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유진 오닐 '잘못 태어난 사람들을 비추는 달'

clint 2015. 11. 30. 10:04

 

 

 

 

A MOON FOR The MISBEGOTTEN By Eugene O'Neill
-1941년에서 1943년 사이에 씌여짐./ 1952년 뉴욕 랜덤 하우스에서 출판/ 1947년 2월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에서 시어터 길드에 의해 초연/1957년 5월 뉴욕에서 상연. 한국에서는 '불출들의 밤'이란 제목으로 소개되고 공연됨

 

1936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극작가의 희곡작품. 1923년 커네티컷 주의 한 농가를 배경으로 아일랜드 출신의 소작농인 휠 호건이 그의 딸 조시를 이용해 농장을 가로채려는 음모와 딸 조시가 휠의 거짓을 깨닫고 제임스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내용을 담았다.

조시의 어린 시절, 호건은 당시의 지주인 타이런의 부친이 밀린 소작료를 받기위해 집으로 온다는 소식을 미리 알게 되고. 호건이 나서서 밀린 소작료에 대한 상황을 수습해야 하지만, 대신 그는 고급 위스키를 내놓고 조시를 배우삼아 지주를 상대공연자로 연기하는 과정에서 호건은 일종의 극작가의 역할을 하는 인물로 드러납니다. 아일랜드 출신의 소작농인 '휠 호건'이 딸 '조시'를 이용해 독신 농장주 제임스 타이론 2세로부터 농장을 가로채려는 음모가 전개되는데. 참고로 내용을 잘 살펴보면 알콜 중독으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작가의 형 제임스 오닐에 대한 자전적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주인공인 제임스 타이론은 오닐의 형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알콜 중독으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오닐의 형제 임스 오닐에 대한 작가의 자전적인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말년의 작가의 심경이 잘 드러나고 있는 작품이다.

 

 

 

 유진 오닐(Eugene O'Neill)의 '잘못 태어난 자의 달'(A Moon for the Misbegotten, 1943)에 관해 메타연극적 성격을 인정하는 평자들의 수가 그의 다른 어떤 극보다 많다는 점은 이극의 메타연극적 특성이 그만큼 뚜렷함을 의미한다. 브리츠케는 타이런을 포함한 “세 명의 주요인물들이 모두 배우"라고 말하며, 로빈슨는 배우인물 타이런의 연기하기를 “비자발적 강박적 역할중 역할”로 구분하여 메타연극적 특성을 지적한다. 버린은 이극이 스스로의 연기하기와 무대화하기에 관한 많은 언급을 하며 배우인물의 역할연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닐극 가운데에 가장 메타연극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잘못 태어난 자의 달'의 역할중 역할연기는 연기일화와 자기지시 등의 다양한 메타연극적 방식과 혼재하여 나타난다. 그러나 역할연기가 지속적이며 뚜렷이 드러나는 것과 달리, 연기일화와 자기지시는 그 길이가 매우 짧으며 대체로 역할연기와 관련된 것이라는 점에서 역할연기의 틀 안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자기지시는 중요한 메타연극적 유형의 하나로 역할연기와는 구별되는 개념이지만, 등장인물이 역할중 스스로의 역할연기를 가리킨다다는 점에서 역시 역할연기의 범주 안에서 설명될 수 있다. 연기일화는 등장인물들이 극중에서 실제로 또 다른 연극이나 공연을 하는 대신, 과거 역할연기의 기억을 전한다는 면에서 역할연기와 연관된다.

 

 

