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꿈의 연극'

clint 2016. 2. 10. 21:26

 

 

 

 

 

스웨덴의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표현주의 연극의 고전 『꿈의 연극(Dream Play)』은 무의식의 표현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현실적인 것 즉, 눈에 보이는 것만을 중요시하고 표현하려 했던 당시의 세태에 반기를 들고, 인간의 감성과 무의식을 중요시한 것이다.

꿈의 세계와 같은 무의식을 중요시하는 스트린드베리의 극작술은 20세기 초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이 나타나면서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꿈의 연극’은 말 그대로 꿈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스트린드베리가 꿈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은 꿈이 인간의 본성을 나타내는데 가장 가깝다
고 보았기 때문이다. 현실세계의 이미지와 반대되는 꿈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내면적인 것을 표현한 것이다.

 

 

 

<꿈의 연극>은 힌두교의 신 인드라의 딸인 아그네스가 인간세계에 내려와 인간의 일생을 체험하고 다시 신의 세계로 떠나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아그네스가 만나는 사람은 어머니에 대한 상처를 안고 있으며 또 애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장교, 사람들의 죄를 씻어주다가 그 죄에 찌들어버린 변호사, 진흙으로 목욕을 하는 구원을 바라는 시인 등 인간세상에서 고통 받는 다양한 군상들이다. 이들은 기괴한 이미지로 그려져 있으나 매우 보편적인 인물들이고 또한 인간의 삶 속에서 한번쯤 직면해야할 삶의 기로에 서 있다. 아그네스는 이들의 고난을 이해하고 보듬으며 또 비판하며 인간으로 한 평생을 체험한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이 작품은 인간세계를 한 편의 꿈의 세계를 펼쳐 보이듯이 꿈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표현주의적인 방식으로 형상화한다. 고전 텍스트의 단순한 답습이나 형식적 해체를 극복하여 고전에 대한 정통적 해석과 독창적 표현법을 연구하여 새로운 공연을 창조한다. 일상적 사실주의에 치우친 현재의 공연 형태를 반성하며, 20세기 현대예술 가운데 ‘표현주의’라는 예술양식에 대한 탐구를 통해 역사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동시대적인 의미를 재인식한다. 일반 관객들에게 고전 텍스트와 실험적 공연예술이 난해하거나 모호한 것이 아니라, 동시대적인 의미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공연을 창조한다. 특히, 청소년 및 젊은 관객층을 위한 고전 텍스트의 대중적 읽기를 유도하여 상상력을 높이고, “꿈”이라는 보편적 주제의 독창적 표현을 시도한다.
무대는 지구별을 상징하는 거대한 성의 이미지이다. 이를 난파선의 이미지를 추상화시켜놓은 것으로 성벽을 상징하는 커다란 돛 모양의 구조물들이 불규칙적으로 성벽 모양 으로 둘러싸 있는 디자인이다. 거대한 돛은 후면에 그림자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천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다양한 색상의 풋 라이트를 통해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투영할 수 있다. 프롤로그를 포함한 14개의 에피소드들이 지구상의 어느 한 인간의 작은 역사를 의미하는데, 전체로서는 한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색다른 공간으로의 변화를 줄 수 있는 공간 이미지가 중요하다. 중극장의 규모를 갖춘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효과적인 움직임과 조명의 활용을 바탕으로 18명의 배우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다.

 

 

 

