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닐은 1916년 여름 매사추세츠 주 프로빈스타운의 조용한 어촌에서 극작가로서 등단했는데, 당시 그곳에서는 젊은 작갇화가 들이 실험극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들은 부두에 있는 쓰러질 듯한 조그마한 극장에서 오닐의 단막 해양극〈카디프를 향하여 동쪽으로 Bound East for Cardiff〉이 처음 공연된다. 그래서 이 작품이 그의 첫 작품으로 알려진다. 유명한 단편극으로는 1913~17년에 씌어져 1924년〈S. S. Glencairn〉이라는 제목으로 공연된 4편의 초기 해양극〈카디프를 향하여 동쪽으로〉·〈In the Zone〉·〈고향으로 가는 긴 항해 The Long Voyage Home〉·〈카리브섬의 달 The Moon of the Caribbees〉으로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한 자전적 작품으로 분류되며 등장인물이 거의 유사하고 그들의
성격도 그대로 여서 마치 연작 시리즈물을 보는 듯 하다.

미국 뉴욕과 영국 카디프를 왕래하는 글렌케인호에서 일어난 단순한 줄거리 일수 있다. 항해 근무중 부상을 당한 양크의 죽음이 그것이다.
그러나 오닐의 이 작품 을 좀더 세밀히 들여다보면 그 죽음이면에 종교, 꿈, 진리등이 작품의 전반에 걸쳐 덥혀 있는 안개와 같이 불투명한 상황을 암시하며 그 안개가 걷치면서 양크가 죽는걸로 작품은 끝난다. 후에 나타나는 표현주의 작품의 그 초기 암시로도 예측 해 볼수 있다.
죽기전에 나타나는 여러 꿈들은 결국 실현되지 못한 꿈으로 나타나 그 좌절감이 느껴지며 작품의 뛰어난 점은 그 죽기 직전 까지의 양크의 아픔 초조함등의 심정 변화와 대사에서의 진정성이다. 그러나 양크는 어느 시점에 그 모든 상황(공포, 고독)을 수용하는 용감성에서 미성취한 꿈을 아쉽지만 접고 운명에 맡기는 영웅적인 의지에 다소나마 비극적인 위안을 준다 하겠다.

인간의 간절한 꿈에 무관심하고 좌절을 주는 바다와 신의 모습은 '카디프를 향하여 동쪽으로'(Bound East for Cardiff, 1914)에서 나타난다. 노맨드 벌린(Normand Berlin)이 “미래의 오닐 작품에 나타나는 정신의 싹이라고 평가한 이 극은 꿈과 좌절, 바다, 안개, 경적, 밤 등의 상징이 풍부한 작품이다. 선원들은 바다로 상징되는 소우주 가운데 벌거벗은 채 내던져진 이방인들이며, 바다의 이미지로 나타나는 그들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고독한 인물들의 초상이다. 그들의 삶은 파도를 타고 표류하며, 육지에 발붙이고 살 수 없는 양크의 기억은 그들의 실존을 반영한다.
언제나 바다에 얽매어 있는 양크는 인간으로부터 소외된 채 한 겹 한 겹 껍질을 벗으면서 안개를 통해서 움직이다가 마침내 벌거벗은 영혼을 드러낸다. 희생과 파괴를 상징하는 밤에 안개 낀 바다를 지나며 운명을 예고하는 경적소리는 슬프게 울린다. 이 소리는 양크의 내면세계를 나타내며 죽음에 대한 공포의 상징이고, 동시에 바다와 안개를 청각적으로 제시하면서 인간의 꿈이 좌절될 수밖에 없음을 상기시킨다. 마치 '황제 존스'(The Emperor Jones, 1920)의 톰톰(tom-tom) 북소리가 존스(Jones)의 죽음과 함께 멈추듯이, 양크의 다가오는 죽음을 상징하는 슬픈 경적소리는 그의 죽음과 함께 멈춘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양크를 감금하고 있는 안개 속에서 동쪽으로 가는 양크의 여행은 고독한 “죽음으로의 여행”인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양크를 지탱해주는 것은 부모 형제가 있는 육지의 농장, 즉 귀향의 희망이다. 그는 생각에 잠기듯이 중얼거린다. "평생을 육지에서 살면서 자기 집이 딸린 농장을 갖는 것은 멋있는 일 일거야. 바다 냄새도 맡지 않고 배 구경도 할 수 없는 육지 한복판에서 소, 돼지, 닭도 키우면서 말이야. 일이 끝나고 저녁에 식사 후 함께 놀 아내와 아이들을 갖는 것도 참 좋을 거야. 자기 집을 갖는다는 것은 멋진 일이 틀림없어. 드리스콜."
그러나 이렇게 행복한 귀향은 그가 도달할 수 없는 영원한 꿈의 세계일 뿐이다. 그는 아름다운 추억과 꿈의 세계를 넘나들며 체념과 위안 속을 배회하면서 죽음을 초연하게 맞이할 구실을 찾는다. 죽음의 사자인 “검은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a pretty lady dressed in black)”(54)의 안내를 묵묵히 따르기 전에 천국에 대한 믿음을 애써 확인하기도 하고 하느님의 관용을 갈망하기도 한다. 그는 케이프 타운(Cape Town)부두에서 크게 싸운 일로 하나님이 자신을 받아주지 않을 까봐 걱정하며, 그것이 정당방위였다는 드리스콜(Driscoll)의 말에 위안을 얻는다.
결국 그토록 갈망했던 농장생활의 꿈을 뒤로한 채 양크는 안개 낀 바다 위에서 죽게되고 그의 꿈은 좌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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