극은 1923년 코네티컷(Connecticut)의 시골 오두막집 실외장면부터 시작되는데, 오닐의 후기극이 대체로 실내장면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특징적인 무대이다. 소작농 호건의 집은 “땅에 뿌리내린” 듯 서있지 않고,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이동식의 주택의 하나로 “목재받침으로 버팀목을 겹겹이 대서 지상 2피트 정도 위에 놓여있다.” 이러한 주택의 구조적 조건은 호건이 소작농이라는 것과 함께 이극에 중요한 메타연극적 단서를 제공한다. 한 장소에 위치하여 반영구적 지속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달리, 어느 장소이든 이동 가능하다는 ‘이동식 주택’의 구조와 자신의 소유가 아닌 토지를 일정기간 임대하여 경작한다는 ‘소작농’의 신분은 두 가지 모두 임의적이고 가변적인 특성을 공유한다. 이러한 임의성과 가변성은 한 인물이 자신의 자아와는 다른 역할을 일시적으로 연기한다는 역할중 역할의 개념을 독특한 방식으로 연상시킨다.
호건은 배우인물이면서 1막에서 ‘술에 관한 놀이’의 일화에서 보듯 플롯을 진행시키고 다른 인물에게 역할을 맡기며 경우에 따라서는 분장까지도 도와준다는 점에서 극작가의식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오닐은 무대지시를 통해 타이런과 호건이 등장할 때 “즐겁고 오랜 놀이의 배우들과 같다”고 소개하고 있다. 극 전체를 통해 타이런(Tyrone)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슬픔을 냉소주의자의 역할을 하며 과거의 역할을 반복적으로 연기하는 “제한된 배우”이라면 조시(Josie)는 현재를 구성하는 과거의 이해를 통해 타이런에 대한 이해를 연기하는 배우이다. 1막에서 호건과 조시는 타이런이 등장이전에 역할연기에 관한 일화를 기억해내는데, 조시에게는 ‘술에 관한 놀이’로 불리는 일화가 소개된다. 술에 관한 놀이는 처음 두개의 막에 걸쳐 역할연기와 호환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연극 안에서 역할연기가 일어나고 있음을 환기시켜 관객이 연극을 보고 있다는 의식을 준다. 조시의 어린 시절, 호건은 당시의 지주인 타이런의 부친이 밀린 소작료를 받기위해 집으로 온다는 소식을 미리 알게 된다. 호건이 나서서 밀린 소작료에 대한 상황을 수습해야 하지만, 대신 그는 고급 위스키를 내놓고 조시를 배우삼아 지주를 상대공연자로 연기하는 과정에서 호건은 일종의 극작가의 역할을 하는 인물로 드러난다. 조시를 통해 기억으로 처리되는 연기일화는 역할연기의 특성을 보여준다. 호건은 배우에게 분장시키듯 조시를 “잘 차려 입히고 머리를 손질하고 리본을 꼽고” 또한 배우의 역할을 할당하듯 조시가 할 일이란 호건 자신이 지주를 만나기 전 “그의 마음을 달래는 것”으로 미리 설정한 후 조시만을 남겨두고 가버린다. 조시는 호건에 의해 정해진 각본을 따라 지주를 맞이하여 허리를 굽혀 공손히 인사하고 그의 팔에 매달려 아양을 부리며 그를 집으로 데려와 기분 좋게 해준다. 그 뒤에 호건이 나타나 고급 위스키를 권하며 그 지주의 얼굴을 미남이라 칭찬하자 그의 험악한 표정은 사라진다. 호건은 이러한 방식으로 소작료건이 잘 해결된 것에 조시를 칭찬할 때에도 “넌 그일 멋지게 해냈지. 넌 배우가 됐어야 했는데”라고 말하거나, 또는 조시의 상대역이었던 지주 역시 그녀 자신이 배우가 됐어야 했다는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해 낼 때, 이 일화가 일종의 역할연기의 특성을 갖는 것은 명백하다. 이것은 단지 기억으로 처리될 뿐이지만 그 자체가 역할연기의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메타연극적 특성이다. 