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의 신작 삶 3'은 먼저 '삶'이라는 화두가 눈길을 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삶은 경험되어 드러나는 삶이 아니다. 그저 대비라는 기교를 통해 전시되는 삶이다. 작가는 동일한 모티프의 변형인 3장의 삶의 그림을 내보인다. 각 막은 동일한 상황에 놓인 동일한 등장인물의 똑같은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렇게 반복되는 극 모티프에서 달라지는 것은 등장인물의 성격뿐이다. 이 차이가 각 막의 톤과 전개와 결말을 달리 이끌도록 짜여져 있다.

1막은 삶의 코미디 버전이다. 어느 저녁, 헨리와 소냐의 집 거실. 칭얼대는 아이에게 초콜릿을 주느냐 마느냐를 놓고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가운데, 허버트와 그의 아내 이네스가 들이닥친다. 천체물리학 연구소 상관인 허버트 부부를 초청해 놓고, 헨리는 그것이 다음날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헨리가 진급을 위해 오랬동안 별려온 저녁 모임이 아무런 준비 없이 엉성하게 시작된다. 헨리는 진급의 키를 쥐고 있는 허버트의 심기에 거슬리지 않으려 안절부절하는데, 아이는 제방에서 연신 칭얼대며 운다. 이때 허버트가 현재 헨리가 준비중인 논문과 유사한 논문을 최근 한 학술잡지에서 읽었다고 이야기하자 헨리는 낙담한다.
한편 이네스는 스타킹 올이 나간데다가 배는 고프고, 남편이 사사건건 말을 막고 무시하자 이 어처구없는 파티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다. 모든 것이 무능한 헨리 탓이라며 아내를 진정시키는 허버트. 공교롭게 이 말을 소냐가 듣고, 사정도 모르는 채 허버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쓰는 헨리를 보다 못한 소냐는 급기야 허버트의 말을 옮겨버린다. 처음부터 엉망이었던 파티 분위기는 완전히 굳어버리고, 헨리는 떠나려는 허버트에게 자신이 비굴해 보이냐고 묻는다. 허버트는 조금은 그래 보인다며 황급히 떠난다. 여전히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2막은 삶의 통속극 버전. 동일한 무대, 동일한 상황. 헨리는 자학적이며 공격적인 스타일이다. 유사한 논문을 보았다는 허버트의 말에 자신은 이제 쓸모없는 과학자라고 자괴한다. 이네스가 헨리와 함께 아이를 보러간 사이 허버트는 헨리의 승진을 미끼로 소냐를 유혹한다. 이때 이네스가 둘이 포옹하는 것을 보고 저녁 내내 과음한다. 취한 이네스는 허버트가 헨리를 무능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말하고, 헨리는 이에 격분하여 허버트에게 욕설을 퍼붓고는 이들 부부를 집에서 내몰아버린다. 쫓겨나면서도 허버트는 소냐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을 잊지 않는다.

3막은 삶의 일상 버전. 다시 동일한 상황. 헨리는 유사한 주제의 논문에 대한 허버트의 지적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 이때 한 친구가 전화로 문제의 논문은 헨리의 것과 다른 방법론에 의거한 것으로 헨리의 연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기별해주고 모두 이를 기뻐한다. 이네스는 헨리와 소냐에게 허버트가 최근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지명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주고 모두 허버트의 영전을 축하한다. 파티는 즐겁게 끝나고 허버트는 헨리의 진급을 위해 힘쓸 것을 약속한다. 아이는 울지 않고 아이 방에서는 카세트의 노랫소리만이 나직이 흘러나온다.
우리에게 다소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그녀가 현재 전세계 무대에서 가장 많이 올려지는 프랑스 작가라면 관심의 도는 달라지지 않을까?
40대 초반의 배우 출신 작가 레자는 지난 10년 동안 '겨울 지나기(1990)', '예술(1994)', '우연히 만나 남자(1995)' 그리고 '삶 3'을 발표하는 동안 두 차례나 몰리에르 상, 로렌스 올리비에 상, 토니 상 등을 수상하며 일약 국제적 작가로 부상했다.
이번에 새로 발표한 신작 '삶 3'은 2000년 10월 29일 빈의 버그 테아터에서 뤽 봉디의 연출로 초연된 것을 비롯하여, 파리 앙투완 극장, 아테네의 브로드웨이 극장, 런던 내셔널 시어터에서 잇달아 올려졌다.

야스미나 레자
반은 이란인, 반은 러시아인인 유대계 엔지니어와 소련의 독재를 피해 온 헝가리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사이에서 1959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범세계적이고 예술적인 환경에서 자란 그녀는 파리 근교 낭테르에서 연극과 사회학을 공부했으며, 자크 르코크 국제연극학교에서 수학하기도 했다. 누보로망의 선구자인 나탈리 사로트의 영향으로 희곡을 쓰기 시작해서, 1987년 [매장 후의 대화]로 몰리에르 상을 받고 1995년 [아트(Art)]로 다시 이 상을 수상했다. [아트]는 현재 15개 언어로 번역되어 35개 나라에서 공연되고 있다. 해외 수상 경력으로는 1997년 [아트]로 로런스 올리비에 상을, 1987년과 2009년에는 각각 [매장 후의 대화]와 [살육의 신]으로 토니 상을, 2005년에는 그녀의 전 작품에 대해 '디 벨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야스미나 레자는 희곡 외에 시, 소설, 수필, 시나리오 등을 쓰기도 하는데, 1999년 발표한 그녀의 첫 번째 소설 [비탄]은 모놀로그 형태를 띤다. 시나리오로는 [밤까지](1983), [내일 만나요](1991)와 [룰루 크로이츠의 피크닉] 등이 있다.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배우, 연출가,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야스미나 레자는 [밤까지], [내일 만나요], [멀리서] 등에 배우로 참여했으며, 2008년에는 자신이 쓴 희곡 [살육의 신]을 직접 연출하고, 2009년에는 [스페인 연극]을 [치카스]라는 제목의 영화로 직접 각색·감독하여 2010년 3월 개봉할 예정이다. 2006년에는 니콜라 사르코지의 대통령 선거운동을 취재해 [새벽, 저녁 혹은 밤]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매장 후의 대화], [아트], [스페인 연극] 등을 통해 그녀의 주된 작품 경향을 살펴보면, 작가는 일상의 평범한 사건들 속에서 인생에 대한 사유를 이끌어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가족 간의 이해와 소통의 부족, 그로 인한 고독의 문제를 통해 현대사회에서의 개인들의 소외와 고독을 이야기한다. 또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세월과 함께 변화할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자체도 변질되고 쇠락한다는 무상성을 이야기한다. 문체상의 특성으로 작가는 주로 구어체를 사용해 일상의 대화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자 하며, 생략법을 사용한 대화는 여운을 남기고 때로는 모호한 채로 남아 있어 누보로망의 영향을 느끼게 한다.

반은 이란인, 반은 러시아인인 유대계 엔지니어와 소련의 독재를 피해 온 헝가리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사이에서 1959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범세계적이고 예술적인 환경에서 자란 그녀는 파리 근교 낭테르에서 연극과 사회학을 공부했으며, 자크 르코크 국제연극학교에서 수학하기도 했다. 누보로망의 선구자인 나탈리 사로트의 영향으로 희곡을 쓰기 시작해서, 1987년 [매장 후의 대화]로 몰리에르 상을 받고 1995년 [아트(Art)]로 다시 이 상을 수상했다. [아트]는 현재 15개 언어로 번역되어 35개 나라에서 공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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