신의 딸 아그네스가 구름을 잘못 타고 지구로 내려온다. 아그네스가 내려앉은 곳은 ‘매일 자라는 성’으로 표현되는 장교의 서재이다.
빅토리아는 남자의 사랑을 위해 존재할 뿐, 이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여자 문지기(지혜의 신)의 안내로 아그네스는 지상을 관측하는데, 여기서 아그네스는 스트린드베리이의 분신(장교)과 7년 만에 재회한다. ,그러나 그는 아그네스를 알아 보지 못 한다. 그는 이 지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이상적인 여인상 빅토리아만 찾는다. 아그네스는 현실과 몸 섞고 살기 위하여 스트린드베리이의 사회적 분신-변호사와 결혼을 한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궁핍과 소통 부재로 엉망이 된다. 아그네스에게 찾아온 사랑의 분신(장교)은 이 누추하고 궁핍한 현실을 떠나자고 한다. 아그네스는 장교와 함께 해안 요양소 스캄순드로 떠난다. 스캄순드 요양소를 지키고 있는 검역소장의 안내로 아그네스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만난다. 그들은 병든 부르주아(돈주앙, 은퇴자, 맹인 등)이거나 학대 받는 여자 노동자, 초대받지 못하는 처녀들, 광부들이다. 여기서 진흙 목욕을 하는 시인을 만나는데, 시인은 현실의 고통을 천상에 알리려 시를 쓰는 인간의 메신저이다. 아그네스는 지옥같은 해안 요양소를 떠나 시인과 함께 핀갈의 동굴로 피신한다. 여기서 시인은 인간의 불평을 신이 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해 줄 수 있느냐고 아그네스에게 묻고, 아그네스는 당신의 진실된 시로 공격하라고 말한다. 삶의 신비를 알기 위하여 정통파적 사고를 지닌 사람들(대법관, 신학자,법학자,의학자, 철학자)이 모였다. 유리장수가 등장하여 문을 열지만, 문 뒤에 숨겨져 있는 삶의 본질은 아무 것도 없다. 정통파적 사고를 지닌 사람들은 신을 의심하며 서로 싸운다.아그네스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시인의 삶에 대한 물음에
“나는 대답할 권리가 없어요. 당신들 스스로 찾으세요”라고 말한다. 아그네스는 현실에서 얻어 입은 옷가지들을 불에 태우고 죽음이란 과정을 통해 천상으로 돌아간다. “인간이 불쌍해요” 아그네스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스트린드베리 (Johan August Strindberg 1849-1912)
스트린드베리의 초기극은 낭만적인 역사극이었다. 그는 1884년 [인형의 집]에 대한 응답으로, 여성과 남성의 권리에 관한 서문을 첨부한 [결혼]이라는 제목의 두 편의 희곡을 썼다. 이로 인하여 그는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이후 그는 자연주의 희곡으로 간주되는 두 편의 희곡 - 아버지(1887)와 [미스 줄리](1888)를 쓴다. 그러나 이들 희곡에서 이미 스트린드베리가 나아갈, 실험적이고 표현주의적인 분위기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스트린드베리는 생애에 통산 62편의 희곡을 썼는데, 항상 자신의 주제에 맞는 새로운 형식을 모색하였으며, 이러한 작업을 통해 20세기 서구연극을 지배할 놀랄만한 많은 희곡 양식과 테크닉을 만들었다.
스트린드베리는 자연주의 학파에 대하여 예리한 분석을 하였는데, 졸라의 [테레즈 라켕]에 있어 테레즈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 것은 매우 독창적이나, 졸라는 지나치게 유전적 사고에 얽매여 있어 범죄자의 양심의 가책 속에서 단지 붕괴된 사회적 조화만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한 자연주의, 표면적인 사실주의를 비난했으며, 진실한 자연주의는 심각한 투쟁이 있는 곳의 자연스러운 갈등을 다루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를 위하여 그 스스로 성적인 관계, 의지의 심리적 갈등. 그리고 현재에 대한 과거의 관련 들을 다루었다. 그것은 심지어 카메라 렌즈의 먼지까지도 포함시키는 사진과 같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자연의 단면을 그려야 한다는 것에 묶인 잘못 이해된 자연주의이다. 위대한 자연주의는 당신이 매일 보지 못하는, 우리가 사랑과 증오, 반항 또는 사회적 본능이라고 부르는 그 자연스러운 힘 사이의 투쟁을 보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새로운 무대의 시작, 빠리의 심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유극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 스트린드베리히

 

 


앙트완느의 자유극장은 그에 있어서 인상적인 본보기의 하나였다. 그는 그 무대의 단순성-'삶이 제시해야 하는 가장 강렬한 갈등을 보여주는' 탁자 하나와 의자 하나에 감탄하였다. 그는 또한 앙뜨완느의 단막극 선택에 찬성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들 단막극이 시간과 공간의 바람직한 통일성을 제공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갈등을 겪는 등장인물의 심리적 탐구를 선호하였는데, 자유극장에서는 새로운 주제, 새로운 형식을 탐색하는 기회를 갖는다고 그는 인정했다. 스트린드베리의 두 희곡은 스웨덴에서의 상연이 불가능하였다. [미스 쥴리]는 1889년 코펜하겐 대학의 학생회관에서 비공개 공연을 하였는데, 줄리 역은 스트린드베리의 아내 '시리 폰 에센'이였다.
그 후 1892년 오토 브람이 베를린의 자유 무대에서 두 번째로 공연을 했다. 장기 공연은 1893년 프랑스에서 앙트완느에 의해 행해졌다. 스웨덴에서의 공연은 1904년에야 이루어 졌는데, 또한 비공개 공연이었다. 완전한 스웨덴어로의 공연은 1949년에야 이루어 진다.
그는 [아버지]가 혹평을 받은 후 [미스 줄리]를 쓰면서 그에 서문을 첨부하였는데, 이는 그의 자연주의 운동의 선언서가 되었다. 이 이론의 중심에서 그는, 다양한 행동 동기를 행위에 부여함으로써 등장인물이 생명을 갖게됨을 피력하고 있다.
스트린드베리에 있어 환각과 통일성은 매우 중요한데, 그는 이를 위해 극을 막으로 나누는 것을 피했다. 작가-최면술사의 암시적인 영향을 방해하는 어떠한 간극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음악가 역시 관객의 시야에서 사라질 것과 객석의 완전한 소등을 주장했다. 관객의 강렬한 집중을 위한 스트린드베리의 요구는 그의 극적 환각 개념을 잘 나타낸다. 그는 작은 무대에서 극예술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1888년 코펜하겐에 위치한 다그마르 극장에서 앙뜨완느의 자유극장을 모델로 한 무대를 성취했다. 이후 그의 인티마 극장(스톡홀름)은 이보다 더 작았다.
그의 작업은 점점 표현주의로 기울어 갔는데, 그 스스로 '내게 자연주의와 초자연주의 사이의 틈새에 다리를 놓는 임무가 떨어졌다. 이 일은 후자가 전자의 발전일 뿐임을 입증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말하였다.

