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와바라가 창단한 극단 KAKUTA의 활동을 통해 행보를 살펴보면, 작품의 특징은 치밀한 플롯과 대사, 기묘한 캐스트와 앙상블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높은 완성도를 지향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모습과 동시에 근원적인 감정 전달을 심도 있게 그린다. 일상과 근접하면서도 다른 세상을 키워드로, 때로는 기발한 무대 배경을 전재하면서 이야기를 현실 상황에 비추기보다는 연극만이 구현할 수 있는 비일상적 감각과 유쾌한 오락적 요소가 담긴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한 작품에서 다각도의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과 더불어 공연 장소 또한, 극장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간에서 공연을 올린다. 놀이동산 전체를 빌려서 동시다발적으로 공연한 <문 라이트 코스터>(2004)를 올리거나 플라네타륨 안에 무대를 만든 <만천의 밤>(2006) 등 실험적 연극을 선보여 신선한 기획 요소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호평받았다. 특히 구와바라는 내러티브를 선호하여 기본적으로는 일반적인 대사극이지만 오소독스 한 기법과 치밀한 스타일 그리고 자유분방한 발상으로 작품마다 관객을 다른 세계로 끌어당기는 매력으로 화제를 모은다. 제목에서도 다각도의 주제를 구현하는 작가의 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슬립(SLIP>>의 원제목은 〈오텐(往知)〉으로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담기위해 구와바라가 만든 조어이다. 사전에도 없는 조어를 만든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넘어지다’라는 의미의 '전복'에 해당하는 일본어는 '횡전'이라 쓰고, ‘오텐'이라고 발음한다. 넘어진 후 일어나 다시 어디론가 간다는 '갈 왕(往)'과 '갈 행(行)'은 같은 의미로 등장인물들이 '어디론가 간다' 또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사라져 간다.”는 의미, 그리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간다."는 의미가 있다. '버스가 옆으로 굴러 전복된다.'는 '횡전'의 의미와 '돌고 돌아서 어디론가 떠나가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담아 만들었다. 이런 의미를 한국 관객에게도 그대로 전달하고자 제목을 <슬립>으로 정했다.
또한, 그녀는 제목에 여러 의미를 담아 관객이 다양한 상상력을 펼치는 것을 좋아해서 종종 중의적 의미가 담긴 제목을 짓는다고 덧붙였다. 일본어의 음독과 훈독은 듣기에 따라서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데 이 점이 일본어의 복잡하고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특히 2015년 제18회 쓰루야난보쿠 희곡상을 받은 <흔적>도 한자로 써놓고 '나중에'라는 의미인 '아토아토'로 표기하여 발표하였다. 흔적은 일반적으로 읽으면 과거를 연상하는 단어인데 훈독으로는 미래를 의미하는 단어가 되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슬립>의 전체 줄거리는 어느 여름날 심야 고속버스에 탑승한 세 쌍의 남녀와 운전사를 중심으로 4개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진행된다. 각기 다른 인물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여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해고당한 남자와 한때 그의 애인이었던 여자. 여자는 모친의 유언에 따라 형제에게 유골을 나눠주기 위한 여정을 떠나고, 남자도 이 여정에 동참하게 되는 <언체인 마이 하트>, 쌍둥이 형제가 운영하는 복숭아 농원에 형의 약혼자라는 여자가 나타나서 곤란해진 동생. 여자의 신분과 형의 사연이 서서히 밝혀지는 <복숭아>, 이층집에서 뛰어내려 입원한 여자가 기면 중 상태에서 깨어나 같은 병실의 남자로부터 위로받고 서로 마음을 열어가는 〈살고 싶다/가고 싶다〉, 아들의 친구와 우연히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 그와 같은 목적지를 향하는 중년 여인을 그린 <전복>으로 사고 전후의 시간을 넘나들면서, 인물 각자가 품고 있는 고민과 갈등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내는 형식으로 기존의 희곡과 사뭇 다르게 전개된다. 태풍으로 인해 산길에서 심야버스가 전복된 사고가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온 인물들을 연결해주는 하나의 중심사건이 된다. 사고로 살아남은 등장인물들은 사고 후 일상으로 돌아와 의외의 공간에서 재회하거나 기묘한 인연으로 연결된다. 사고 직후 응급실로 이송된 버스 기사 안노 이치로는 간호사 오이카와 하나코와 환자와 간호사의 관계로 만나게 된다. 하나코는 또한, 안노 이치로가 운전한 버스에 탑승했다가 숨진 야마다 이쓰키의 옛 애인이다. 간호사는 이쓰키의 장례에서 이쓰키의 약혼자 쓰가와 아사코와 만난다. 구와바라는 이런 설정을 통해 단편적이면서도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방식으로 버스에 탑승한 승객의 다양한 인생과 일상을 그려낸다. 약혼자의 동생에게 얹혀서 사는 쓰가와 아사코가 복숭아 수확 일을 도우며 지내던 중 장례로 방문한 이쓰키의 옛 여자 친구와 동생 하루키의 사이를 질투하여 방금 수확한 복숭아를 던지는 장면은 우연과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의 미묘한 심리상태, 특히 복잡하게 흔들리는 여심을 시각화하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도쿄신문 2011년 11월 15일 참조)

사고 후 생존자와 사망자가 확실하게 언급되지 않은 채로, 극은 긴박감을 주면서 결말까지 진행된다. 특히 하기타 노부코의 일화 <언체인 마이 하트>에서는 이러한 인간관계 안에서 드러나는 미묘한 여성의 심리를 눈여겨볼 수 있다. 노부코가 병간호하던 모친의 사망 후에 유언에 따라 형제들에게 유골을 나누어 주기 위해 버스에 오르면서 이 관계에 관한 서사가 진행된다. 해고당한 옛 애인, 이시가미 고로와 동행하는 동안 보이는 감정을 절제하려는 대사, 여행 도중 고로를 되돌려 보내 죽음을 면하게 하는 노부코의 심정과 작품 전반에 면밀하게 직조된 리얼리티 그리고 웃음을 유발하는 상황 등의 밸런스가 백미이다.
