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4년에 발표된 <죽음의 덫>은 1978년 개막된 초연무대를 통해
"절규와 웃음소리들이 뒤섞여 마치 환상적인 롤러 코스터를 탄 것처럼
유쾌한 히스테리를 이루고 있다"는 뉴스위크 지의 평가를 받았다.
레빈의 작품세계는 종교적 악마주의의 한 유형이라는 평도 있다.

"죽음의 덫"의 주인공은 한 때 성공했지만 이제는 망해가고 있는 극작가이다. 영국의 한적한 시골애 있는 커다란 집에서 사는데, 이 극작가는 최근작이 혹평을 받은 후 망해서 절망적인 상황이다. 결국 극작가는 옛 시절의 유복함을 되찾기 위해 비도덕적인 일마저 저지르리라 결심한다. 그리하여, 극작가는 표절, 살인, 속임수, 함정 등등이 얽힌 사건을 벌이는데, 사연은 간단하지가 않아서, 이 집을 무대로 이리저리 뒤집히는 난리가 난다.
이 작품의 이야기 내용을 보면, 신나는 저택 소극(笑劇, farce)을 하나 꾸밀 수 있을 법하다. 우선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이 벌어지고 사람들이 우당탕 거리며 오가는 액션도 벌어지는 2시간 가까운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내용 전체가 저택을 배경으로 한정되어 벌어진다. 사람들이 구사하는 대사들에는 언어유희도 좀 들어가 있고, 시적인 비유도 풍성하다. 그래서 대사의 수사법이 화려하고 사람들마다 말이 많은 편이다. 이런 건 만담풍으로 꾸미면 즐겁고 웃긴 재미거리가 될 수 있다. 엎치락 뒤치락하는 사연들과 오해와 속임수가 넘치는 구성은 점점 일이 커지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마침내 우당탕거리는 난장판 대소동으로 절정장면을 만들 수 있어 보인다. 실제로, 이 작품의 대사들엔 심각한 상황에서 의표를 찌르는 헛소리를 하는 농담들이 처음부터 자주 나온다. 그런데, 코미디풍의 저택 소극으로 꾸며져 있지 않은 것이다. 희극적인 웃기는 요소는 상당히 줄여 놓았고, 대신에 좀 더 살벌하고 냉랭한 분위기로
만들어 버렸다. 만담풍으로 꾸려지면 웃길만한 긴 대사들이 비극의 대사처럼 관념적인 고뇌하는 연기로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배우들의 표정과 동작에는 웃긴 과장보다는 정신병적인 감정이 들어가 있다. 음악은 차분한 장조 음악이 주로 쓰였다지만, 이 역시 밝고 발랄하다기보다는 음험한 느낌이 살짝 감도는 고전풍이 감돌도록 연주되었다. 그런 결과로 이 대사 속의 농담따먹기 대사가, 우울한 사람이 자포자기 심정으로 읊조리는 쓸쓸한 혼잣말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런 방향 설정 때문에 가장 성격이 크게 변화했을만한 인물은 극작가의 아내 역할이다. 그녀는 소심하고 겁이 많으면서 남편에게 의존적인 성격이다. 그리고, 실제로 심장이 약하고 감정 변화가 심해서 안정제를 먹고 사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약한 사람이 두사람의 팽팽하게 대결을 벌이는 것을 관찰하는 입장에 서있다. 그러다보니 이 인물은 그 긴장감과 아슬아슬함을 느끼고 강조해주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그녀는 소심한 성격을 특징으로 하면서도 고민과 생각을 겉으로 많이 표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선명한 감정 기복을 드러내고 말과 행동을 호들갑스럽게 해서, 이야기를 흥겹고 발랄하게 끌어가면서 웃음을 줄 수 있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이 "죽음의 덫"에서 마이라는 거의 안 웃긴다. 남편에 대한 의존이 심하고 초조한 마음도 도가 지나치다. 그래서 도덕관념이 혼란스러워졌고, 삶의 의지나 활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녀는 항상 집안에 틀어 박혀 지내며, 남편만 바라보며 심심하면 눈물을 글썽거리는 사람처럼 되어 있다. 이런 모습은 절망감에 가득차 슬퍼하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잘 드러난 편이다. 그래서 외롭고 세상에 소외되어 인간에게 기대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표현하기에 어울리는 장점이 있다. 그런고로, 매정하고 차가우며 비도덕적인 아귀다툼을 보여주는 이 작품 속에서, 그녀는 불쌍한 분위기를 잡아 주는 역할로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에 웃음을 줄이고, 반대로 어둡고 우울한 느낌을 깔아 넣은 결과는, 장단점으로 뚜렷하게 나뉜다. 우선 장점을 이야기해 보자면, 두 신구 극작가의 대결에서 긴장감이 잘 살아났다는 것이다. 이는 냉랭한 분위기로, 자비심과 죄책감 없는 매서운 인간들의 행태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다보니, 언제 어떻게 죽이려하고 죽임을 당할 것인가 하는 팽팽한 느낌이 계속 잘 유지되고 있다. 몇몇 장면에 정통파 공포영화 느낌도 있다. 그런 부분에선 조마조마한 느낌이나 공격하고 살기를 뿜는 파괴적인 느낌도 꽤 드러나는 편이다. 백미는 "뭔가 있는 거 같다"는 아내에게 극작가가 "아무것도 없다"면서 문을 하나 둘 열어 보이는 부분이다. 화면에서 서서히 문을 여는 동작을 보여주는데, 문이 열리면 뭔가 튀어나올것만 같은 느낌이 가득하여, 보는 재미를 준다. 