이 일화의 일차적 의미는 소작료가 연극적 방식을 통해 해결되는 과정에서 역할연기를 소개한다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의미에서 이 역할연기일화 안에서 지주가 호건의 속임수를 이미 꿰뚫고 있었으며, 또한 호건도 그 점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방에게 꾸미기의 속임수를 쓰면서 동시에 상대방에게 그 속임수를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로서 호건의 이점은 호건 자신의 말처럼 지주에게 “속임수를 꿰뚫어 보는 재미를 주어 몰인정해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호건은 속임수를 쓰면서도 속임수를 알게 하는 것이 “진정한 속임수”라며 자화자찬격의 말을 하지만, 조시에게는 “항상 속임수 뒤에 속임수를 숨겨놓아 때론 뭘 노리고 있는지 아무도 알아낼 수가 없는” 혼돈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을 메타연극과 연관지을 때, 속임수를 쓰면서 상대방에게 그것을 알게 하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게 그것을 즐길 수 있는 흥미를 제공한다. 다시 말하면 연극을 하면서 이것이 연극임을 알게 해도 그 연극이 재미있을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낸다. 이것은 관객의 메타연극적 경험을 역할연기에 관한 일화를 통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메타연극적 요소이다. 일반적으로 메타연극의 한 유형인 역할중 역할은 주로 역할 연기하는 개별적 인물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보여주지만 이극의 역할중 역할은 극중극과 유사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보다 확장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 일화는 극 안에서 역할연기의 특성을 보여줌으로서 극의 고안되고 꾸며진 특성인 극의 인위성을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극이 현실의 재현을 강조하는 대신 역할연기의 인물들을 통해 극 구성 자체에 관심을 환기하여 극의 인공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특히 역할을 부여하고 배우를 분장하고 플롯을 진행시키는 호건의 극작가적 역할은 극의 구성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킴으로써 이극의 만들어지고 구성되는 특성에 관심을 유도한다. 무엇보다도 이극의 가장 대표적인 역할연기의 인물은 조시이다. 그녀는 5피트(180cm) 180파운드(80kg)의 거구에서 기인한 외모콤플렉스를 감추고 주변의 뭇 남성들로부터 자신이 원해진다는 것을 확인하여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고의적으로 난잡하고 헤픈 여자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녀가 “너무 가장을 많이 한다”는 것을 아는 타이런이 그녀의 허세를 꿰뚫어 보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며 사랑한다는 말을 하자, “난 정신나간 바보였어요. 난 처녀라고요”라고 진실을 고백하고 처녀의 역할로 돌아온다. 조시가 한 여성으로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자, 타이런은 그녀를 과거에 자신이 상대했던 창녀처럼 거칠게 다루게 되고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녀를 모성의 대체로 생각하던 타이런은 그녀를 어머니로 생각하는 한, 그의 욕망은 금기의 욕망이 되기 때문에 그녀를 욕망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방법은 창녀로 보는 방법뿐이라는 점에서 타이런에게 여성은 어머니 또는 창녀라는 “남성의 성적 비젼의 내적 모순성”(Ready, 86)안에 존재하는 대상이다. 이후 조시는 한동안 당황해지만 타이런을 사랑하기 때문에 타이런이 요구하는 모성의 대체가 되는 어머니의 역할을 하게 된다. 조시는 자신의 상처받기 쉬운 내면을 창녀 역할로 가리지만 그것을 헤아리는 타이런 앞에서 조시의 창녀 연기는 처녀 역할로 바뀐다. 그러나 타이런의 거부로 조시의 처녀역할은 포기되고 그의 요구에 의해 그녀의 역할은 죽은 어머니의 대체 역할로 변화하게 된다. 조시의 역할의 변화와 역할연기는 그녀의 정체성이란 단지 역할이라는 허구적인 특성임을 암시한다.


