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블라지미르 마야꼬프스끼 '빈대'

clint 2016. 2. 13. 18:32

 

 

 

 

작가서문

이것은 5막 9장으로 구성된 몽상적 코미디입니다. 나는 스스로 희극작가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가공되어 도입된 재료는 평범한 사실들과 여러 분야에서 내가 느끼고 겪은 것, 그리고 계속되는 신문기사들과 사회, 정치평론들, 특히 「꼼소몰 쁘라브다」(공산 청년동맹)지에 실렸던 것들입니다. 개별적으로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이러한 사실들을 나는 희극의 두 중심인물로 압축시키고 재구성하였습니다. 멋을 내기 위해 자기 성을 삐예르 스끄리쁘낀으로 바꾼 전직 노동자이며, 최근 약혼한 남자 주인공 쁘리스이쁘낀과 전 집주인 출신으로 선천적인 아첨꾼인 올레끄 바얀이 그들입니다. 신문에서는 내 희극이 정치, 사회 평론으로 대단한 문제작이며, 경향성을 띠고 있다고 평하였습니다. 문제는 현대인의 속물근성에 대한 폭로입니다. 나는 이전에 쓰여 진 보편적인 형태의 희극들과는 완전히 다르게 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어려움이 따랐는데 이는 사실들을 효과 있고 흥미로운 연극 언어로 옮긴다는 것이었습니다. 각 장들의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쁘리스이쁘낀과 바얀은 레네산스 아주머니의 돈으로 곧 있을 아름다운 결혼식을 위한 고급 햄, 고급 마개의 병 등 무엇이든지 고급만을 사들인다.

2. 기숙사에 있는 젊은이들은 어려운 참호 생활에서 도망친 쁘리스이쁘낀을 비난하고, 그를 사랑했던 조야 베료즈끼나의 권총자살 후 대소동과 함께 자기들의 계급에서 유리되어가는 약혼자를 내쫓아버린다.

3. 전차들이 호적 등록과에 모여든다. 거기에서 화려한 결혼식이 거행된다. 쁘리스이쁘낀과 엘제비라 레네산스와의 결혼. 그녀는 전에 쁘리스이쁘낀의 발톱을 다듬어 주던 매니큐어 사였다.

4. 화재로 모든 등장인물이 죽는다.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구의 시체도 발견하지 못하였고 이로 미루어 모두 타서 오그라든 것 같다. 결론 동무들 그리고 시민여러분! 보드카는 독물입니다. 술 취한 사람들이 공화국을 함부로 방화하는 법입니다. 깜박 드는 잠이 화재의 원인이 됩니다. 잠잘 때는 나드손이나 자로프(농촌출신 시인) 책을 읽지 마십시오.

5. 재건하고 문화를 위해 투쟁하는 데 50년이 지난다. 오그라든 시체는 다 타지 않았다. 불에 탄 '쁘리스이쁘낀'이 물탱크에서 완전하게 냉동되어 옛날 술 창고였던 곳에서 발견되었다. 전 소비에트 연방의 기계적인 투표에 의해 쁘리스이쁘낀을 소생시키기로 결정한다. 보드카로 영양분을 취하고 있는 녹아 가고 있는 포유류에 대한 - 최근 뉴스는 다음과 같다.

6. 포유류는 1928년 형태의 벽 위로 기어 다니는 예쁘고 통통하게 살찐 빈대와 함께 녹아내리고 있다. '자동차들'과 이전의 땀보프 지방이 있던 곳의 여러 가지 것들로 쁘리스이쁘낀은 심한 충격을 받는다. 그는 자살을 시도했던 - 지금은 건강해졌지만 - 거의 50년쯤 늙어버린 조야 베료즈끼나의 손에 쓰러진다.

7. 탐방 기자는 도시를 전염시키고 있는 격렬한 전염병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쁘리스이쁘낀에게 문화적 시차를 극복하는 고통을 덜어 주기위해 '맥주'를 만들어주던 노동자들은 어느 날 우연히 실험용 알콜에 의해 심한 충격을 받고 대거 병원에 입원한다. 쁘리스이쁘낀이 살던 집에 있던 개들조차도 아첨하는 미생물에 감염되어 짖지도, 달려들지도 않고 그저 뒷발로 서서 '구걸'만 하고 있다. 여자애들에 대해선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로맨틱한 사랑에 폭 빠졌다. 도시에서는 '클로푸스 노르말리스' (빈대)라는 미중유의 곤충에 대한 사냥이 전개되었는데 우연히, 하얀 벽에 검은 점으로 있는 것이 발견된다. 오랜 추적 끝에 동물원장의 손궤에 그것을 가두게 된다.