인물들의 악의와 분노가 강하게 표현되었다는 점도 분위기를 어둡게한 소득이다. 정말 비극의 악당 같은 터져나오는 감정이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시드니의 비정함은 세 단계로 점차 심해지면서 묘사되어 꽤 그럴듯하다. 처음엔 조금 신경질적이고 꽤나 엄하고 냉소적인 극작가이다. 그러다가 점차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살인도 마다하지 않으려는 악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인간으로 묘사된다.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서면 이 인간은 파렴치하게 감정을 속이는 속임수를 쓰고, 죄책감이란 것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괴물같은 인간이 된다. 작품에서는 그 모습을 좀 과장하자면, 무슨 마귀 같이 변태스럽고 짜증스러운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 시드니보다도 더욱 연기가 빛나는 인물이 클리포드이다. 그는 키 큰 덩치에 늠늠한 턱이 사람 건실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워낙 강한 사람이라서 무슨 극우파 소년단 출신의 이상한 청년처럼 보일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사람이다. "죽음의 덫"에서 그런 모습에 자신의 날카로운 얼굴의 선을 강조해서 비치고 있다. 때문에 클리포드의 모습은 열정적인데가 있으면서도 광기가 서린 무시무시한 인상도 잘 드러난다. 마치 2차대전 영화 속의, 얼음장같은 나치 친위대 대원처럼 보이는 것이다. 시드니는 그냥 점점 나쁜놈으로 드러나는 인물을 연기해 준다. 그런데, 클리포드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입체적인 인물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이 인물은 비정상적인 정신나간 느낌이 강하다. 그 복잡한 괴물 역할을 그럴싸하게 그려내고 있다. 처음에 등장했을 때는 성실하고 순박한 모습이 강하다. 캔사스 시골 마을인, 스몰빌에서 온 재능많고 밝은 영농 후계자 청년인 듯 하다. 그러다가 시드니와의 대결 장면이 지나고 상황이 바뀌어 가면, 세상 무서운 줄 모르며 허무주의스러울 정도로 맛간 악랄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변화가 필요한 역이다. 멀쩡한 위선적인 겉모습 뒤에 그 비인간적인 모습을 감추고 있는 모습을 큰 과장이나 엉성한 부조화없이 보여준다. 이 작품의 대사들이 장황한 꾸밈말과 치장된 어투로 떠들어 대는 요란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런 넘쳐나는 긴 대사의 와중에서도 이렇게 이중적인 인간을 실감나게 보여준 것은 연기자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의 덫"에서 부족한 부분으로 드러나는 것은, 웃음을 줄인 결과 생긴 단점들이, 이상의 장점들 만큼 선명하다는 점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심각해 보일 수도 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결말이다. 이 작품은 저택에서 대소동이 일어나는 웃긴 코미디 소극으로 꾸몄다면, 현재 "죽음의 덫"과 같은 결말은 아쉬울 것이 없다. 이런 대소동에서는 딱히 무슨 복잡한 풀이나 기막힌 결론이 없어도 된다. 그냥 점점 꼬여간 정도가 심각해져서 사태가 최악으로 치달은 그 엉망진창인 상황만 보여주면 된다.
"죽음의 덫"은 처음엔 한국 인문학계의 주특기인 "스승이 제자 작품 훔치기"로 시작합니다. 이 정도면 가벼운 편이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면 서너명이 죽음의 위기에 이르는 난장판이 된다. 코미디 소극이라면, 이렇게 난장판이 된 모습만 보여주면서 웃긴 음악 깔며 막을 내리면 충분하다. 특히 이 작품은 도중에 등장하는 연극 대본이 이 작품 자체의 내용이기도 하다는 기묘한 소재가 곁들여져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액자 구조에서 이야기 속의 이야기와 원래 이야기가 관련을 짓고 있다. 그래서 그 묘하고 혼란스러운 꼬인 느낌은 좋은 바탕이 되어 준다. 그러니 코미디의 결말다운 난장판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히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은 반면 뭔가 심각한 분위기로 바뀌어 있다. 사태의 전말을 다루는 결론을 보여줄 듯이 내용이 흘러갔다. 그리하여 팽팽한 대결 속에서 누가 이기는지 조마조마하게 보여주려는 분위기이다. 어지간한 파국이나 왠만한 반전이 아니고서야 좋은 결말로 충격을 남기기 부족하다. 멋지게 복선을 사용하는 것이 하나 있어서 나름대로 이상하게 재미 없을 정도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 복선 역시 코미디스러운 가볍고 경쾌한 활용일 뿐 이다. 그래서 사태의 핵심과 직결된 장엄한 소재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저런 이유로, 전체적으로 이 작품의 후반부와 결말은 매끄러운 마무리에는 못미친 듯 보인다.