 


그의 첫 번째 표현주의 작품인 3부작 다마스커스로는 1898년에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한 인물의 성격을 여러 등장인물로 분리시킴으로써 각 인물이 전체적인 성격의 한 측면을 대변할 수 있도록 묘사해, 전체적으로 한 인간의 갈 등을 묘사하는 스트린드베리 표현주의의 기본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극은 자서전적인 극이라고 할 수 있다. (1891년 첫 번째 부인과의 이혼 이후의 암울한 시기를 극화) 극의 1부는 대칭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극의 초연은 1900년 스톡홀름 왕립연극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스트린드베리는 이 공연을 감상적으로 처리한 것에 실망하였다.
스트린드베리가 가장 좋아한 자신의 극은 [꿈의 연극 A Dream play](1902)이었다. 이 연극은 [다마스...]보다는 덜 대칭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막이 올라간 장소에서 막이 내려간다는 점에서 일치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 극은 모든 사실주의적인 금기를 깨며 변형되고 비틀어진 현실을 상징적으로 제시한다. 장소는 꿈 속을 헤매는 듯 변화하며, 시간은 기존의 개념을 깨버린다. 이 극은 처음에는 무대 공연이 불가능 한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1907년에 공연된다. 그러나 빅토르 카스테그렌의 무겁고 상투적인 연출은 스트린드베리는 실망시켰다.
그는 이 극은 무대의 단순성을 통해서만이 무대화에 따르는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극의 신비성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인티마 극장의 소형무대는 공연의 단순화를 가능하게 했다. 그는 몇 개의 소품만으로 상상력을 자극 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1888년의 [미스 줄리]의 서문에서 '장면의 경제성'을 주장한 이후, 1908년과 1909년 [인티마 극장 단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조명의 변화를 이용한 간단한 무대장치만을 사용할 것'을 장려했다. 그러나 이에 불구하고 그의 [꿈의 연극]은 공연에서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1921년 라인하르트의 공연으로 그의 작품은 점차 이해 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1928년 아르토의 공연 [꿈의 유희 Le songe ou jeu de reves] 에서는 경찰이 달려오기도 하였다. 1935년부터 1955년까지의 5차례에 걸친 연출가 올아프 모란더의 스톡홀름 공연은 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성공적으로 입증했다. 잉그마르 베르히만은 1970년 350석의 왕립 스투디오에서, 이 극을 두 시간으로 줄여 흑백의 단순한 커튼을 배경으로 공연하였다. 이러한 거실연극으로의 공연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스트린드베리는 거실연극에 맞는 소규모 극장을 위해 창고를 개조하여 인티마 극장을 개관하였다(1907). 이 극장의 좌석은 161석으로 이를 위해 그는 5편의 희곡 [폭풍], [불탄 집], [유령 소나타], [펠리칸] (개관 공연을 위한 1907년 작), 검은 장갑](1909) 등을 썼다. 이 극장으로 그는 극에 직접 참여하고 새로운 극을 실험할 공간을 갖게 되었다. 이들 작품은 주제와 공연을 단순하게 하기 위해 쓰여진 공연이며 '잘 짜인 희곡'의 특징과 상업적인 속성을 모두 없앨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공연은 빈 객석을 상대로 공연해야 했으며 '데카당'이라는 낙인이 붙게 되었다.
이들 작품 중 [유령 소나타]는 특히 주목이 된다. 이는 이 작품이 좀더 몽상적이고 표현주의적이며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극은 논리적으로 인식되기 보다는 감각적으로 느껴야 한다. 아르또는 이 극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 작품에 가장 열렬한 관심을 보인 연출가는 잉그마르 베르히만이다. 그는 1941년, 1954년, 그리고 1973년에 걸쳐 이 극을 연출했다. 그는 이 극이 최초의 부조리극이자 스웨덴어로 쓰여진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했다.
스트린드베리는 죽음을 앞 둔 몇 년동안 표면적 현실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었으며 표현주의 극으로 이끌려 갔다. 따라서 그의 극은 관객의 개념적 사고에 호소하기 보다는 음악적인 형식과 서정적이며 마술적인 언어, 마임과 시각적 암시성, 침묵과 휴지(파우저), 시간과 공간의 비틀림을 통해, 악몽과 같이 관객의 내부 경험, 무의식의 감정에 호소하려 하였다. 숀 오케이시는 그를 '가장 훌륭한 현대 극작가'로 생각했으며, '천국과 지옥을 상대로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