8. 쁘리스이쁘낀을 미래의 인간으로 만들려는 모든 시도는 놀랍게도 실패한다. 의사들은 이 술 냄새 나는 존재를 거절하고 있다. 축축한 보드카의 삶에 익숙해진 이 존재에게는 유리의 깨끗함이 혐오스럽다. 그를 건조시키려고 자신을 녹이려는 것에 대해 그는 항의한다. 그는 무솔리니의 「유형지에서 온 편지」와 같이 자기에게 제공되는 책 종류의 오락물을 집어던진다. 낙담한 그는 보통의 짐승 같은 환경에서 싱싱하게 얻을 수 있는 곤충을 먹고, 매일같이 물어뜯을 수 있는 사람 모양의 존재를 찾을 수 있는 동물원의 광고를 볼 때만 기분이 좋아진다. 베료즈끼나조차도 50년 전 이런 가치 없는 존재 때문에 자신이 자살하려 했다는 것에 대해 놀란다.

9. 동물원을 열자 도시 사람들이 몰려든다. 갈려진 대로 포획과 투쟁의 고충에 두 전시물의 우리가 열린다. - '클로푸스 노르말리스'가 하마터면 '호모사피엔스'(인간)로 여겨질 뻔했다. 그것도 인간의 가장 고등 형태인 노동자로 여겨질 뻔했다. 쁘리스이쁘낀은 비슷한 연구를 통해 사람이 아닌 단순한 '아브이바텔리우스 불가리스'(난생동물)로 밝혀졌다. 동물원장은 모인 도시의 지도자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고 '사람 모양의 매너와 언어'라는 자신이 준비한 농담을 한다. 쁘리스이쁘낀은 어쩔줄 모르는 야만적인 기쁨으로 갑자기 관객석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혼자 갇혀 있다는 것이 화가 나, 자신을 꼭 닮은 관객들에게 우리 속에서 불분명한 소리를 지른다. 환각을 일으킨 쁘리스이쁘낀은 물론 우리에 갇히게 되고, 그의 마지막 말은 근무자들의 통풍 장치 속으로 흩어진다. "음악, 진군!” 이것이 막의 구상입니다.

 

 

 

희곡은(이것은 가벼운 풍자 작품입니다) 쓰여 졌습니다. 청중들과 또 희곡을 상연하게 될 사람들과의 첫 번째 만남, 즉 희곡을 위한 만남은 좋았습니다. 희곡 작품을 읽은 사람들은 '훌륭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내가 상상해서 쓴 희곡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희곡은 예술적인 명작이 아닙니다. 희곡이란 우리들 투쟁의 무기입니다. 많은 종사자들이 그것을 자주 연마해서 세련되게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연 전에 청년공산당 대 집회에서 희곡을 상연할 것이며, 만일 필요하다면 대본이나 상황의 수정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련되고 정제된 희곡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단지 하나의 구성 요소일 뿐입니다. 희곡이 관객에게 강한 영향력을 준다는 것은 배우들과 연출가, 무대종사 자들, 음악가들 등에 의해 배가되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영향력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베 에 메이에르홀드(연출가)가 얼마나 자신의 잠재 역량을 발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나는 그가 훌륭하게 활약해 줄 것을 확신합니다.