대사 속에 스며들어 있는 농담들이, 신나고 웃긴 농담으로 잘 살아나지 못한 것도 아쉽다. 냉소적인 블랙코메디 분위기가 되어 군데군데 분위기를 잡아 주고 있긴 하다. 그래서 그냥 날아간 것은 아니다. 충분히 이야기에 도움은 된다. 하지만, 그래도 실생활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긴긴 대사들을 읊조리고 있으니까, 뭔가 좀 더 흥겨운 만담풍의 농담따먹기가 잘 살아날 기회도 분명히 엿보인다. 그런 이상한 대사들을 늘어 놓으며, 사람들이 자신의 본심을 숨긴채 서로 상대방을 속여 넘기려 하는 게 이 작품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런 꼬인 상황과 얽힌 오해들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웃음들을 분명히 넣을 수 있었다. 물론 "죽음의 덫"과 같은 분위기에 그런식으로 어처구니 없어지는 웃음들을 넣으면 영 어색했을 것이지만, 작품의 포스터를 보나 결말이나 도입부를 보나, 어딘가에 좀 더 블랙 코메디의 비중은 확대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두 주인공의 대결과 중심 갈등을 제외하면 인물들이 좀 고정관념에서 헤메고 있는 것도 아쉽다. 가장 손해가 큰 인물은 중요한 조연인 무당 할머니이다. 무당 할머니는 나름대로 이야기의 복선과 결말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다. 그런데, 딱히 기괴하지도 않고, 딱히 개성적이지도 않다. 그냥 억양과 무당 할머니라는 단조로운 컴퓨터 게임 등장 인물 같을 뿐이다. 대소동 코미디였다면, 이런 할머니가 사이사이에 활약하면서 재미난 웃음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무거운 분위기에서는 지나치게 단순한 희화화된 인물이 좀 안어울린다. 마찬가지로 주인공들 역시 악한 모습의 긴장감이 풍부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늙은 극작가, 젊은 제자 기타등등의 고정관념에 젖어 있을 뿐 인간적인 여러가지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진 못한다. 결말 장면은 공포영화 장면처럼 무서운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표현방식은 공포 영화에서 사용하는 강렬한 절정장면 수법이다. 번개치는 상황과 전기가 나간 어두운 실내, 촛불하나로 으슥하게 밝히고 사방을 둘러 보는 모습 등등이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런 가운데, 번개가 칠 때마다 화면의 사람들이 보이고, 어두울 때는 보이는 것 없이 말소리와 우당탕거리는 효과음만 들린다. 그런 장면이 속도감있게 버무려져서 보였다 안보였다하며 진행된다. 여기에는 처절한 싸움이 끼어 있어서, "지옥화"의 "이전투구"장면 같은 강한 느낌을 낸다. 중간중간을 보면, 지루한 연극처럼 길게 연결되는 장면들 와중에, 새로운 박진감 넘치게 확대되는 모습이 섞이는게 좋을 듯. 이런 류의 연출상의 기술들은 헐겁게 보이는 결말과 후반부를 최대한 재미있게 해 주려고 노력한 부분들이다.

연극계의 이야기이며, 연극 속의 연극을 다루기도 한다는 점, 이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인 극작가는 사상 최장기간 공연된 범죄연극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그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다. 재미있는 점은 아이라 레빈이 쓴 원작 연극 자체가 상연되었을 때 무척 인기를 끌었고, 결국 이 연극이 정말로 가장 길게 상연된 범죄연극 기록을 세웠다는 점이다. 극중 등장인물의 기록이 실제 극 자체로 인해 깨어진 것이다. 이 이야기엔 연극 속에 언급된 연극 대본이 있다. 그리고 그 대본을 연극으로 만든 것이 이 이야기 자체라고 이야기 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 소재를 생각해보면, 실제로, 이 연극이 현실 세계의 극장가에서 기록을 세웠다는 사실은 매우 기묘한 데가 있다.

아이라 레빈 (Ira Levin, 1929년 8월 27일 ~ 2007년 11월 12일)은 미국의 극작가이며 작곡가 겸 소설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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