 역사관의 심층을 들추어 제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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