 

 

 

작품해설

 

미래주의자 시인 블라지미르 블라지미로비치 마야꼬프스끼 (1893 ~1930)의 「빈대」(1928)는 유토피아적 풍자희곡이라 할 수 있다. 2막으로 구성된 이 희곡의 제1막은 1928년을, 제2막은 1978년 즉 50년 후의 잘 정비된 공산주의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제1막은 현재, 제2막은 미래에 관한 것이며, 특히 제2막은 혁명과 삶의 재정비의 결과로 야기된 유토피아적 세계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독자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동물원 우리에 갇힌 쁘리스이쁘낀이 내뱉는 말인데, 이것은 마야꼬프스끼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나, 아직까지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설왕설래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야꼬프스끼의 이 메시지는 그가 제시한 이미지 속에서 약간은 잘못되고 있고, 또 이것은 마야꼬프스끼가 자신의 동시대인에게 던지는 풍자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즉, 쁘리스이쁘낀에 의해 상징되는 속물은 1920년대 후반 중산층으로서의 행복을 위해 혁명의 참호를 포기하는 보통 소비에트 사람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편으로는 이것은 마야꼬프스끼 자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마야꼬프스끼 스스로도 혁명적 문학을 위해 사랑의 서정시를 아무리 포기하려 해도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쁘리스이쁘낀은 그의 야만적인 태도로 인하여 미래의 합리적인 세계의 시민에게는 동물보다 별로 나은 게 없으며, 당시의 두 가지 커다란 적, 즉 삶이라는 것과 부르주아시스 불가리스(이것은 베드부구스 노르말리스와 연합해있다) 및 '소비에트 관료'라는 형태에 대한 풍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의 세계 자체도 스스로가 쁘리스이쁘낀의 일부분인 마야꼬프스끼에 의해 풍자적인 이미지로 제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기계적인 투표장치, 조직화된 집단 댄스, '사랑'에 대한 기록이 있는 고서적 찾기, 철근 콘크리트, 유리 등의 배경은 사실은 행복한 미래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블라지미르 마야꼬프스끼

1893-1930. 그루지야공화국 꾸따이스 지역 출생으로 20세기 최대 시인 중 하나이다. 1908년 볼셰비키에 가담, 1년여 사이에 세 차례나 투옥된 뒤 한때 미술을 공부하다 시로 전환해 「미래주의 선언」(1912)을 발표하면서 이 운동을 주도했다. 혁명기에는 그래픽 아트와 시를 이용해 선동 활동을 벌였다. 주요 작품으로 「바지 속의 구름」(1915), 「전쟁과 세계」(1916), 「1억 5천만」 (1919), 「사랑해」(1922), 「블라지미르 일라치 레닌」(1924), 「목소리를 다하여」(1930) 둥과 희곡 「빈대」(1928), 「목욕탕」(1930), 그리고 13편의 영화 시나리오가 있다. 1930년 자살했다.

 

 

 

 

 

<빈대>(1929년 초연)에서의 전방위적인 풍자는 소비에트의 관료체제를 불편하게 하여 1950년대에 가서야 재공연이 이루어진다. 물론 마야코프스키는 그보다 훨씬 이전인 1930년에 자살하므로 <빈대>와 <목욕탕> 두 편의 풍자극은 그의 창작의 종지부를 이룬다.

<빈대>에서 속물로 비판받는 주인공 ‘빈대’ 프리시프킨(쁘리스이쁘낀)이 한편으로 마야코프스키 자신의 초상이기도 하다면(자아비판의 대상이었던 마야코프스키는 자살한다!), <빈대>의 풍자는 마야코프스키의 자기 풍자이기도 하다. 그가 소비에트 사회의 풍자와 자기 풍자를 동시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건 그 자신이 혁명의 주체이면서 객체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의 드라마에선 모든 발화가 그의 말이며 자기 언급적이다. 마야코프스키는 그러한 자기언급성의 모순을 끝까지 온몸으로 밀고나가고자 했던 시인이며, 그의 풍자는 모순의 웅변술이었다. 작품 <빈대>에 대해 마야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내가 시와 포에마에서 다루었고, 플래카드와 선동 팸플릿에서 묘사했던 기본적인 테마의 연극적인 변형이다. 이것은 소시민 근성을 박멸하기 위한 투쟁의 테마이다.” 즉 그에게서 다양한 장르들은 기본 테마의 변형들일 뿐이다. 따라서 “소시민 근성을 박멸하기 위한 투쟁”은 대타(對他) 투쟁이면서 동시에 대자(對自) 투쟁이다. 그 투쟁의 핵심은 “나는 빈대이다”로 요약될 수 있다. 그리고 마야코프스키에게 있어서 ‘나’는 ‘전체’였다(<빈대>의 1막과 2막은 50년의 격차를 두고 있지만 연속적이다). 환유적 세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