위에서 한가지 주목할 것은 조시를 창녀처럼 거칠게 대하다가 조시의 놀라움에 부딪힐 때, 이에 대한 타이런은 첫 반응은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며 술을 원인으로 돌린다. 그의 다음 반응은 조시에 대한 자신의 행동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며 자신의 첫 반응을 거짓으로 돌린다. 술과 비이성적 충동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면서 그렇게 행동했다는 타이런의 자기분석이 일견 솔직해 보이지만, 여기서 간과될 수 없는 극 세계의 중요한 차원은 그가 역할연기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역할연기의 인물 타이런에게 주어진 것은 죽은 어머니의 아들과 돈으로 산 창녀를 대하는 정욕적 냉소주의자라는 두가지 역할이며, 타이런이 조시를 대하는 상황에서도 이 두 가지의 역할에 제한 받는다. 조시의 성적 제안을 받는 순간 과거의 역할(돈으로 창녀를 사는 냉소주의자)이 현재에 운명처럼 다시 주어질 때 그 역할을 자신의 진정한 자아인 것처럼 혼동하는 것으로 이는 피란델로 방식의 “역할과 자아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부분”이 된다.
위에서 역할을 자아로 혼동하는 것과 반대로, 타이런이 어머니의 장례식과 관련된 일화에서는 자아를 역할로 오인하는 것을 보여준다. 타이런은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 울 수없게 되는데,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슬픔보다는 어머니가 슬퍼하는 자신의 곁을 떠났다는 무심함 때문에 어머니의 슬픔을 직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타이런의 슬픔은 주변사람의 기대와 시선을 의식하여 연기를 해야만 하는 배우의 역할인 것처럼 표현되고 있다. 타이런이 애도하는 아들이란 자신의 자아를 하나의 연극적 역할로 대체하려는 이유는 자신의 슬픔에 직면할 수 없기 때문에 슬픔을 연극적인 것으로 감추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을 “서툰 배우”라고 표현하는데서 보듯, 타이런이 자신의 슬픔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인지 아니면 실제 슬픔을 느끼는 아들인지를 혼동하는 상황에 처한 것으로 역할과 자아, 그리고 연극과 현실이 혼재하고 있음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4막에서 모성대체 역할을 하는 조시는 자신의 가슴에 기대어 잠든 타이런을 안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 유해를 무릎에 안고 비탄에 잠긴 성모마리아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피에타장면(Pieta scene)’으로 불린다. 조시의 품에서 밤을 보낸 후, 해돋이에 의해 다양한 색조로 물드는 새벽하늘의 아름다움을 맞게 될 때 타이런의 대사는 많은 평자들의 주목을 받아온 부분이다. 타이런의 대사에서 “막이 오른다. 4막짜리 연극”의 부분은 눈앞에 펼쳐지는 새벽의 아름다움에 대한 반응으로써 새벽의 아름다움을 연극적 환영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타이런의 대사는 연극을 통해 연극을 의식하며 연극을 가리킨다는 메타연극적 자의식성을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힌든은 이 부분이 “극적 환영을 깨뜨리는 것”이며 “메타연극” 또는 “자아반영적 예술”의 예라고 지적한다.
계속되는 타이런의 대사에서 “제길! 왜 내가 그 역겨운 것을 끄집어내야 하지?”라고 중얼거리며 솔직한 감정으로 “세상에, 아름다워. 난 결코 이것을 잊지 않을 거야 - 여기서 당신과 함께 있은 것을 말이야”의 부분은 이전의 자의식성을 넘어서는 고백이다. 새벽의 아름다움과 조시의 사랑을 연극적 환영이라고 했던 것을 취소하고, 다시 그것을 실재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는 로빈슨이 지적하듯 “더 깊은 감정이 자의식성을 대체할 때, 극이 사실주의적 핵심으로 향함”(Robinson, 74)을 나타내는데, 여기서 이극의 자의식성이 사실주의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며 통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은 결과적으로는 메타연극적 자의식성이 사실주의 안으로 포괄됨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인물이 연기하고 있음을 관객에게 의식하게 하여 관객의 마음에 공연의 의식을 불러일으킴을 보여준다. 레디도 관객의 입장에서 자의식성과 사실주의가 상호의존적으로 일출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보도록 한다고 말한다.
3막의 고백장면에서 타이런은 어머니의 시신을 싣고 오는 기차에서 매춘부인 “금발의 돼지”와 함께 지낸 것은 어머니에 대한 복수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힌다. 여기서 타이런은 자신의 역할이 플롯의 일부분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극 구조의 인위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또한 타이런이 역할에서 벗어나길 갈망함에도 불구하고 역할은 그의 운명임을 보여준다.
조시의 모성역할을 통해 타이런은 그녀의 품에서 새벽의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냉소주의의 역할로 감추게 된다. 조시의 모성적 사랑과 아름다운 새벽이 함께 한 자리에 타이런에게 그와 같은 냉소주의의 역할이 되살아나는 것은 현재에 대한 과거의 지배이며 자아에 대한 역할의 우세함인 것이다. 그러나 타이런은 다시 한번 냉소주의의 역할을 극복하고 새벽의 아름다움을 연극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런에게 남아있는 것은 죽은 어머니를 애도하는 아들의 역할로 살아있는 조시의 모성대체를 통해 어머니와 함께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역시 과거 역할의 지배로 끝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과거의 역할을 직면할 용기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극에서 나타나는 메타연극적 특성으로서 역할중 역할은 사실주의와 대조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주의의 서브텍스트로 존재하며 사실주의와 공존하는 독특한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배우인물로서 등장인물은 역할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역할은 운명이라는 결정론적 주제와도 일정한 연관성을 보인다. 또한 역할중 역할은 단순히 정체성의 문제에 국한되어 조시의 정체성의 변화가 단지 허구적 역할의 변화라는 점에 머물지 않고 극의 인위성을 드러내며 극의 꾸며지고 고안된 특성에 주목하게 하게 한다. 이러한 극 자체에 관한 관심을 통해 이극의 달빛은 관객과 독자만이 아니라 역할연기의 인물들을 위한 인공조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