이런 방식의 작법을 구사하는 구와바라는 '그랜드 호텔 형식'의 작가로 불린다. 즉 하나의 공통된 사건을 중심에 두고 그 안에서 생기는 몇 가지 평행 관계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극을 구상한다. 공장- 식당- 호텔 등 각기 다른 공간을 한 무대 공간에 설치하여 다양한 인간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이러한 '군상극'을 여러 차례 발표해 왔다.
여러 가지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군상극에서는 어떤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우정이 싹트기도 하고,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등, 하나의 이야기에서 파생되는 일은 비극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옴니버스 형식의 서사 안에서도 전하는 메시지는 한 지점으로 모인다는 것이다. 또한, 구와바라는 사람과의 관계에 관해서 누군가에게는 악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인 것처럼 관점을 바꾸면 끝은 곧 시작될 수 있다는 의식을 늘 갖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이 작품은 다각도의 관점을 통해 하나의 비극이 '돌고 돌아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우리는, 살아가는 자들은 찬탄'한다.
구와바라는 2010년 미국 유타 주에서 일본인 관광객이 탑승한 버스가 전복된 사고 뉴스를 접한 게 계기가 되어, 2011년 1월에 이 극을 집필했다고 한다. 센다이를 작품배경으로 설정한 것에 대해, 그녀는 대지진의 참사를 염두에 뒀다기보다 그저 조모님이 살고 있기에 센다이를 배경으로 떠올렸다고 한다. 이러한 집필 배경을 살펴봤을 때, 대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후쿠시마와 가까운 센다이가 극의 배경이 된 것은 우연한 일치이다. 실제 공연은 지진 이후에 진행되어, 연출가의 의견을 참고 해 3. 11 동일본 대지진을 의식하면서 대사에 조금 반영하였다고 술회하였다. 당시 지진을 의식하지 않고서는 일상생활이 불가했으므로, 연출가 입장에서 지진 사태를 작품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터
이다. 그런 시각에서 대본을 읽어보면 원자력 발전소사고 이후 일본의 상황과 기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집필한 장본인조차도 그것을 신기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무모한 운전으로 버스가 전복되어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를 발생시킨 사고는 대지진과 원전사고를 직면한 일본을 암유하고 있다.

구와바라 유코
1976년 도쿄 출생. 일본에서 현재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성 극작가 중 한 명.
20년을 맞은 극단 KAKLTTA를 만 스무 살 때 창단하여 현재까지 극단 대표를 있다.
극단 공연의 희곡(극작)과 연출은 물론 배우로서 전 작품에 출연.
2007년 〈달콤한 언덕〉으로 기시다쿠니오 희곡상 후보에 오르면서 연극계에서 웰메이드 작풍으로 주목받기 시작, 2009년 이 직품으로 제64회 문화청예술제 신인상을 수상.
2011년 발표한 〈슬립(SLIP)〉은 제15회 쓰투야난보쿠 희곡상 그리고 2007년에 이어 제56회 기시다쿠니오 희곡상에 두 번째로 후보에 올랐고 2015년 <흔적> 으로 제18회 쓰투야난보쿠 희곡상을 수상.
연극뿐만 아니라 영화 〈사람을 탑승하다〉(2014)와 NHK TV 드라마 <중학생 일기> (2006)를 비롯하여 미디어 작가로서도 활발히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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