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주인공인 목사는 혈육인 노파의 죽음으로 오갈데 없어진 눈먼 소녀 제르트뤼드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목사는 제르트뤼드를 달가워 하지 않는 아내에게 분노를 느끼며, 자신이 제르트뤼드를 챙겨주고 보살펴주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사랑'을 실천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어느날 목사는 자신의 아들인 자크가 제르트뤼드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낀다. 아내인 아밀리의 말에도 목사는 제르트뤼드에 대한 사랑이 이성에 대한 사랑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 때 제르트뤼드는 목사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목사는 제르트뤼드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사랑에 나쁜 것이란 없다'며 다시 자신의 사랑을 합리화하고 그것이 죄라고 꾸짖는 자신의 도덕성을 외면한다.
하지만 제르트뤼드가 개안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눈을 뜨게 되면서 그들은 잘못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제르트뤼드가 눈을 뜨면서 깨달은 것은 그들의 사랑이 명백한 '죄'라는 것이었다. 제목인<전원 교향악>처럼 세상이 아름다운 줄로만 알았던 제르트뤼드는 새로운 빛을 얻음으로써 또다른 빛을 잃어버렸다.
<전원 교향악>의 목사는 제르트뤼드에 대한 자신의 부정不貞한 사랑을 종교적 도덕성으로 포장해 스스로 옳다고 믿는다. 작품 내에서 기독교 신앙이 그리스도의 말이 아니라 성 바울의 해석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비판하는 목사이지만, 그리스도의 말을 자신의 식으로 해석하는 모순을 저지른다. 스스로의 모순을 깨닫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제르트뤼드에 대한 사랑을 지속하려는 모습은 갸륵하기까지 하지만 마냥 안타깝게만 볼 수는 없는 현실이다. 반면에 제르트뤼드는 눈을 뜨고 자신이 원하던 사람이 목사가 아닌 자크라는 것을 알게 되고 고통스러워한다.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건 자신이지만 과연 그 판단이 정말 옳은 양심에서 나온 것인지는 자신이 더 잘 안다. 문제는 그것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전원 교향악의 세계에서 눈이 먼 채로 서 있던 목사는 제르트뤼드가 떠남과 동시에 무너져내린다.
작가소개
Gide는 법학교수인 아버지와 프로테스탄트인 엄격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1세에 아버지를 여읜 그는 편모 슬하에서 세심하면서도 많은 구속이 뒤따르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는 한편, 병약했던 까닭에 대부분의 수업을 가정교사 밑에서 쌓았다. 그의 문학에의 취미가 적극적으로 표현된 것은 Mallarme의<화요회>에 출입하면서 동인지를 편집하고 문인들과 교제하면서부터이다.
그는 1891년에 처녀작인 「Les Chaiers d'Andre Walter」와, Symbolisme 미학에 대한 모색과 그것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한 「Traite du Narcisse」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청년기의 불안과 정신적 고뇌의 갈등이 점철되어 있는 그의 초기작들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22세때 폐결핵으로 인해 요양차 떠난 아프리카 여행은 그에게 자연에 눈뜨게 함으로써 태양과 같은 타오르는 생명력과 관능을 찬미하게 되는 정신의 전환기를 가져다 준다. 「Les Nourritures terrestres」(1897)는 그와 같은 전환의 소산으로, 기성의 도덕과 질서에 대한 도전과 욕망의 충족에 대한 추구를 보여 준다. 그러나 Gide는 육체와 정신의 해방과 자유를 생각함과 동시에 구속과 절제의 필요성을 또한 자각하고 있었던 까닭에 「L'Immoraliste」(1902)에서는 욕망의 한없는 추구에서 오는 정신의 타락과 파멸을, 그리고 「La Porte etroite」(1909), 「La Symphonie pastorale」(1919)과 같은 작품에서는 자기 통제의 고귀성과 한계, 그 필요성을 그림으로써 작가의 양면성을 보여 주게 된다.
이후, 그는 내면의 갈등에서 좀더 객관적 세계로 탐구의 방향을 돌리고 소설 형식에 있어서도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로 산출된 것이 바로 「Les Faux-Monnayeurs」(1926)인데, Gide 자신이 그 이전의 작품들은<RECIT>나<SOTI>라고 부른 것과는 달리 처음으로<ROMAN>이라고 부른 이 작품은 소설 창작의 과정 자체가 줄거리를 이루어 가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소설을 시도함으로써 소설에 새로운 전개를 가지고 온다. 그는 다시 아프리카로 떠나 그곳에서의 체험을 토대로 냉혹한 식민정책을 규탄하는 「Voyage au Congo」(1927)를 발표하는데 이것을 기점으로 사회 참여와 행동의 시기가 전재괸다. 그는 Malraux와 함께 세계평화 회의, 반독재 운동 등에 가담하면서 점차 코뮈니즘으로 기우나, 소련의 방문을 계기로 또다시 기만과 노예정치의 탄압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Retour de l'U.R.S.S.」(1936)를 통하여 고발한다. 그러나 정치적인 참여와 더불어 그는 창작생활의 공백기를 맞이하게 되며, 말년에 이르러 그의 사상적 유언이라 할 만한 「Interview imaginaires」(1943), 「Thesee」(1946)를 발표하고 1947년 노벨상을 수상한다. 이러한 모든 편력을 통하여 그는 전통적인 종교와 모랄의 구속과 타율성을 거부하고 진정한 모랄의 탐색을 위한 고통스럽고 충실한 작업을 통하여 새로운 정신적 풍토를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1919년에 발표된 「La Symphonie pastorale」은 한 눈 먼 소녀를 기르면서 자신의 신분과 의무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애정을 떨쳐 보릴 수 없어 번민하는 목사를 통해 일체의 허위나 안이성을 배제하기 위한 극기와<성실성 sincerite>의 문제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